세월호 민간 잠수사 한재명씨. ⓒ시사IN 이명익
세월호 민간 잠수사 한재명씨. ⓒ시사IN 이명익

세월호 참사 이후 한재명씨(60)의 차에는 항상 수상구조 장비가 실려 있다. 민간 잠수사로 수색 작업에 참여한 그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마음의 빚이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 구조에 나선 그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몸과 마음에 후유증이 남았지만 그는 지금도 누군가의 골든타임을 지켜내고 싶어 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그는 심장제세동기를 구매했다.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게 알려지고서 ‘이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는 잠수사들한테 전화를 돌렸어요. ‘혹시 거기 가 계시냐? 가려고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그러던 중에 황병주 잠수사님(65)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나 거기 갈 건데 너 갈 거냐?’ ‘네, 저도 가겠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출발했어요.

4월19일에 도착해서 첫 잠수는 4월21일에 시작했어요. 처음엔 유리창을 깨는 작업을 하고 그다음에 들어가서 다섯 분을 수습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커플이었던 거 같아요. 두 분이 라이프재킷 생명줄로 서로를 꽉 묶어놨어요. 그걸 풀어야 하는데 칼을 꺼내기는 좀 그렇고… 그래서 손으로 풀었는데 도저히 풀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칼로 끊고 수습을 하는데 미안하잖아요. 둘이 어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서로를 그렇게 꽁꽁 묶어놓고. 그래서 남겨놓은 한 분한테 금방 데리러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고 한 분을 먼저 데리고 가는데 그분이 나오다가 뭐에 걸린 것처럼 안 나오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가서 보니 유도 라인에 손이 걸려 있었어요. 저기 두고 온 친구를 놓고 가기 싫어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세월호에서 나온 후 바로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일을 하겠다고 해도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업계에선 이미 세월호 잠수사들의 몸이 한계를 넘어선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괜한 책임을 뒤집어 쓸까 봐… 쓰지 않는 게 나았겠죠.

골괴사(뼛속 혈관에 혈액이 통하지 않아 뼈가 썩는 대표적 잠수병)와 허리 디스크가 생겼어요. 해경을 상대로 산재 신청을 했는데, 산업현장이 아닌 구조 활동 중에 발생한 질병이나 상해라고 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지난해(2023년) 3월부터는 치료비 지원도 끊겼어요. 심사를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첫 번째 승인 이후로는 모두 불승인 처분을 받았어요. 심사에서 떨어진 이유를 물어보니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했어요. 세월호 이후 10년간 같은 병원에서 같은 병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는 걸 보면서, 이제는 제 쓸모가 다됐다고 여기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 다른 잠수사가 기사를 보내주었어요.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 이 기사던데 이렇게 보면 세월호 10년은 저에게 잃어버린 10년이 된 거 같아요.”

기자명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sajin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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