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7일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 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미리암 칸의 전시 작품에 페인트를 뿌렸다. ⓒWEST OBSERVER 갈무리
5월7일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 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미리암 칸의 전시 작품에 페인트를 뿌렸다. ⓒWEST OBSERVER 갈무리

프랑스 파리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 전시 중이던 한 예술품이 반달리즘(문화유산,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의 표적이 됐다. 2월17일부터 5월14일까지 열린 스위스 작가 미리암 칸의 ‘내 일련의 생각(Ma pensée sérielle)’ 전시에서 작품에 불만을 품은 한 80대 남성이 해당 작품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지난 5월7일 오후 3시30분쯤 약병에 담아 숨겨서 들어간 보라색 페인트를 작품 위에 뿌렸다. 이후 미술관 보안요원들에 의해 저지된 후 경찰에 연행됐다.

이 사건은 프랑스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정치·사회 분야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라디오 채널 프랑스앵포 보도에 따르면, 미술관 측은 “(훼손된) 작품을 어떻게 할지 작가와 협상할 때까지 전시관을 닫겠다”라고 전했으며 리마 압둘 말라크 문화부 장관은 즉시 현장을 찾아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며 꽤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튿날인 5월8일, 유럽 전승기념일을 맞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자유의 승리를 축하하는 5월8일에 어제 팔레 드 도쿄에서 일어난 반달리즘 행위를 규탄한다. 예술작품을 비난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를 공격하는 일이다. 프랑스에서 예술은 항상 자유롭고, 예술 창작에 대한 존중은 보장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문제가 된 작품은 등 뒤로 손이 묶인 작은 사람이 한 남자에게 강제로 구강성교를 당하는 듯한 장면을 담고 있다. 이번 페인트 테러는 전시 종료 일주일을 앞두고 벌어졌지만 미리암 칸 작품에 대한 논란은 예전부터 이어져왔다. 지난 3월부터 ‘아동을 위한 법률가들(Juristes pour l’enfance)’을 포함한 여러 아동인권 보호단체들은 해당 작품 속 피해자로 보이는 작고 마른 사람이 아동 포르노로 비칠 수 있다면서 작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 ‘콩트르어택(Contre-Attack)’은 “아동이 소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미리암 칸의 작품들이 “비슷한 내용의 예술을 수용하고 대중화시키려 한다”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인터넷 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에는 현재까지 1만4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전시 시작 직후부터 트위터를 중심으로 미리암 칸 전시에 대한 논란이 일자 이를 의식한 팔레 드 도쿄 측의 공식 반응도 있었다. 3월7일 게재한 서한에서 팔레 드 도쿄는 해당 전시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폭력성을 담은 예술작품임을 알고, 건물 입구, 전시장 입구, 전시장 안에 여러 차례 주의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특히 논란이 된 작품에는 작품 설명 텍스트를 추가하고, 풀타임 도슨트(작품을 설명해주는 안내인)가 작품 옆에 상시 대기해 관람객의 의견을 듣고 이해를 도울 수 있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미성년자 관람객이 있으면 표 구매 시 미리 주의를 주고 보호자와 동반 입장해야만 전시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미리암 칸은 공식서한에서 “(해당 작품의 사람은) 아이가 아니며, 이 그림은 반인륜적 범죄이자 전쟁무기처럼 사용되는 강간을 표현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덧붙여 그림 속 두 인물의 체격 차이로 아동 포르노라는 해석 문제가 제기된 점에 대해 “두 인물의 신체 대조는 억압자의 신체적 힘과 전쟁에 의해 무릎 꿇려진 야윈 피억압자의 허약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은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미리암 칸은 이 작품을 러시아 군이 자행한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민간인 학살 및 성폭행 사건 보도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라고 말한다. 피억압자는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라는 것이다. 전시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에마 라비뉴와 마르타 지에반스카도 공식 팸플릿을 통해 74세 작가 미리암 칸이 약 40년 전 예술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페미니즘·반핵운동에 참여해왔으며, 그에게 작품은 “인격 모욕과 폭력을 고발하는 개인적 저항, 대립의 터전”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걸프전과 2000년대 ‘아랍의 봄’,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사회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창작해온 것도 이 같은 작가의 성향과 삶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월8일 트위터에 “어제 팔레 드 도쿄에서 일어난 반달리즘 행위를 규탄한다”는 글을 올렸다. ⓒ마크롱 트위터 갈무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월8일 트위터에 “어제 팔레 드 도쿄에서 일어난 반달리즘 행위를 규탄한다”는 글을 올렸다. ⓒ마크롱 트위터 갈무리

미리암 칸과 팔레 드 도쿄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정치권에까지 이르렀다. 3월17일 극우 성향 국민연합(RN) 의원 카롤린 파르망티에는 트위터에 해당 작품 앞에서 찍은 영상을 올리고, 3월21일 국회에서 “전쟁범죄를 고발한다는 이유일지라도 이런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라며 문화부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리마 압둘 말라크 장관은 미리암 칸 작가가 40년 전부터 “전쟁의 참혹함을 고증하고 고발해왔다”라며 “예술이 충격을 주고, 의문을 제기하며, 때로는 불편함과 반감까지도 야기할 수 있지만 예술은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같은 날 ‘창작의 자유 연구소(L’Observatoire de la liberte de creation)’는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범죄를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조르주 상드(프랑스 낭만주의 작가)가 문학에 대해 말했듯, ‘작가는 반사하는 거울이자 모방하는 기계로, 그의 흔적이 정확하고 반영이 충실하다면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고, 이미 2세기를 지나온 이 논쟁은 여전히 비판자들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미리암 칸 작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3월28일, 파리 행정법원은 아동인권 단체가 제기한 전시 중단안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해당 작품이 “아동에게 권위적 이익을 얻고자 (아동의) 근본적 자유를 불법적으로 침해했다는 명백하고 심각한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미리암 칸의 작품들과 사회적 배경을 벗어나서 이해할 수는 없다”라고 판단했다. 이어서 4월14일 최고행정법원인 국참사원(Conseil d’Etat) 역시 팔레 드 도쿄가 해당 작품 근처에 여러 차례 경고문을 배치하고, 미성년자는 보호자와 동반하도록 한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요소들이 작가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전시 중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5월7일 팔레 드 도쿄는 ‘재물 파손 및 표현의 자유 침해죄’로 페인트 테러를 저지른 관객을 고소하기로 했다. 5월8일 일간지 〈르몽드〉 보도에 따르면, 이 관객은 국민전선(국민연합 이전 당명) 의원인 피에르 샤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5월9일 석방된 그는 징역 최대 7년, 벌금 최대 10만 유로(약 1억4500만원) 형에 처해질 수 있다. 팔레 드 도쿄의 기욤 데상주 관장은 5월7일 〈르몽드〉 인터뷰에서 “이 논쟁의 극단적 결과에 유감을 표한다. 작가 동의 아래 팔레 드 도쿄는 파손된 흔적까지 포함해 전시를 이어가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5월14일까지 8만명이 넘는 관객이 해당 전시를 찾았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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