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이번 달에 받은 녹색평론사의 우편물은 여느 달의 것과 달리 묵직했다. 봉투를 뜯어보니 〈녹색평론〉 11-12월호와 함께, 30년 전에 나온 창간호(1991년 11-12월호)의 영인본이 한 권 더 들어 있었다. 웬 영인본? 의문은 금세 풀렸다. 이번에 나온 제181호는 〈녹색평론〉 창간 30주년 기념호였다. 아마도 출판사는 30주년을 자축하고 독자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창간호 영인본을 찍은 모양이다. 귀한 책을 만지작거리며 차례를 훑어본 후, 새로 나온 11-12월호를 펼쳤다. 그 속에는 A4 용지 한 장으로 된 편집자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한 줄로 요약해보죠. “실은 고심 끝에 저희 편집실은 1년간 잡지를 휴간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제작된 영인본을 보기 전에 나는 한 번도 〈녹색평론〉 창간호를 대면하지 못했다. 이 책이 나오기 한 해 전에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를 한 탓이다. 고향을 떠나온 자는 고향을 되돌아보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나는 그 시절 포스트모더니즘의 한복판에 있었는데, 매우 부당하게도 〈녹색평론〉은 거대 이념이 무너진 정세를 비집고 탄생한 포스트모던 사조 가운데 하나로 오해되기도 했다. 그런즉, 포스트모더니스트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재차 탐닉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가 2008년 초에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느린걸음, 2007)에 대한 독후감을 청탁받았죠. 이후로 〈녹색평론〉에 자주 글을 실었어요.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김종철 선생님의 〈녹색평론〉 창간사는 발표 당시 커다란 충격 속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 글은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선생의 에세이집 〈간디의 물레〉(녹색평론사, 1999)에 재수록되어 있으나, 창간호에서 직접 읽는 체험은 예사롭지 않다. 30년 전의 물음이 퇴색하기는커녕 더욱 생생하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 글에서 공해·오염·자연 파괴 같은 환경문제를 더 많은 과학과 더 정교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접근에 선을 그었다. 현대 기술문명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정복이라는 기획과 절연될 수 없다. 맞아요. 과학기술은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생태위기의 원인이지 해결책이 아니죠.

환경운동은 인간이 주인이고, 주인인 인간이 환경을 개량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태주의는 자연이 주인이고, 인간은 자연 가운데 속한 많은 생명체 중 일부임을 인식하는 것이라서 좀 더 근본주의적이다. 이를테면 환경운동이 경소형차와 전기차를 보급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한다면 생태주의는 자동차를 버린다. 김종철 선생이 좋아했던 이반 일리치가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사월의책, 2018)에서 주장한 것도 바로 그런 거였다. 문제는 그처럼 근본적이라서 생태주의는 그 중요성만으로 쉽게 수용되거나 실천되지 못하죠. 열성적인 환경운동가들과 생태주의를 접한 이들이 자동차와 자전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을 때, 해결책은 자신의 승용차 지붕에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하는 거죠.

〈녹색평론〉 181호
녹색평론사 펴냄

생태주의의 ‘우주적 생명활동’

창간사에는 과학기술 문명과 한 몸이 된 산업·개발·발전·경쟁과 절연하고 생태주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의 어려움이 절절히 드러나 있다. “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끔찍스럽기도 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가 자기 개인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게 하는 문화를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문화의 재건은 우리 각자의 인간적인 자기 쇄신 없이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과학기술 문명에서 생태주의로의 자기 쇄신은 종교적 회심 또는 개심에 맞먹는 근본적인 결단이 아니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간사에 “종교” “종교적”이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오는 까닭은 인간이라는 좁고 미약하고 일시적인 삶의 테두리를 자기보다 더 거대한 “우주적 생명활동”에 귀속시키고자 할 때 비로소 영혼과 영성(靈性)이 중시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창간사는 생산의 양적 증가를 유토피아의 조건으로 승인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전통적인 산업화 이데올로기로 보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은 당시의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과 맞물리면서 생태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로 오해되기도 하는 맥락을 제공했죠. 하지만 진리의 다원화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선생의 생태주의는 여러 개의 진리가 아닌 하나뿐인 ‘으뜸가는 가르침’이었다.

선생이 생태주의자의 삶을 “명상하는 삶”이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했듯이, 〈녹색평론〉에는 고행하는 수도자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녹색평론〉이 종교이거나 비밀결사였던 적은 한 번도 없죠. 어느 관찰자의 말처럼, 통권 100호를 낸 2008년 즈음부터 〈녹색평론〉은 환경생태주의에서 정치 민주화로 관심의 폭을 넓혔다. 종교운동은 비밀결사처럼 자기들끼리만 그리고 세상을 버리고도 가능하지만, 생태주의 실천은 정치투쟁과 떨어질 수 없죠. 〈녹색평론〉은 기본소득, 추첨제 민주제, 숙의민주주의, 지역화폐, 지방자치 등의 정치 현안을 의제화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제3세계의 다양한 운동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했다.

〈녹색평론〉 30주년 기념호에는 매호 있었던 김종철 선생의 권두언이 없다. 대신 〈녹색평론〉의 분기점이었다고 할 만한 창간호 및 창간 1주년·10주년·20주년 기념호의 권두언이 재수록되어 있죠. 창간 1주년 기념호에서 선생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답답한 마음을 견디다 못해 불쑥 시작한 일”이라고 밝혔고, 10주년 기념호에서는 “창간 당시에 이 잡지가 두서너 해를 더 넘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라고 썼다. 그리고 20주년 기념호 권두언에는 이렇게 썼죠.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원래 언론·출판 행위란 ‘반역’을 위해 시작된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반역’이란 물론 주류 가치, 즉 지배적인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의심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출판을 가리키는 말(edition)과 반역 행위를 가리키는 말(sedition)이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녹색평론〉이 감히 그러한 독립 매체에 속한다고 주장할 염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노력은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생태주의는 마술도 종교도 아닌 근대과학이 배제해온 엄연한 과학이며, 근대과학에 대항하는 또 다른 과학이다. 그런 뜻에서 〈녹색평론〉은 권력과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근대과학의 교의를 거스르는 가장 급진적이고 반역적인 잡지였죠.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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