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라이칭더가 타이베이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REUTERS
1월13일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라이칭더가 타이베이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REUTERS

제16대 타이완 총통 선거(1월13일)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다. 이 승리의 최대 조력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었다. 통일을 앞세우며 타이완을 압박해온 그의 타이완 정책이 결국은 독립주의자 라이칭더의 등장으로 귀결한 셈이다. 지난해 12월26일 시 주석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합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언급하며 타이완과의 통일이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타이완을 중국에서 분리하려는 어떤 사람, 어떤 방식도 단호히 방지해야 한다”라며 라이칭더를 겨냥하기도 했다. 문제는 통일이 ‘필연적’이라고 할수록 타이완 민심은 그로부터 멀어졌고 라이칭더를 겨냥한 공격 역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시 주석이 집권한 지난 10년간 계속된 현상이다. 타이완을 향한 중국의 압박은 친중 성향의 국민당을 약화시키고 독립 성향인 민진당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2019년 홍콩에 대한 시 주석의 무자비한 탄압 이후 통일을 지지하는 타이완인은 줄어들었고 친중 정치인은 설 자리를 잃었다. 결국 시진핑 주석의 정책 실패를 확인한 선거였던 셈이다. 후진타오 주석까지는 중국이 현대화를 달성하면 통일은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으로 봤다. 시 주석 대에 와서 통일이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 됐다. 타이완 통일은 체제의 명운과 결부됐고 시 주석의 3연임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됐다. 통일 문제에 스스로의 운명을 건 셈이다.

라이칭더 총통 당선자는 시 주석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의사의 길을 걷다 정치에 입문한 그는 민진당 핵심 파벌이자 근본주의 그룹인 ‘신조류파’에 30여 년간 몸을 담아온 사실상 민진당의 적자이다. 대중적 인기에 바탕한 천수이볜이나 차이잉원 전 총통과는 정치적 무게가 다른 인물이다. 중국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다. 타이완 정계에서 그는 독립의 아이콘으로 통해왔다. 타이완의 주권은 중국에 속하지 않는다거나, 타이완은 이미 독립 상태에 있다고 발언했다.

‘타이완 통일에 명운을 건 시진핑 대 독립의 아이콘인 라이칭더’의 대립 구도 속에서 타이완해협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점화된 신냉전적 국제질서 재편의 불길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미국·영국과 예멘 후티 반군 간 분쟁으로 확산되고 언제 타이완해협으로 옮겨붙을지 모를 일이다. 타이완해협 분란에 북한이 관련되면 한반도까지 그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의 ‘이중의 억지전략’

정세가 혼란할수록 분명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총통 선거를 전후해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가장 첫 번째 질문은 ‘중국이 과연 타이완 본토 침공을 단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라이칭더 총통이 자신의 소신대로 타이완 독립을 밀어붙일 경우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할 것이라고 거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2005년 제정된 ‘반분열국가법’ 제8조에 명문 규정이 있다. “타이완 독립을 내건 분열 세력이 어떠한 명목으로, 어떠한 형태로 타이완을 중국에서 분열시키려는 사실, 혹은 타이완의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중대 사태, 또는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된 경우 국가는 비평화적 수단과 기타 필요한 조치를 취해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이완을 중국에서 분열시키려는’ 행동이 비평화적 수단의 대상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때 미국은 어떻게 할까. 미국의 개입은 ‘타이완 관계법’(카터 정부 시절인 1979년 제정한 ‘방어용 무기 판매를 비롯한 비공식적 방위 공약 규정’)과 ‘6개 보장’(Six Points, 레이건 정부 시절인 1982년 공표)에 따라 이뤄진다. 6개 보장은 타이완 관계법과 함께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대(對)타이완 무기 수출에 관해 기한을 정하지 않고, 중국과 사전 협상을 진행하지 않으며, 타이완해협 양안 간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지 않고, 타이완 관계법을 수정하지 않는다. 또한 타이완의 주권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타이완으로 하여금 중국과 협상토록 강요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다.

지난해 11월15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APEC 정상회의 중 회담을 하고 있다. ⓒAP Photo
지난해 11월15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APEC 정상회의 중 회담을 하고 있다. ⓒAP Photo

바이든 정부 등장 이후 타이완해협 사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전략적 명료성’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첫 번째 포인트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 차례에 걸쳐 군사 개입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두 번째 포인트가 있다. 바이든의 발언 뒤에는 반드시 백악관 관계자가 나서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미국의 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토를 단다는 점이다. 조지프 나이 전 미국 국방차관보는 이를 ‘이중의 억지전략’이라 평했다. 중국의 명분 없는 침공도 용납하지 않지만 타이완이 독립을 추진해 중국을 도발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타이완이 독립을 추구하면 어떻게 될까. 그의 대답은 명쾌하다. “타이완이 독립을 추구하면 미국의 군대 파견 의지는 저하될 것이다. 반대로 타이완이 도발하지 않았는데 중국이 침공하면 미국은 반드시 개입한다.” 라이칭더 당선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일성이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였던 이유가 여기 있다. 라이칭더는 타이완 독립에 신중했던 차이잉원의 정책을 계승해 국방력을 증진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칭더 총통 당선자가 도발하지 않았는데도 중국이 타이완 본토 침공을 감행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 지난해 11월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미국 측이 ‘중국이 2027년 혹은 2035년 타이완에 대한 군사행동을 취할 계획’이라고 브리핑하자, 시진핑 주석은 “아무도 나와 그런 계획을 논의한 적이 없다. 시기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틀린 얘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향후 몇 년간 중국의 타이완에 대한 군사행동 계획은 없다”라며 평화통일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지난해 12월5일 중국에서 3.2㎞ 떨어진 타이완 진먼다오의 해안에 상륙 방지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AFP PHOTO
지난해 12월5일 중국에서 3.2㎞ 떨어진 타이완 진먼다오의 해안에 상륙 방지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AFP PHOTO

2027년은 그동안 중국의 타이완 침공 위험성이 있는 시기로 거론돼왔다. 그런데 2035년은 왜 갑자기 등장했을까. 현시점에서 중국이 타이완 본토 점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타이완해협과 타이완의 통상전력, 그리고 미국의 핵전력이라는 세 개의 벽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 벽은 타이완해협이다. 150~400㎞에 이르는 물살 세고 거친 이 해협을 대규모 함대가 건너기도 쉽지 않으며 현재 중국의 수송능력으로는 한번에 2만5000명 정도밖에 수송할 수 없다. 배를 접안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지점에는 이미 각종 방어무기가 촘촘히 배치돼 있어서 뭍에 오르기도 전에 수장되기 십상이다. 통상전력 대비에서도 아직 중국은 타이완 본토 점령을 가능케 할 만큼 압도적 전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동안의 중국 타이완 전쟁 시나리오에서 간과된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이 전쟁이 핵보유국 간 최초의 충돌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핵전력 차이가 승패를 가를 것이기 때문에 전쟁 개시 결정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이 미국과 핵무기 보유량에서 어느 정도 대칭적 수준에 이르는 시점이 바로 2035년인 것이다. 2022년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 3688발 중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유럽 배치 미사일이 모두 1744발이라고 한다. 중국은 2022년 시점에서 핵탄두 약 400발을 보유 중이다. 최근 신형 ICBM용으로 보이는 300개 이상의 사일로(미사일 발사 장치를 넣어두기 위한 지하 설비)가 확인돼 중국도 본격적으로 핵탄두 수를 늘리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1년에 100발씩이라고 한다. 이 속도면 2035년에 핵탄두를 약 1500발 보유해 미국의 실전 배치 핵탄두 수와 어느 정도 균형이 이뤄진다. 이 얘기는 곧 2035년까지는 중국이 평화통일을 앞세우며 통상전력과 핵탄두를 증강하다가 2035년 이후부터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제든 타이완을 무력통일하려 할 것 아니냐는 판단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측이 이런 취지에서 2035년을 거론하자 시진핑 주석 역시 향후 몇 년간 군사행동 계획 없이 평화통일에 집중할 것이라며 내용상 같은 얘기를 한 셈이다.

‘한국 주적론’의 배경

그렇다면 2035년 이전은 안심해도 될까.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시 주석이 자신의 3연임을 타이완 통일 문제와 결부시켰다는 점이 함정이다. 3연임에서 4연임으로 넘어가는 2027년 이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뭐든지 도모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이 이미 성장의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차이나’론의 관점에서도 주목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나, 1941년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일본처럼 ‘정점을 찍은 강대국의 함정(Peaking Power Trap)’이 중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최근의 심각한 국제질서 변화도 감안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지자, 이러다 타이완해협이 ‘제3의 전선’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주프랑스 타이베이 대표처 우즈중 대표는 지난해 10월9일(현지 시각) 프랑스 르피가로TV에 출연해 중국이 러시아나 하마스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가까운 장래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만 어느 정도 우려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미국이 두 전쟁에 발을 담근 상황에서 타이완해협 충돌까지 발생한다면 미국의 군사 자원 투입 역량이 분산돼 중국의 도발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지난해 11월 초 〈블룸버그 통신〉에 ‘중국은 타이완을 어떻게 점령할까? 5가지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가 언급한 5가지 전략은 △전쟁 수준의 경제적 압박 △진먼다오(금문도)와 마쭈(마조) 열도 등 일부 섬 점령 △타이완을 오가는 선박 등을 봉쇄하는 것 △봉쇄가 안 먹히면 도로나 항만 등 폭격 △마지막 옵션으로 전면 침공 등이다. 그러나 이 하나하나의 옵션 모두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타이완이 반발하며 독립선언의 명분으로 삼거나 국제사회의 규탄 속에 중국이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주한 미군이나 주일 미군이 타이완 사태에 개입할 수 없도록 붙들어놓을 방법을 동시에 강구해야 한다. 바로 북한의 연루 가능성이다.

2019년 2월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만나는 두 정상의 모습을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19년 2월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만나는 두 정상의 모습을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새해 들어 한국을 겨냥한 김정은 위원장의 위협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급기야는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며 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하고 평정해 수복하겠다”라는 극언까지 나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는 생존전략을 펼쳐왔다. 2021년 바이든 정부 등장 후 미·중 대결 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의 시기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시진핑 정권이 타이완 문제를 둘러싸고 바이든 측과 타협하며 북한의 도발 시도를 번번이 억제하자 불만이 쌓여왔다.

특히 2022년 6월 북한이 소형 핵탄두 개발을 위한 7차 핵실험을 준비했는데 6월13일 양제츠 전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룩셈부르크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과 회동한 뒤 이마저 막아서자 양국 관계가 냉랭해졌다. 거의 비슷한 시점인 6월10일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외무상을 강경파 리선근에서 미국통 최선희로 전격 교체함으로써 더 이상 중국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선희 등장 3개월 뒤인 2022년 9월19일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하겠다는 결의를 (북한에게) 전달”하겠다며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총리 직할 고위급 협의를 실시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의 등장은 미국 국무부가 북한 관리를 일본에 맡겼다는 뜻이다. 북·일 양측은 그 뒤 물밑 접촉을 계속 이어오고 있으나 관계를 더욱 진척시키려면 결국 수교 배상금 지급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유엔 제재에 막혀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최근 북·중 간에 눈여겨볼 만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2016년 중대 경제범죄 혐의로 중국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고 행적이 묘연했던 ‘랴오닝 훙샹그룹’의 마샤오훙 총재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훙샹그룹은 겉으로 북·중 간 무역을 담당하는 회사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과거 장쩌민파 선양군구와 북한을 연결하며 북한에 필요한 식량이나 에너지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들이 다시 움직인다는 것은 중국이 북한에 큰 선물을 줬다는 의미다. 그리고 선물에는 대가가 따른다.

북한 처지에서는 몸값이 한창 오른 지금이야말로 중국과 미국, 일본 사이에서 큰 거래를 도모할 시기라고 판단할 법하다. 마침 올해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에 대비해 2019년 하노이에서 끊어진 선로를 잇기 위한 몸풀기일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 북한의 판돈 키우기 제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통미(일)봉남’의 악몽이 떠오른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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