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고 최승호씨의 동생 최승구씨. ⓒ시사IN 조남진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고 최승호씨의 동생 최승구씨. ⓒ시사IN 조남진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최승호씨의 동생 최승구씨(51)는 실내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난을 키운다. 세월호 참사 보름 전이던 3월 말일에 ‘4월에 제주도로 일하러 갈 것’이라던 형님의 말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돌아가신 형님은 1964년생 다섯째고, 저는 일곱째랍니다. 형님하고 아홉 살 차이가 나다 보니까 학교 다닐 때 용돈 달라고 쫓아다니던 기억이 나요. 형님은 충남 서산시 운산이라는 곳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10년 넘게 했어요. 그리고 대구로 가서 일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명절에나 만나는 사이가 되었어요. 어느 날 형님이 제가 사는 인천 집에 놀러 와서 며칠 묵고 가셨는데, 인천으로 올라와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시라고 했죠. 얼마 후에 형님은 대구 생활을 정리하고 인천으로 와서 한동안 저랑 같이 살았어요. 저도 미혼이고 형님도 미혼이었거든요.

인천에서도 형님은 용접이랑 자동차 정비 일을 했어요. 서로 나이가 있다 보니 따로 살게 되었는데 그래도 한동네니까 오가면서 자주 마주쳤어요. 세월호 사고 나기 보름 전쯤, 아마 3월 말일이었던 것 같네요. 형님이 4월에 제주도로 일하러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랑 둘이 간대요. 형님이 술은 드시는데 담배를 안 피우시거든요. 같이 간 사람은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와서 살았고, 형님은 그냥 객실에 있다가 못 나오셨어요.

형님이 4월에 제주도 가신다는 말은 했지만, 세월호를 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사고 나고 2~3일 지나서 시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인천에 동명이인이 열몇 명이 있었는데 형님만 전화를 안 받는다고. 연락받자마자 큰형님이랑 다른 형제들이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갔어요. 현장에 도착해보니 게시판에 형님 이름이 붙어 있더라고요. 주머니에 있던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이 발견돼 신원확인을 빨리 할 수 있었대요.

우리나라도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서 시스템을 좀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큰 사고 직후에는 뭘 좀 하는 것 같다가도 또 큰 사고가 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더라고요. 세월호 참사로 형님을 보낸 지 벌써 10년이네요.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는 걸 보고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재난을 또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힘이 없다 보니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고, 그냥 안타깝다는 생각뿐이에요. 저도 겪어봤지만 진상을 밝혀달라고 아무리 요구해도 정부라는 큰 권력과 싸워서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함께 힘을 모아서 나아간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려면 국민과 정부가 함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해요. 정부가 조금 더 신경을 써줘야만 안전한 나라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봐요.

이제 성인일 텐데요. 재미있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먼저 간 단원고 학생들, 또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하신 분들, 저희 형님을 비롯해 먼저 가신 세월호 희생자분들 모두 하늘나라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명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nm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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