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4월8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티탄 씨가 함께 하고 있다.ⓒ연합뉴스

“금전으로나마 위자(慰藉)해야 한다”라는 말은 법조계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다. 타인에게 끼친 정신적 손해를 보상할 다른 방법이 없다면(또는 없으므로) 돈으로라도 사죄하라는 것이다.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소송도 모두 위자료를 청구하는 내용이다. 이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이런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베트남 국적의 응우옌티탄 씨가 한국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위자료 청구 소송도 마찬가지다. 응우옌 씨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 70여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의 생존자다.

응우옌 씨를 비롯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도 우리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겪은 것과 같이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이들은 1999년 학살에서 생존한 사실을 증언하며 한국 사회에 최초로 이 문제를 공론화한 이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진상 규명에 힘써왔다. 응우옌 씨는 2018년 한국 시민사회의 주도로 서울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도 원고로 참여했다. 이 민간 차원의 ‘모의 법정’이 모델로 삼은 행사가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2000년 일본 도쿄)’이란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김영란 전 대법관 등으로 구성된 당시 재판부는 한국에 책임을 인정하고, 손해배상과 진상조사를 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2019년 4월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같은 달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베트남 법률가협회도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 조치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2020년 4월 20대 국회에서 진상조사를 하자는 특별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일부 군인들 역시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전쟁범죄 사실을 명확히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다. 정부의 공식 문서상 학살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피해국인 베트남이 먼저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거나 한·베트남 양국 사이 진상규명에 협력할 외교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의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그러했듯, 응우옌 씨도 위자료 청구 소송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자국 또는 타국의 사법부를 통해 돈으로나마 위로받겠다는 것은 전쟁범죄의 피해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구제 수단이다. 전쟁 당사자인 가해국과 피해국 모두 이들 개인의 고통에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민간인 학살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하다

응우옌 씨의 소송은 진행 중이다. 위자료 청구 소송의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전쟁범죄에 관한 소송도 예외가 아니다. 피해자 개인이 가해국에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혔는지’ 입증해야 한다. 한국도 응우옌 씨에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함께 진실을 밝혀보자’가 아니라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식이다.

지난 11월16일 열린 4차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해병대 출신 류진성씨는 이를 입증하는 역할을 자청했다. 자신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당시 한국군이 퐁니·퐁넛 마을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했던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한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정한지 내가 보고 행동한 것을 통해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라고 증언 취지를 밝혔다고 한다. 한 노병의 용기에, 그리고 응우옌 씨의 오랜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기자명 노주희 (경기국제평화센터장·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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