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운씨(32)는 10대 때부터 혼자 살았다. 세상과 싸워 이기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달, 고깃집, 공장, 아웃소싱 전문업체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15년 동안 돈을 모았다. 열심히 일한 덕에 사정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결혼을 계획하며 2024년에 입주하는 아파트 청약에도 당첨됐다. 아파트 입주 전까지 살 생각으로 출근하기 좋은 곳에 위치한 한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깐 살기 위해 들어온 이 전셋집이, 그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정씨는 현재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23년 3월, 그는 자신이 사는 집에 신탁이 걸려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같은 건물 20가구 가운데 17가구가 피해자였다. 신탁 사기 피해자들은 2023년 6월부터 시행된 전세사기 특별법으로 구제받기 어려웠다. 정씨는 같은 상황에 처한 대구 지역 피해자들을 모으고, 전국 대책위와 연대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만든 대구 피해자 오픈 카톡방에는 8월부터 사람들이 줄을 이어 들어왔다. 전세사기 특별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개별 피해자들이, 뒤늦게 ‘나는 특별법으로 구제받기 어렵다고 한다’며 찾아왔다.
비수도권 전세사기는 수도권과 양상이 조금 다르다.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많고, 수십 세대 단위 개별 사례가 많다. 수도권은 한 번에 피해자 수백 명을 양산한 악성 임대인 몇몇이 크게 주목받았지만, 비수도권에서는 개별 사례의 규모가 작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정씨는 지난해 8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피해자들을 설득하며 모으고 있다. 정씨는 “피해자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고 공감을 얻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라고 말한다.
정씨는 원래 ‘개인이 노력하면 삶은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는 보수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살았다. 그가 생을, 세상을 돌파해온 방식이 그러했다. 하지만 전세사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권리당원이던 정씨는 2023년 11월28일 탈당 신고서를 들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았다. 이날 그는 김기현 당시 당대표를 향해 “저희를 한 번만 만나주세요. 부탁합니다”라고 외쳤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에 소극적인 국민의힘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2023년 12월28일 현재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위를 야당 단독으로 통과된 상태다. 여전히 정부와 여당은 법 개정에 미온적이다. 피해자들은 설령 법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 봐 걱정스럽다. 전세사기 문제는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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