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남편의 유언대로 죽어서 남편 곁에 나란히 묻히는 것도 맘대로 못합니까.” 경기도 오산시에 사는 류춘생씨(89, 위)는 먼저 간 남편의 생전 유훈을 지키려다 봉변을 당했다며 서글퍼했다. 올해 들어 남편과 함께 누울 장지를 마련한 뒤 관계 당국으로부터 이장 허가를 얻었다. 지난 6월9일 인부들과 천안공원묘원에 묻혀 있는 남편 유골 이장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 무리의 건장한 사내들과 포클레인 두 대가 나타나 관을 부수며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장을 막은 이는 천안공원 강연승 이사장 측이었다. 류씨는 포기하지 않고 강 이사장 측을 상대로 남편의 유골에 대한 권리는 자신에게 있으니 넘겨달라는 취지의 이색 법정 소송을 냈다. 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류춘생씨의 남편은 1960~1970년대 국내 재계 서열 3위권에 들었다가 1980년대 들어 몰락한 신진자동차그룹 일가인 고 김제원 이사장이다. 그는 동생 김창원 회장과 더불어 1950년대 새나라자동차를 설립해 일약 대기업 그룹으로 급성장시켰다. 새나라자동차는 훗날 신진자동차로 개명했다.

동생 김창원씨에게 신진그룹 운영권을 넘긴 그는 1982년 평생 숙원이던 천안공원묘원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천안공원은 현재까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사설 공원묘지다. 1960년대에 첫 부인을 잃은 김제원 이사장은 이 무렵 류춘생씨를 배필로 맞았다. 1987년 남편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류춘생씨가 호주를 상속받아 해마다 집에서 남편 기제사를 지냈다. 천안공원묘원 운영권은 김 이사장이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무남독녀(김정숙, 1997년 사망)에게 돌아갔다. 그 딸을 이은 강연승 이사장은 류씨의 외손자인 셈이다.

류춘생씨는 두 모자가 법적으로 새어머니이자 외할머니인 자신을 철저하게 방치,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세월이 흘러 가난한 노후에 거동마저 힘들 정도로 방치된 류씨를 딱하게 여긴 고 김제원 이사장의 조카들(고 김창원 회장 자녀들)이 나서서 돌아가며 시중을 들고 있다.

올 들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긴 류씨는 남편의 생전 유훈만은 이행하겠다고 벼르며 유골권을 행사하러 나섰다. 천안공원 측과 유골 분쟁이 시작된 연유다. 막강한 재력을 가진 천안공원 측은 김앤장 소속 변호인단을 동원해 외할머니 류씨의 유골권 소송에 맞서고 있다.

지난 10월22일 김제원 이사장 34주기를 맞아 천안공원 추도식장에 나온 천안공원 강 이사장은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취재 용건을 꺼내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천안공원 측은 “강 이사장이 기자는 무조건 접촉을 피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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