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고의 악인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그 이름, 아돌프 히틀러. 그의 등장에 대해선 상식처럼 여겨지는 설명이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막대한 배상금을 떠안게 된 독일에서는 경제적 고통이 극심했다. 배곯는 민중은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자극하는 나치의 선동에 끌렸다. 기성 정당들은 제공해주지 못한 고양감이었다. 결국 독일 국민들은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나치당을 선택했다. 그렇게 모두가 나치에 충성을 다하게 됐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했다. 우선 히틀러의 집권 과정은 오롯이 민주적이지 않았다. 히틀러는 총통으로 집권하기 이전부터 꾸준히 폭력에 의지했다. 나치 돌격대는 공산당, 사회민주당 등 정치적 반대 세력과 진보 언론을 무자비하게 찍어 눌렀다.

더 중요한 사실은, 히틀러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근본적 원인이 기성 보수 정치세력의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히틀러를 좌파 세력을 때려잡기 위해 ‘잘 벼린 칼’ 정도로 취급했고, 목표를 이루면 그를 토사구팽하려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보수 정치세력 사이 분열을 파고들었고, 총통 자리에 오른 뒤 민주주의를 말살시켰다.

이쯤 해서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김 최고위원이 전광훈 목사의 설교에 진심으로 감화됐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전광훈 세력을 이용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진 않을까. 저자는 히틀러의 등장 과정이 현대 정치 상황에 비추어 친숙하게 느껴진다면서도, 책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에게는 당시 독일인보다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썼다. 요즘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 이 말에 의심이 든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