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가 주관해 3년마다 발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최신 결과가 발표되었다. 사진은 독일 한 중등학교에서 수업하는 학생들. ⓒEPA
OECD가 주관해 3년마다 발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최신 결과가 발표되었다. 사진은 독일 한 중등학교에서 수업하는 학생들. ⓒEPA

한국만큼 교육이 뜨거운 이슈인 나라가 또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교육은 어느 나라에서나 주된 관심사다. 관심이 표출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국에서 길을 가다 학원 간판을 마주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대중교통도 온갖 학원과 강사들의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학원 간판이나 광고를 볼 일이 거의 없는 스위스에도 사교육이 존재한다. 특히 인문계 중고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 진학 대비 사교육 열기는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

공교육은 공교육대로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학교 건물을 제때 짓지 못해 취리히 초등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임시 건물에서 수업을 받는다. 학생들이 급식 대신 집에서 점심을 먹는 문화는 양육자, 특히 여성의 커리어 단절에 영향을 미친다. 번아웃을 호소하며 휴직하는 교사들이 많아 늘 교사가 부족한 점도 해묵은 과제다. 학부모와의 갈등과 격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교사,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학생이 등장하는 한국의 교육 뉴스를 보면 그곳이 지상 지옥 같지만 그렇다고 다른 곳들이 천국인 것은 아니다.

자식 교육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맹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문화권과 교육 여건을 비교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만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세계 공통의 문제라면 해결을 위한 접근법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한국에 닥치지 않은 문제를 다른 문화권에서 먼저 겪는 중이라면 타산지석 삼아 대비할 수 있다.

교육 여건의 객관적 비교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신뢰할 만한 자료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해 3년마다 발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피사)’ 결과다. 나라별로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 지식을 측정한다. 학업성취도뿐 아니라 교내 따돌림이나 식습관 등 학교 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도 함께 실시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전반적인 삶을 짐작하는 자료로 이용된다. 2000년에 처음 시행했고, 2021년 평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1년 연기되어 2022년에 치러졌다. 총 81개국이 참여한 이 평가의 분석 결과가 2023년 12월 발표되었는데 스위스 교육계와 언론은 한목소리로 “PISA 쇼크”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와 최하위권 비율 증가, 남녀 학생 점수차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PISA 쇼크’가 이번에 처음 나온 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PISA가 처음 시행된 2000년 이후 매번 뉴스에 등장했다. 20년 넘게 꾸준히 스위스 사회를 ‘쇼크’에 빠뜨리고 있는 교육 이슈는 어떤 것일까. 한국과의 공통점, 차이점은 무엇일까. 2022년 PISA 결과를 바탕으로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의 교육 문제를 짚어봤다. 방대한 주제를 전부 다룰 수 없어 세 가지 키워드(이주민, 팬데믹, 문해력 위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포인트는 이민 배경이 학생들의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PISA 결과 발표 때마다 “이주민 학생들이 전체 평균을 깎아먹는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2022년 PISA 자료를 보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그림 1〉 참조). 이 보고서는 원주민(학생과 부모 모두 PISA 평가를 치른 나라에서 태어난 경우), 이민 2세대(학생은 그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경우), 이민 1세대(학생과 그 부모 모두 PISA 평가를 치른 나라가 아닌 곳에서 태어나 이주해 온 경우)로 학생을 구분한 뒤 이들의 수학 점수를 비교하고 있다.

이주민 학생이 평균 깎아먹는다?

평가국 중 스위스의 이주민 학생 비율은 약 35%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스위스의 수학 점수는 508점이지만 원주민 학생만 떼어 평균을 내면 528점으로 20점이나 높아진다. 이민 2세대 학생의 평균은 477점, 이민 1세대 학생의 평균 점수는 472점으로 점점 낮아진다. 이는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이주민 비중이 높은 유럽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나는 경향이다. 이번 PISA 보고서는 이민 가정 학생들의 수학 점수에 초점을 맞췄지만, 만약 읽기 점수를 비교했다면 원주민과 이주민 학생의 차이는 더 커질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부모가 이주해간 나라의 언어를 잘하지 못할 경우 집에서 자녀들의 언어 습득을 돕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점이 “이주민 학생들이 전체 평균을 깎아먹는다”라는 차별적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같은 자료에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은 이주민 학생 점수가 원주민 학생보다 더 높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쓰는 나라로 이주했을 때와 독일어, 프랑스어 등 덜 보편적인 언어를 쓰는 나라로 이주했을 때 적응 난이도가 다를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학업 능력의 근본적 차이가 아니라 언어 습득 관문이 성취도 차이를 낳는다면, 이주민 포용 정책 중 언어 교육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번 평가에서 OECD 국가의 이주민 학생 비율은 평균 약 13%였다. 한국은 이 비율이 0.4%다. 이주민 비율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적은 수치다. 한국에 이주민이 전보다 늘었다지만 이미 오랫동안 이주민을 받아들여온 유럽에 비하면 초보 다문화사회다. 유럽 각국의 이주민 언어교육 정책에서 교훈을 얻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스위스 취리히 칸톤(주)에서는 이민 가정 학생들에게 다즈(DaZ, Deutsch als Zweitsprache, 제2언어로서의 독일어)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정규수업 시간 중 별도로 기초 독일어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한다. 언어가 자리 잡히지 않으면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봐야 내용을 습득할 수 없으니 그 시간에 언어부터 제대로 가르치자는 의도다. 2013년 시작된 다즈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슨하게 적용됐다. 이번 PISA 결과 발표 후 다즈 교육을 다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주민이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 언어교육을 철저히’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팬데믹과 학업성취도의 연관성이다. PISA 2022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시행된 평가다. 팬데믹 중 유럽 국가 대부분이 봉쇄 조치를 시행했다. 학교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예외로, 유럽에서 유일하게 단 하루도 학교 문을 닫지 않았다. 스웨덴의 독특한 조치가 이번 PISA에 어떻게 반영됐는지가 결과 발표 전부터 관심거리였다. 결론은 놀랍게도 ‘학교 폐쇄와 학업성취도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 없음’이었다(〈그림 2〉 참조). 2018년 PISA 결과에 비해 2022년 결과는 세계적으로 다 떨어졌지만 그 정도가 나라마다 달랐다. 유럽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190일 동안 학교 문을 닫은 폴란드는 4년 전에 비해 성적이 4% 떨어졌고, 이는 38일 동안 학교 문을 닫은 핀란드의 성적 하락 폭과 비슷하다. 이탈리아나 아일랜드는 90일 가량 학교를 폐쇄했지만 성적 하락 폭은 0.1%로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 폐쇄 기간 0일로 주목을 받았던 스웨덴은 성적이 2.9% 떨어졌다.

올해의 단어, ‘읽을 능력이 없는’

팬데믹 초기 스웨덴은 ‘리버럴’한 조치를 취해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사망률이 높았지만 대신 다른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육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평가 결과를 보면서 그렇게 학교 문을 열어둠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묻게 된다. 물론 PISA 성적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문 열린 학교는 아이들의 사회성과 정신 건강을 지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학교의 역할은 지식 전달인가, 아니면 공동체 유지인가. 학교가 34일간 문을 닫았던 스위스의 15세 학생들은 PISA 설문조사에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공부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힘들었다”라고 답했다.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집에 앉아서 수학을 배울 수 있는 시대에 매일 등교를 해야 한다면, 그 학생들에게 학교가 무엇을 제공할지 숙고해야 한다.

지난해 8월31일 스웨덴 스톡홀름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AP Photo
지난해 8월31일 스웨덴 스톡홀름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AP Photo

세 번째 문제는 문해력의 위기다. 스위스가 ‘PISA 쇼크’ 운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읽기 성적(483점)이다. 평균(476점)을 겨우 웃도는 결과도 문제지만 최하위권 학생 비중이 역대 최대인 25%로 나온 점이 더 문제다. 15세 학생 4명 중 1명은 최소한의 독해도 못한다는 의미다. 교사들은 어릴 때부터 여러 외국어를 가르치는 점(칸톤마다 다르지만 취리히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 5학년 때 프랑스어 교육이 시작된다), 학급 규모가 커져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점, 무분별한 디지털 기기 사용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는 스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 언어학회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단어’ 10개 중 3위가 ‘leseunfähig’, 즉 ‘읽을 능력이 없는’이라는 단어다. PISA 읽기 결과(480점)에 따른 충격이 단어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독일 언어학회는 학생들의 읽기 능력 저하가 ‘독일 교육의 근본적 비극’이라고 경고했다.

이 외에도 PISA 2022 결과 보고서는 여러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에서는 왜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 점수 차이가 줄어들지 않는가, 사회경제적 배경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왜 계속 커지기만 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스위스 일간 〈타게스 안차이거〉는 평가 결과를 보도하면서 “우리는 무조건적 의지로 PISA 상위권을 달성하려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교육개혁을 통해 적어도 격차가 더 커지지 않게 할 수는 있다”라고 썼다. 동아시아 국가가 성적 상위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PISA 보고서에서 봐야 할 것은 당장의 점수만이 아니다. 한국 학교에서 이주민 비율이 훨씬 늘어날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언어교육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팬데믹이 닥칠 때 학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교육 현장의 ‘디지털 우선’ 정책은 문해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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