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위치한 한 빈집. ⓒ시사IN 이명익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위치한 한 빈집. ⓒ시사IN 이명익

서울 확장론으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수도권 전역의 욕망을 건드리는 전략이다. 판이 깔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따라간다. ‘우리도 주변과 합치자’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바야흐로 도시 벌크업(Bulk up) 시대다.

그러나 벌크업보다 급한 건 다이어트다. 전 국토에서 도시의 규모와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정돈하는 ‘축소도시’ 정책이 다급하다. 이유는 간명하다. 인구가 줄어든다. 아파트가 밀집한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다수 비수도권 도시들은 인구 감소의 흔적을 ‘공간’에서 느낄 수 있다. 듬성듬성 빈집이 는다. 주민도 줄어들어 도시행정에 들어가는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다수 ‘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대로는 도시를 유지할 수 없으니 그나마 남은 사람들을 모여 살게 하고, 의료·행정·교육 서비스를 효율화하자는 게 ‘축소도시’의 골자다. 일본에서 화두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2010년대 중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다들 해봐서 안다. 벌크업보다 다이어트가 더 어렵다. 고통이 뒤따른다. 축소도시 전략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이주’다. 멀리 떨어져 사는 고령 주민을 행정력이 미치는 곳으로 옮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재산을 두고 어딜 가란 말이냐’며 반발한다. 그래서 장기간 연습이 필요하다. 10년, 20년을 계획하고 지금 시작할 일이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는 역사적으로 다이어트한 경험이 없다. 줄곧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신도시 개발’을 외쳤다.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개발해도 살 사람이 없다. 각 지자체들이 ‘서울의 강남·분당 개발’을 따라 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비수도권 지방 도시의 원도심이 어떻게 초토화되었는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준비해야 한다. 멀찍한 곳에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흩어진 사람들을 모여 살게 하는 정책이 지역마다 절실하다. 축소도시는 도시를 쪼그라들게 하자는 게 아니다. 모여 살며 밀도를 높여, 자가용 없이도 살 수 있는 적정 규모 도시를 구축해 생명력을 이어가자는 논의다.

2020년 프랑스 파리 시장 선거에서 화제가 된 ‘n분 도시’라는 개념이 있다. ‘걸어서 15~30분 이내’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게 하자는 정책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일부 후보들이 ‘20분 도시’ ‘30분 도시’ 등을 내세웠다. 오늘날 도시계획은 주민들의 ‘시간’에 초점을 둔다. 그러자면 적정 밀도가 필요하다. 지자체들이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모색하게 될 문제다. 벌크업을 뒷받침할 인구가 사라진다.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체지방이 아닌 적당한 근골격량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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