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에 20세기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섰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했다. ⓒAP Photo

지난 10월6일 올해의 노벨 문학상이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아니 에르노에 대해 “개인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예리하게 탐구한 작가로 젠더·언어·계급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여러 각도에서 지속적으로 고찰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개척해왔다”라고 밝혔다. 수상 직후 에르노는 “노벨 문학상 수상은 큰 영광이며 세상의 정의와 올바름을 증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다. 올해를 포함해 수상자가 총 16명 나왔다. 1927년 앙리 베르그송, 1957년 알베르 카뮈, 2014년 파트리크 모디아노가 대표적이다. 1964년 장폴 사르트르는 수상을 거부했다. 프랑스에서 여성 수상자는 아니 에르노가 처음이다.

82세 노작가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문학적 소재로 삼아 자서전과 소설을 혼합한 오토픽션(auto-fiction)의 형태로 글을 썼다.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딸로 태어나 유명 작가이자 문학 교수가 된 그는 스스로 ‘계급 전향자’라고 칭한다. 이 과정에서 경험한 사회적 불균형을 문학으로 다뤘다.

에르노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소도시 이베토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부모와 살았다. ‘평평한 글쓰기’라 불리는, 특유의 건조하고 냉철한 문체로 어린 시절의 삶을 써 내려갔다. 열여덟 살 에르노는 중등교사 임용시험(Le CAPES)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몇 주 뒤 아버지가 사망한다. 그의 아버지는 문맹이었다. 가난한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며 에르노는 〈남자의 자리〉(1983)를 썼다. 1987년에는 가난을 견디며 가정을 꾸려간 여성, 어머니에 대한 기록(〈한 여자〉)도 남겼다. 올해 10월19일 아니 에르노는 한 독서 프로그램에서 “가난 속에 살며 항상 내일을 두려워했던 우리 가족”, 그리고 “현실을 잊기 위해 알코올 중독에 빠져 지내야 했던 어머니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책이란 삶과 같기에 글쓰기로 이를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10월16일 물가상승 대책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에르노(앞줄 가운데). ⓒAFP PHOTO

“현 페미니즘 세대의 지적 레퍼런스”

〈남자의 자리〉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는 등 그의 ‘사회적 글쓰기’는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자신의 삶을 ‘그녀’라는 3인칭 캐릭터로 묘사한 〈세월〉이라는 작품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스어상 등을 수상했다. 이 작품의 일부는 〈멋진 8년의 세월〉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다. 지난 5월 열린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5월24일 칸 영화제에 참석한 아니 에르노는 AFP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내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유와 해방을 추구했던 다수 여성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에르노는 작품을 통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젠더 불평등을 증언했다. 1974년 발표한 등단작 〈빈 옷장〉은 그가 경험한 불법 임신중지 수술을 다뤘다. 임신중지 합법화(1975년) 이전인 1964년, 25세 나이로 임신중지를 경험한 한 대학생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같은 내용을 구체화한 〈사건〉으로 2000년 다시 출판됐다(오드리 디완 감독은 2021년 이 작품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 〈레벤느망〉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얼어붙은 여자〉(1981)는 어린아이, 젊은 여성 그리고 어머니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실패한 결혼 생활과 꿈을 잃고 ‘얼어붙은 여자’가 된 자신을 그려내며 젠더 불평등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인터뷰에서 에르노는 이 작품에 대해 “아파트에 혼자 남아 얼어붙어버린 여자”를 묘사했다고 말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남편과는 다른 여성의 역할을 지적했다. 자신은 “집안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니 에르노는 “여성도 사랑을 하고 열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라며, 여성의 욕구 본연에 집중하는 작품들을 썼다. 여성으로서의 욕구를 여과 없이 전면에 내세운 에르노의 독창적 글쓰기를 보여준다.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과 올해 5월 펴낸 〈젊은 남자〉는 각각 외국인 유부남, 30살 연하 청년과의 사랑 이야기가 소재다. 〈소녀의 기억〉(2016)에서는 첫 성경험을 다뤘다. 〈단순한 열정〉은 비교적 사생활에 관용적인 프랑스 사회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작품이다. 프랑스 국제주간지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은 2021년 10월7일 “아니 에르노가 미투 운동으로 대표되는 현 페미니즘 세대의 지적 레퍼런스가 되었다”라고 평했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를 관통하는 방식은 ‘사회참여’다. 그는 “나는 내 삶과 글쓰기라는 두 방식으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아니 에르노의 사회참여는 지속되어왔다. 최근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10월16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와 함께 물가상승에 따른 대책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이 시위에는 14만명이 모였다. 아니 에르노는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아니 에르노는 오는 12월10일 스톡홀름에서 발표할 수상소감 내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작가이자 사회 참여자로서 문학적이고 정치적인 소감을 얘기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학과 관련해 20세기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섰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작가로서의 여성과 글쓰기를 중시했던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했다. “아니 에르노가 내 삶을 바꿨다”라는 독자들의 평에 대해 그는 “(이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이 나의 삶을 바꾸었다”라고 대답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