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구하라법 및 선원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8월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구하라법 및 선원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이른바 ‘구하라법’은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2020년 3월16일 국회 게시판에 국민 청원이 올라오면서 공론화됐다. 청원 제목이 길었다.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해태한 경우도 상속결격 사유로 추가하고 기여분 인정 요건을 완화하는 민법 개정에 관한 청원.’

무슨 내용일까. 구하라씨는 아홉 살이었다. 친모는 집을 떠났다. 자식을 돌보지 않았다. 친모는, 자식이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타났다.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겠다고 했다. 동생을 잃은 오빠는 반대했다. 어린 남매를 외면했던 친모를 거부했다. 친모는 물러서지 않았다. 상속인 자격이 있다며 나섰다. 자신이 상속 재산의 절반을 갖겠다고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그럴 수 있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청원 동의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국회 청원이 성립됐다.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유사한 법률안 5건도 발의됐다.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두 차례 함께 논의됐다. 그러나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법안은 폐기됐다. 논의가 끝난 건 아니었다. 자식을 버리고 연락을 끊었던 부모들이 나타나 사망보험금, 피해배상금을 받아 갔다는 뉴스가 왕왕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공분이 일었다.

21대 국회에서도 ‘구하라법’은 다시 발의됐다. 2020년 6월2일 서영교 의원 외 50인이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상속을 받을 수 없는 상속결격 사유에 하나를 더했다.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자식을 부양하지 않은 부모를 상속인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민법에는 상속결격 조항이 있었다. 법에서 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상속인의 자격을 잃게 된다. 고의로 부모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유언서를 위조한 자와 같이 5가지 사유가 열거되어 있다. 1958년 2월 민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다. 별다른 변경 없이 계속 유지되어 왔다. 서영교 의원안은 여기에 제6호를 추가하는 안이다.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부모도 상속결격자로 덧붙였다.

원래 있던 결격사유에 비해 모호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기존 사유는 해당 여부가 분명한 편이다. 형법상 범죄행위에 해당되는 경우라 비교적 명확하다. 형사사건 유죄판결에 따라 객관적으로 정해질 수 있다. 이에 비해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다’는 잣대는 다소 흐릿하다. ‘부양의무’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현저하다는 선은 어디에 그을 수 있을지, 게으르다는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지 퍽 애매하다.

법률관계의 불안정성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누구나 기한 제한 없이 상속결격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거래 행위를 하고 한참 뒤에 무효가 될 수 있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격화될 수 있다.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 문제를 다루는 ‘구하라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연합뉴스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 문제를 다루는 ‘구하라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연합뉴스

서영교 의원은 2021년 2월10일 기존 안을 보완해 다시 제안했다. 추가되는 사유를 ‘양육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자’로 변경했다. 이러한 사유가 있는 경우 가정법원이 상속결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확인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도 제한했다. 사유가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 날로부터 1년 내에만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안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반영한 셈이다.

구하라법과 유사한 외국의 상속법

정부안도 발의되어 있다. 2021년 6월18일 제안되었다. 상속결격이 아닌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를 분명히 취했다. 상속결격 사유가 있다고 바로 상속인 자격이 박탈되지는 않는다. 가정법원의 선고로 상실되도록 했다. 부모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면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법원에 판단을 맡겼다. 상속권 상실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는 조항도 두었다. 부양의무를 위반하게 된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그 밖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고 정했다.

외국 상속법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조항이 발견된다. 피상속인에 대한 학대와 유기, 가족법상 의무 해태와 같은 사유가 있으면, 상속이 배제되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이례적인 조항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가 상속받는 일이 정의롭지 않다는 전제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별로 없다.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협동체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건 상속제도를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는다면 상속을 정당화하는 관계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일이다. 상속제도의 타당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더 가다듬어야 한다. 가는 길의 차이에 불과하다면, 이제 중지를 모아 서둘러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얼마 남지 않은 21대 국회는 ‘구하라법’을 가결할 수 있을까.

기자명 박성철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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