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들이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농업으로 유명한 프랑스는 식료품 자급도가 높은 국가다. 식품 대외의존도가 20%에 그친다. 그러나 최근 유럽 주변국과 가격경쟁을 하면서 각종 과일과 채소 등의 수입률이 40~60% 올랐다. 지난해 7월 상원이 게재한 ‘경제주권 재건을 위한 5개안’에 따르면, 주요 소비 품목인 버터와 밀가루 반죽(생지) 등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밀과 쌀의 경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인도의 수출통제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1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되어온 전기요금 상한제(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4%로 제한하는 제도)가 끝나면서 전기요금이 올해 2월과 8월 각각 15%, 10% 올라 프랑스 국민의 생활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닐슨IQ와 라디오 프랑스앵포는 매달 ‘프랑스앵포 장바구니’라는 지표를 발표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식품, 위생용품 등으로 일종의 ‘장바구니 품목’을 구성하고, 이 물건들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매달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37가지 생활필수품 및 식료품 장바구니 물가를 기준으로 측정한 이번 조사에 따르면, 2021년 11월 총 88유로(약 12만4000원)였던 ‘장바구니 물가’는 2년 새 약 20유로 오른 109.83유로(약 15만5000원)를 기록했다.

닐슨IQ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꾸준히 오른 장바구니 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전년 동기 대비 15.6% 올랐다. 이 추세는 점점 가팔라져 지난 2월 16.6%, 3월 17.7%로 최고점을 찍었고, 이후 10월에는 10.2%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8월7일 닐슨IQ 분석 담당자 에마뉘엘 푸르네는 물가상승에 제동이 걸렸다고 분석하면서도 “(물가가) 1년 반 전 가격으로, 18% 인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번 인상된 물가는 좀처럼 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9월13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 위치한 카르푸 슈퍼마켓에서 시민들이 쇼핑하고 있다.  ⓒREUTERS
9월13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 위치한 카르푸 슈퍼마켓에서 시민들이 쇼핑하고 있다. ⓒREUTERS

조사기관들은 ‘인플레가 정점을 지나고 있다’며 희망 섞인 분석을 내놓지만, 프랑스 국민의 체감은 다르다. 프랑스 통계청(INSEE)은 8월10일 18개월 만에 식료품 소비가 11%나 줄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7월20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국민의 14%인 약 900만명이 경제·사회적 궁핍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와 취약계층 지원 비영리단체 스쿠르 포퓔레르(Secours populaire)가 지난 9월6일 발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가 ‘최근 3년 동안 구매력이 감소했다’고 했으며, 18%는 ‘매달 마이너스 계좌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이 조사 결과에 대해 스쿠르 포퓔레르의 앙리에트 스테인베르그 사무총장은 “수많은 가정의 일상에 굶주림이 주요 문제가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무료 급식 단체

1985년부터 40년 가까이 무료 식사를 제공해온 한 구호단체의 위기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 무료 급식 활동의 35%를 담당하고 있는 단체 ‘레 레스토 뒤 쾨르(Les restos du cœur)’는 최근 재정위기에 몰렸음을 밝혔다. 9월3일 TF1 방송에 출연한 파트리스 두레 대표는 “물가상승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간 3년 내에 우리 단체도 문을 닫게 될 수 있다”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지난해보다 후원자가 20% 늘었지만 구호물자를 원하는 사람도 늘고, 무료 급식에 소요되는 비용도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약 110만명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한 이 단체는 올해 9월까지 이미 130만명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단체 측은 약 3500만 유로(약 496억원) 상당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심각성을 인식한 프랑스 정부와 주요 기업들이 뒤늦게나마 조치를 취했다. 오로르 베르제 가족·연대장관은 1500만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9월4일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도 이 단체를 지원할 보조금이 없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프랑스 명품 기업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이곳에 100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은 청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년 지원단체 Cop1이 9월12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816명 가운데 46%가 물가상승으로 끼니를 건너뛴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9월14일 라디오 프랑스블뢰에 출연한 비영리단체 식량은행(Banque alimentaire) 로랑스 샹피에 대표는 “요즘 (우리 단체가 지원하는 사람들 중) 25세 미만이 19%를 차지한다. 몇몇 청년은 하루에 2~3유로(약 2800~4200원)로 끼니를 해결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은 물가상승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하고자 지난 8월 말부터 유통업계와 제조업계 간 협상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두 업계의 이윤 조절을 통해 물가 회복을 도모했으나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8월29일 프랑스앵포와 인터뷰한 대형마트 카르푸(Carrefour) 알렉상드르 봉파르 회장은 “제조업계가 다가오는 3월에 재협상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원재료 가격 인하에 동참하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유통업계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제조업계는 반발한다. 장필립 앙드르 프랑스 식품산업협회(ANIA) 대표는 “모든 유통업계가 구조적 가격 인하를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라며 유통업계를 비판했고, 이에 대해 알렉상드르 봉파르는 “잘못된 생각이다. 유통업계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가격 인하가 오히려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된다”라고 반박했다. 급격한 생활물가 상승을 두고 두 업계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다.

9월27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매년 3월 유통업계와 제조업계가 한 해의 판매가와 수수료를 협상해오던 일정을 1월로 앞당기는 법안을 제출했다. 10월31일부터 시작된 두 업계 간 예비 협상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프랑스 대형마트 르클레르(Leclerc)의 미셸에두아르 르클레르 대표는 11월6일 프랑스앵포 인터뷰에서 “물가상승을 해결하려면 가격상승률을 2~3% 수준으로 맞춰야 하는데, 제조업계 측이 6~10% 인상을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지리한 대립 구도가 이어지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떠안고 있다. 소비자 단체인 ‘농촌가족협회(Familles Rurales)’의 나디아 지안 대표는 11월6일 프랑스앵포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스타 면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원재료 가격은 내리는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가격 상승의 원인도 설명하지 않고 그저 제조업계가 가격을 올렸다고 하기 때문이다”라며 제조업계와 유통업계 간 힘겨루기를 비판했다. 협상 갈등으로 인해 소비자가 물가상승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10월31일 프랑스 통계청은 한때 6%를 넘던 물가상승률이 4%대로 내려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르메르 경제장관은 “정부 경제정책의 성공”이라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겨울을 앞둔 프랑스 국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월18일 라디오 프랑스블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이 지난겨울 난방을 줄이며 생활했다고 답했다. 다시 겨울이 다가온다. 프랑스 국민들은 혹독했던 지난겨울보다 더 비싼 비용을 치를 위기에 처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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