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 부산영업본부가 마련한 청소년금융교육센터의 모습. 주요 금융기관들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금융 교육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NH농협은행 부산영업본부가 마련한 청소년금융교육센터의 모습. 주요 금융기관들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금융 교육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는 점수화된 경쟁에 민감하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가 대표적이다. 이 지표에서 한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전 세계 최상위권이다. 혹시라도 순위가 떨어질 때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PISA와 비슷하게, 최근에는 또 다른 지표 하나가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금융교육국제네트워크(INFE)에서 표준을 만든 ‘금융 이해력(Financial Literacy)’ 지표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올해 3월에 ‘2022년 전 국민 금융 이해력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한국 성인(18~79세)의 금융 이해력 점수가 66.5점으로 OECD 평균인 62점을 상회한다고 밝혔다. INFE의 기준을 적용해 성인 260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다.

주요국 평균보다 점수가 높으니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은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있을까? 단언하기 어렵다. PISA에서 측정하는 학업성취도가 한 국가 전체의 지적 수준을 판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금융 이해력 테스트 점수가 조금 높다고 해서 한 국가의 금융 활동이 그만큼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평균 점수가 높다고 전 국민의 금융 이해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도 연령과 학력, 소득수준에 따른 금융 이해력 격차가 존재했다. 70대 이상일 경우, 학력이나 소득이 낮을 경우 금융 이해력 점수도 낮게 나왔다.

2022년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격차’ 이외에 우려스러운 대목이 하나 더 발견된다. ‘아는 건 많아도 실천하는 데에는 취약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금융 지식(Knowledge), 금융 행위(Behavior), 금융 태도(Attitude)를 종합해 ‘금융 이해력’ 점수를 측정한다. 이번 조사 결과 응답자의 분야별 평균 점수는 각각 75.5점, 65.8점, 52.4점이었다.

인플레이션이 무엇인지, 이자가 무엇이고 위험에는 어떤 게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금융 지식),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하며 돈은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났다(금융 태도). 이러한 ‘금융 태도’ 부문에서 특히 점수가 낮은 이들이 20대(48.9점)다. 본격적인 자산 축적이 시작되어야 할 세대에서 금융 태도에 대한 점수가 낮았다. 금융 이해력을 단순히 ‘지식의 유무’로 이해하면 발견하기 어려운 취약점이다.

금융 교육 확대는 반복되는 화두다. 2003년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대출 부실 사태(카드 사태) 이후 한국에서도 매년 금융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이런 ‘교육’에 대한 수요는 쉬이 학교교육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초등·중등 교육에 별도 금융 교육 과목을 개설하기 어려웠고, 일부 경제 과목이 추가되더라도 경제학 원론을 축약한 수준에 불과했다. 예산을 세우고 저축을 하며, 장기적으로 재무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의 교육은 제도화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이 제작·배포하는 연령대별 생활 금융 교재.
금융감독원이 제작·배포하는 연령대별 생활 금융 교재.

기업에 떠넘긴 금융 교육

그나마 최근 들어 공교육에서 금융 교육을 늘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사회과 융합선택 과목이 신설됐다(2025년 고교 1학년부터 시행). 고교학점제가 자리 잡으면 학생이 자유롭게 수강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융합선택 과목은 경제, 법과사회, 정치와 같은 진로선택 과목에 비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더 어린 나이인 초등·중학교에서는 금융 교육 과목이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수학이나 실과, 사회, 가정·기술 등 다양한 과목에서 금융을 간접적으로 다룬다는 게 우리 교육 체계의 목표다.

학교에서 금융을 ‘체험’할 기회가 아예 없진 않다. 금융감독원이 추진하는 ‘1사1교’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각 학교와 지역 금융기관이 제휴를 맺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학교에 금융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금융감독원은 2022년 말 기준, 전국 초·중·고교 가운데 약 70%가 지역 인근 금융회사와 결연을 맺어 금융 교육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금융 교육 시스템은 공적 자원을 들이지 않고도, 학교에서 금융을 접하는 ‘양’을 늘릴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단발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학년, 지역, 학습 수준 등을 고려하지 않고 특강 형태로 진행되는 금융 교육은 장기적인 커리큘럼이 부재하고 오롯이 프로그램을 기업과 개별 학교의 의지에 맡기게 된다.

기업을 교육 일선으로 끌어오는 것은 한국만의 방식이 아니다. 영국에서도 HSBC, 바클레이스와 같은 대형 금융기관이 별도 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민간 금융 교육 비영리단체를 후원하는 식으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교육 프로그램의 지속성, 그리고 교육의 주체는 다소 다르다. 〈시사IN〉이 영국 현지에서 만난 금융 교육 비영리단체 마이뱅크(MyBNK)는 정부 보조금 대신 대형 은행과 에너지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경제교육을 전개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 비영리단체들은 5세 이상을 대상으로 폭넓게, 지속해서, 그리고 연령별로 다른 커리큘럼을 적용하며 실시한다는 점이었다.

학교 금융 교육이 이처럼 공백 상태로 방치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을 통해서라도 금융 교육의 제도화를 서두르자는 주장이 나온다. 올해 3월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교육진흥법 제정안을 발의하며 ‘학교 금융 교육 활성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금융 문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돈과 자본에 대한 금융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금융 교육과 소득 양극화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학교를 중심으로 보편적인 금융 교육의 체제가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라는 취지다.

3월14일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학교 금융 교육 활성화’ 토론회. ⓒ홍성국 의원실 제공
3월14일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학교 금융 교육 활성화’ 토론회. ⓒ홍성국 의원실 제공

 

그러나 이 법에 대한 여러 이견도 있다. 우선 이미 금융 교육이 ‘범교과 학습 주제’에 포함되어 있어 실과, 기술·가정, 사회, 경제 과목 등에서 분산 교육 중이고,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금융과 생활경제 과목이 신설되기 때문에 입법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다. ‘과목과 교습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니까’ 별도 ‘진흥법’까진 필요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경제교육지원법이 있기 때문에 금융교육진흥법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법을 개정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법의 취지나 구성도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2009년에 제정된 경제교육지원법 역시 ‘경제 교육 활성화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고 지원’하는 것을 법의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법까지 마련한 금융 교육 지원 시스템은 어째서 지금까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까?

금융 교육은 어쩌다 이념 투쟁에 쓰였나

여기에는 금융 교육의 ‘흑역사’가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마련된 경제교육지원법은 교육 주관기관을 선정하고, 해당 기관이 전국에 경제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하며 경제 교육을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정부의 역할은 이 ‘주관기관’을 지원하며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었는데, 법이 발의된 이후 이 역할을 맡은 단체가 바로 사단법인 ‘한국경제교육협회’다.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출범 이후 줄곧 정권 실세가 주도한 단체라는 눈총을 샀다. 경제교육지원법이 공포되던 시점에 한국경제교육협회 회장을 맡은 인물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유명한 이석채 당시 KT 회장이었다. 이후 이 단체는 정부로부터 막강한 지원을 받으며 경제 교육 관련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아하 경제’라는 청소년용 경제 교육 신문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당시 정부가 법을 만들면서까지 추진한 경제 교육이란, 학생들에게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사고를 확산시키려는 '뉴라이트식' 접근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단체는 2014년 협회 간부가 정부 보조금 수십억 원을 횡령한 사건이 적발되며 위기에 처한다. 당시 경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횡령 사건에 연루된 업체 사장의 비밀 장부를 발견했는데, 이 장부 한편에 ‘돈은 먹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적혀 있어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결국 그해 기획재정부는 한국경제교육협회와의 위탁 계약을 종료하고, 경제 교육 주관기관을 새롭게 공모했다. 그러나 적합한 주관기관을 찾지 못했고, 결국 경제교육지원법은 2016년, 주관기관을 두지 않고 기획재정부가 직접 경제교육관리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개정되었다.

경제교육지원법의 역사는 금융 교육이 정치권에서 어떻게 오용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과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학교 현장의 금융 교육 확대를 추진했으나,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특정 단체 몰아주기’에 금융 교육의 자원이 몰렸고, 이 단체 인사들이 사법 처리되면서 사회적으로 금융 교육을 다시 부각시킬 만한 동력을 만들기 어려웠다.

금융 교육 확대론은 ‘우파’의 주장으로 인식될 때가 많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김진영 강원대 교수가 쓴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친 미국 경제 교육 운동에 대한 이해’ 논문은 미국에서 경제 교육이 태동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뉴딜과 노동운동에 대한 반발로 경제 단체들 사이에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홍보하고 교육하는 활동이 일었다.” 초창기 ‘이념 투쟁’의 도구로 쓰였던 금융 교육은, 이후 1940년대 들어서야 성격이 차츰 바뀌게 된다. 시민들의 금융 이해력을 넓히는 것이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등장했고, 한편으로는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폭넓은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21세기에도 교육 현장에 시장주의를 확산하는 도구로 금융 교육이 동원되었다. 사회적 논의가 성숙되지 못한 셈이다.

반대로 진보 진영에서는 금융 교육 확대보다 포용적인 금융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자본주의에서 이자율은 소득이나 자산의 격차에 따라 다르다. 고소득층은 더 많은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취약계층은 제도권 금융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금융의 격차를 줄이자는 관점이 문재인 정부에서 대두되었고, 실제로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 금리 상품 확대(햇살론 등), 법정 최고금리 인하(연 20%) 등이 추진됐다. 사채와 같은 약탈적 금융으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자는 인식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에는 위기 가구를 위한 긴급 금융지원이 더 확대되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금융의 공급 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금융의 수요 측면, 즉 과도한 대출을 피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삶에 안정감을 주기 위한 금융 교육은 개인의 재무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때 빚의 총량을 줄이며 신용도를 향상시키는 ‘디레버리징’이 중요해진다.

11월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금융 이해력 수업. 연금 계산을 실습 중이다. ⓒ시사IN 박미소
11월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금융 이해력 수업. 연금 계산을 실습 중이다. ⓒ시사IN 박미소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빚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매번 밀린다.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유동성 확장기를 겪은 것도 금융 교육 논의를 더디게 한 배경이 되었다. 양적완화 여파로 금리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돈 ‘공급’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현재 한국 부동산시장의 뇌관이 된 과도한 전세자금 대출도 이 시기에 공급이 늘었다. 유동성 확장기에는 금융 교육 필요성이 부각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빚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 내에서 대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금융 교육을 더 이상 이념 투쟁의 도구로 사용하진 않게 됐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2020년대 들어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돈을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이 사라졌고, 다양한 경제 콘텐츠가 SNS를 통해 유통되며 금융 교육에 관심과 수요가 늘었다. (부족하게나마) 학교 금융 교육의 확대 논의가 있었고, 개정 교육과정에도 일부분 반영됐다. 서민금융교육진흥원을 통해 정책 금리 상품을 이용하려면 인터넷 금융 교육 강의를 의무 수강하는 등 성인 대상 금융 교육이 확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중이 원하는 금융 교육이 ‘좋은 주식을 고르는 법’ ‘부자 되는 법’에 매몰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취약계층에 절실한, 금융 관련 기본기를 쌓을 수 있는 교육은 체계적으로 마련하지 못한 채, 후불결제(BNPL, 앱을 통해 결제 대금을 나중에 갚는 일종의 외상 거래) 같은 신종 금융 기법만 도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0년대 한국 사회는 금융 교육 공백기였다. 이 기간에 미국이나 영국에서 전개된 사회적 논의를 한국 사회는 경험하지 못했다. 금융 교육을 최대한 어릴 적부터 시켜야 한다는 점, 금융 교육이 반드시 ‘자문’과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 금융 교육을 할 때에는 대상자의 마음 건강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점은 이제 막 우리가 본격적으로 협의하고 자원을 분배해야 할 문제가 됐다.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을 지나 한국에서도 연체율이 급증하는 ‘빚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개인의 금융 웰빙(well-being)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금융 교육의 확대가 절실해지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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