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1일 흉기 살인 및 방화가 일어난 일본 도쿄 게이오센 열차에서 승객들이 탈출하고 있다. ⓒREUTERS

제49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 투개표가 치러진 지난 10월31일, 세간의 관심은 선거 결과보다 도쿄 게이오센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흉기 살인 및 방화 사건에 쏠렸다. 같은 전철 차량의 다른 칸에 타고 있던 일반 승객이 당시의 범죄(방화) 영상을 생생하게 촬영했다. 원래 급행 노선이었던 해당 열차는 사건 발생 직후 조후시 고쿠료역에 긴급 정차했는데, 차량 절반 정도 높이인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철 창문 위쪽으로 몸을 빼 스크린도어 위로 탈출하는 승객들의 영상이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널리 퍼졌다.

범인은 스물네 살의 핫토리 교타. 범죄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전철이 정해진 역에 정차하지 않아서 도어가 열리지 않은 덕분에 검거하기가 쉬웠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영상을 보면 그는 아무도 없는 전철 차량 안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마치 ‘할 일은 다 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찰들이 에워쌌을 때도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되었다. 도망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도 핫토리는 “최근에 실직했고 교우관계도 실패해 죽고 싶었지만 죽을 용기가 없어 범죄를 저질러 사형을 받고 싶었다”라고 진술했다.

그는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줄곧 살아왔다. 이번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대도시인 도쿄로 왔다. 핼러윈 기간을 디데이(D-Day)로 삼았다. 길이 30㎝의 칼, 방화에 쓰인 휘발유 등 범행 도구도 도쿄에서 구입했다. 범행 장소 역시 의도적으로 정차역이 적은 급행 노선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희생자들이 도망칠 수 없는 ‘밀실 테러’를 계획한 것이다. 범행 당시 그가 입었던 ‘조커’ 복장이 관심을 모았다. 그는 실제로 영화 〈조커〉에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게이오센 지하철 사건의 용의자인 핫토리 교타. ⓒAFP PHOTO

핫토리의 진술 중 특히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8월 사건에 영향을 받아 식용유 대신 휘발유를 준비했다”라는 부분이다. 그가 말한 8월 사건은 지난 8월6일 오다큐센을 달리는 전철(세이조가쿠엔마에역과 소시가야오쿠라역 사이)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상 사건이다. 범인은 36세의 남성으로 칼을 들고 전철에 탑승해 일면식도 없는 승객 10여 명을 찔렀다. 이후 식용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으나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피해자들은 주로 여성이었고, 이후 범인이 경찰 조사에서 “행복해 보이는 여자들을 죽이고 싶었다”라고 털어놓아 전형적인 여성혐오 범죄임이 밝혀졌다. 평론가 우에노 지즈코는 주간지 〈아에라〉에 기고한 글에서 “2016년 한국 강남에서 일어났던 여성혐오 범죄와 본질적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라고 분석했다.

여성을 집중적으로 노렸던 8월 오다큐센 사건과 성별 관계없이 무차별 살상을 전개했던 이번 게이오센 사건은 ‘의도’라는 측면에선 다르다. 그러나 사건의 형태 및 전개를 보면 이번 게이오센 사건이 8월의 오다큐센 사건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핫토리는 8월 사건 범인과 마찬가지로 길이 20~30㎝의 칼을 소지했다. 그는 오다큐센에서 식용유가 방화에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참조해 휘발유를 준비했다. 혹자는 범행 장소가 지하철이라는 점에 착안해 옴진리교가 1995년 3월에 일으킨 도쿄역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핫토리 사건은, 범행을 일으킨 피의자가 한 명이라는 점에서 옴진리교라는 교단이 조직적으로 계획하고 움직였던 사린가스 테러 사건과는 전혀 다르다. 핫토리와 8월 사건 범인은 오로지 개인적 원한 혹은 자포자기를 원동력으로 삼아 범행을 일으켰다. 범인들은 체포 당시 저항하지 않았으며 범죄사실 역시 순순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수차례에 걸친 상소·항고 등으로 거의 20여 년 동안 재판을 받았던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2018년 7월 사형 집행)와는 차원이 다르다.

8월6일 도쿄 오다큐센 전철에서 일어난 살인 및 방화 사건의 피해자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REUTERS

범인은 무직이거나 일용직·파견직이었다

문제는 두 사건 이후다. 11월 들어 이 두 사건과 유사한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증오범죄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11월9일 미야기현 도메시의 보육시설에 나이프를 든 31세 남성이 나타났다. 경비원과 남성 보육 지도사들의 재빠른 대처로 범행 전에 검거해서 불상사를 막았다. 용의자는 경찰 진술에서 “어린아이들을 죽이면 사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앞서 핫토리가 했던 말과 흡사하다. 같은 날 도카이 신칸센 노조미 11호 전철 차량 내에서도 69세 남자가 남성 회사원의 머리를 휴대전화로 수차례 내려쳐 체포됐다. 11월8일에는 구마모토현 규슈 신칸센 사쿠라 401호 전철 차량 내부에 화학 액체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던 또 다른 69세의 범인이 체포됐다. 방화미수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게이오센 사건을 보고 나도 불을 지르고 싶었다”라고 진술해 충격을 안겼다. 11월6일에는 도쿄 지하철 도자이센 가야바초역과 몬젠나카초역 사이를 주행하던 전철 내에서 송곳(길이 15㎝, 공사현장용 공구)을 든 50대 남성이 승객을 협박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마스크를 안 한 건 내 잘못이지만 (해당 승객이) 자꾸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 가방에서 송곳을 꺼낸 것일 뿐”이라고 범행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 용의자를 그대로 놔두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게이오센 사건 전이지만 지난 10월에는 도쿄 우에노역 구내에서 시민 2명이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범행은 하나같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이며 몇몇 사건은 피해자들이 도망갈 공간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거나 제한되는 전철에서 일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범인들은 모두 ‘무직’이거나 일용직 및 파견업종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점도 나중에 밝혀졌다.

사실 일본의 범죄 건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경찰청의 형법범죄 통계연감 최근 5년 치를 살펴보면 범죄 인지 건수가 2016년 99만6120건에서 2020년 61만4231건으로 매년 7만~10만 건씩 줄었다. 살인, 강도 등 흉악범죄도 2016년 5130건에서 2020년 4444건으로 700여 건 감소했다. 흉악범 검거율도 대폭 상승해 2020년 96%(4268건)에 달했다. 일본 인구가 1억2500만여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치안 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전철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묻지마 증오범죄’들이 조성하는 공포 분위기를 치안 관련 통계수치들로 안정시키기는 힘들다. 게다가 일본은 세계적인 철도대국이다. 철도가 산소처럼 존재하는 나라다. 총은 휴대할 수 없지만 칼은 어디서나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소지품 검사를 일일이 시행할 수도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철도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냥 수틀린 개인이 저질러버리는 범죄이니, 과거의 옴진리교나 야쿠자 폭력단처럼 사전에 감시하고 예방할 수도 없다. 이러한 형태의 범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엔 힘든 시스템이 정착돼버렸다.

자포자기 심정과 무시당한다는 감정

앞서 언급했지만 전철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들은 대부분 무직이거나 고용 안정성이 없는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일본 사회는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구인율이 구직률을 뛰어넘었다. 일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구인자 우대 시장이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불안정한 고용, 저임금 등 질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너무 많다. 여기엔 파견회사의 존재도 한몫한다. 파견회사에 등록하면 일자리는 소개해주지만 월 급여의 일정 부분을 떼어 지불해야 한다. 세금으로 빠져나가고, 파견회사에 뜯기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건 별로 없다. 실제로 파견회사에 등록해 일자리를 얻은 나의 지인 중에 월 급여 30만 엔을 이리저리 떼이고 정작 손에 쥔 돈은 20만 엔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었다. 파견직이라 일본 급여체계의 장점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보너스도 못 받는다. 결국 몇 달 일하다가 노동의욕 상실로 그만두기 십상이다. 그러면 친구들이, 가족들이, 나아가 언론이 나서서 때린다. ‘모두 일하는데 넌 왜 일을 안 하니?’라고.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연일 ‘실업률 최저’를 언급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포자기한 이들이 혼자 죽는 게 아쉬워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 흉기를 준비해 실제로 범죄를 일으킨 이들(오다큐센, 게이오센, 미야기 보육원, 우에노역 구내 사건 등등)의 진술을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진술들이 있다. “누구라도 좋으니 죽이고 싶었다.” “혼자 죽기는 싫었다.” “죽을 용기가 없어 남을 죽이면 사형을 받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일용직에 종사하는 송곳 사건의 피의자는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겁주려고 했다”라고 말한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무시당한다는 감정이 이들의 범행 동기가 된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과거에도 일본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별의별 흉악범죄들이 일어났다. 범죄 건수는 감소 추세다. 범죄자를 옹호할 생각은 물론 없다. 세상의 무직자들 혹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전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립된 ‘자기책임론’이 게이오센 사건 등 최근 횡행하는 범죄 유형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짧은 기간 내에 자기책임론을 대체할 일상적 이데올로기가 등장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범죄자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대상 없이 아무나 노리는, 나 혼자 죽기 아까우니 누군가는 저승 가는 길동무로 삼겠다는 자포자기한 ‘외톨이 조커’들 말이다.

기자명 박철현 (일본 데쓰야공무점 대표·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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