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중국 전·현직 최고지도자의 비공개 회의가 열리는 베이다이허에 세워져 있는 마오쩌둥 동상.

“가장 수수께끼 같은 회의.”
8월18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올해의 베이다이허 회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매년 7월 말~8월 초, 중국의 전·현직 최고지도자들이 허베이성 친황다오의 해변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 모여 중국의 당면 현안을 논하는 비공개 회의다.

올해는 중국에 유난히 현안이 많다.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과정의 정보를 은폐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미·중 관계 역시 무역협상 1차 합의에도 불구하고 악화됐다. 이어서 터진 홍콩보안법 사태로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시진핑 정부를 비판하면서 중국의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월 말부터 시작된 홍수로 양쯔강이 범람해 일대 곡창지대가 물에 잠겼다. 올겨울 식량난까지 우려되는 형국이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언로가 막힌 중국 체제에서 유일하게 공산당 수뇌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공간이다. 현직에서 물러나 뒷전으로 나앉은 중국공산당 원로들이 그동안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불만이나 건의 사항을 쏟아내는 자리다. 그중 일부는 첩보나 정보 형태로 언론이나 인터넷 공간에 등장하기도 한다. 올해는 때가 때이니만큼 소문이 유독 험악했다. 시진핑 주석의 실정에 대한 원로들의 분노와 대응이 주된 내용이었다.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왔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조다.

‘지금 중국공산당은 정권 수립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다. 자극해서는 안 될 미국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지금 (과거 당에 의해 축출된) 화궈펑보다 더 심각한 처지다. 원로들이 시진핑의 사임을 요구했고 일부는 미국 정부의 밀사들과 비밀리에 만나 그의 거취를 논의하기까지 했다.’

뜬소문으로 그친 정도가 아니라 중화권 매체들은 물론 국내 일부 매체 역시 ‘현지 소식통 전언’이라며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과연 그럴까’ 의심이 들었지만 중국이 처한 엄중한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기도 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시진핑 주석은 태평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가장 수수께끼 같은 회의’라고 평한 이유다.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일정을 고려하면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는 8월1일부터 시작해 16일쯤 끝난 것으로 판단된다. 회의 시작 이틀 전인 7월30일,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 정치국 회의에서는 오는 10월에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5중 전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5중 전회의 주요 의제는 ‘제14차 5개년 계획’과 ‘2035년까지 장기 목표’다. 제14차 5개년 계획은 올해 말 끝나는 13차 5개년 계획에 이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경제발전 계획을 뜻한다. 2035년까지 장기 목표란, 그동안 시진핑 정부가 2025년 완료 시점으로 추진해온 첨단산업 육성 계획 ‘중국 제조 2025’를 2035년까지 연장하자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Xinhua2018년 3월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헌법 선서를 하고 있다.

그런데 2035년은 시진핑 주석의 주석직 임기 연장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숫자다. 2017년 10월에 열린 제19차 당대회 기조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향후 발전단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 바 있다.

‘1단계로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한다. 2단계는, 2035년부터 시작해서 21세기 중(2050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실현한다.’

문제는, 당시 헌법 조항(5년 임기 주석직의 연임까지 가능)으로 볼 때 시진핑 주석의 임기가 2022년까지라는 점이다. 그가 국가주석에 취임한 해가 2012년이니 연임해도 2022년이 주석으로서 마지막 연도다. 그런데 자기 임기를 13년이나 넘긴 2035년까지 추진할 국가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시 주석이 2035년까지 장기 집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2017년 당시부터 떠돌았다. 소문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다음 해인 2018년 2월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3월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거치며 5년 임기 연임까지만 허용한 헌법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그 배경은 시진핑의 장기 집권 야욕일 수 있다.

이런 시진핑이 공산당 창당 이래 최대 위기로 원로들이 자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릴지 모를 절체절명의 베이다이허 회의를 이틀 앞두고(7월30일) ‘2035년까지 집권’을 염두에 둔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태평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시진핑 주석은 베이다이허 회의 기간에 무심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회의 기간 중인 8월 첫 주에 중국 관영 매체들에는 시진핑이 해외 정상들과 통화했다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절감하도록 지시를 내렸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동정 보도만 나왔다. 시 주석의 이런 태도로 인해 그의 강력한 1인 권력 아래서 ‘베이다이허 회의 역시 주요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본래의 입지를 잃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AFP PHOTO7월23일 캘리포니아주 닉슨 대통령 기념관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 문제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태산명동서일필, 베이다이허 회의

회의 결과를 보면 시진핑 주석의 태평한 분위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시사IN〉이 접촉한 중국 현지 소식통들은 “이번 회의에서 시 주석의 권력이 타격받지 않았다”라고 전해왔다. 현지에 주재 중인 국내 언론의 분석도 대체로 일치한다.

일부 원로들이 시 주석의 2선 후퇴를 거론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심지어 리커창 총리는 중국 경제의 향후 발전 방향을 둘러싸고 시 주석과 감정 섞인 언쟁까지 불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제14차 5개년 계획 같은 당면 현안은 물론 대미 관계 등 대외전략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23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닉슨도서관 연설을 계기로 미국 측은 중국공산당 정권의 합법성을 공격하며 미·중 관계를 사실상 ‘자유세계 대 전체주의 정권의 대결’로 규정한 바 있다. 과거 소련에 맞섰던 냉전이 중국을 대상으로 부활한 셈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 중국의 전·현직 최고 지도부는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지구전’ 개념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전은 7월30일의 정치국 회의에서 이미 공식화되었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시절 중국공산당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자신보다 강한 상대방이라도 유격전 등 유리한 방식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투쟁하면 무너뜨릴 수 있다고 정립한 개념. 미국에 강경하게 맞서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중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싸워나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홍콩보안법 강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형성된 반중 정서 등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태산명동서일필’이라고, 베이다이허 회의 이전에 중국계 인터넷에 떠돌던 분위기와 실제 회의 결과 사이에 상당한 괴리를 느낄 수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나 중화권 전문가들 분석대로 시진핑의 권력이 너무 막강해서 원로들을 무력화해버린 것일까? 베이다이허 회의를 앞두고 시 주석이 공안기관에 대한 검열 등 반부패 운동을 재현하려는 조짐을 통해 반대파를 압박한 정황은 존재한다. 또한 일부 분석가는 대미 관계에서 문제가 된 시 주석의 중국몽 등 강국 노선은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창당 초기부터 공유해온 것으로 시 주석만의 잘못으로 돌리긴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이 처한 위기가 엄중한 만큼 중국공산당 내부 분열까지 드러낼 경우 대중의 불만이 솟구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방향의 분석도 있다. 원로들 사이에서 시진핑 주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번 회의보다 지난해, 즉 2019년의 베이다이허 회의 때가 훨씬 격렬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가장 큰 현안은 홍콩 사태와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 변수였다. 특히 홍콩 사태는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둘러싼 시민들의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상황이었다. 원로들 사이에선 시진핑 주석의 대응을 성토하며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을 동원해서라도 홍콩 시위를 강경 진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한다. 일부 언론에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엔 시 주석이 군대 동원보다 법적 조치를 강화해 홍콩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분위기를 진화할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 전체의 위기라는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엄중할 수밖에 없다. 그 분위기가 일정하게 ‘시진핑 하야설’로 반영되어 인터넷에 떠돌았다고 할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오히려 중국공산당의 원로들이다. 지난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인 원로들이 올해는 형식적으로 몇 마디 하고 조용히 넘어간 셈이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AFP PHOTO최근 중국은 코로나19, 대미 관계 악화, 홍콩보안법 사태(위), 홍수와 산사태 등 자연 재해로 최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시진핑 정권의 대미 자세가 유연해지는 이유

중국의 원로들이 어떤 때에 주로 목소리를 높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국의 권력투쟁과 내부 정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른바 중국의 원로 그룹 중 지금까지 세를 유지하는 집단은 장쩌민-쩡칭훙 주도의 상하이방 그룹이다. 후진타오 전 주석 계열은 원로들보다 리커창 총리처럼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을 기반으로 여전히 현역에서 뛰는 인물 위주다. 태자당은 시진핑 주석을 배출했지만 인사에서 소외되며 주로 상하이방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상하이방으로 일컬어지는 장쩌민-쩡칭훙 그룹이다. 1989년 장쩌민이 권좌에 앉으면서 형성된 이 그룹은 중국의 고도성장기를 주도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뒤를 이어 후진타오가 주석직을 승계했지만, 장쩌민은 군사위 주석을 2년간 더 유지했으며 이후에도 측근들을 권력의 핵심 요직에 배치할 수 있었다. 실권을 놓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장쩌민이 후진타오 집권 기간을 포함해 사실상 20년간 권좌를 유지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러나 2012년 시진핑 주석이 등장하면서 5년 동안 피 튀기는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시 주석이 측근인 왕치산을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에 앉혀 대대적으로 벌인 반부패 투쟁은 바로 장쩌민-쩡칭훙계를 겨냥한 권력투쟁이었던 셈이다. 양측이 서로 타협한 시기는 2017년 제19차 당대회 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타협의 조건은 간단했다. 장쩌민계는 권력투쟁의 내막에 대해 대외적인 폭로를 자제하고 시진핑 쪽은 장쩌민계가 부정부패로 거둬들인 자산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그 자산을 홍콩이나 미국으로 빼내 운용하는 것을 용인한다는 내용이다. 제19차 당대회를 계기로 왕치산이 당 중앙기율위원회 서기에서 물러나면서 반부패 투쟁을 종료시킨 것은 그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장쩌민파의 자산 운용에 부정적인 상황이 오면 장쩌민파 원로들을 필두로 한 베이다이허 회의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 망명 중인 중국 사업가 궈원구이 씨는 지난해 4월13일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가족이 해외에 1조 달러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전 주석의 손자 장즈청의 자산만 5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궈 씨는 영상에서 “장 씨 일가는 국유기업, 금융기관, 보험 등 다양한 기업을 1000개 이상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해외에서 5000억 달러를 세탁했다”라고 말했다. 세탁된 자금 중 일부는 미국의 금융 펀드, 대형 첨단기업 등에 투자됐다고 한다. 부정부패는 장쩌민뿐 아니라 중국의 원로나 태자당 출신들에게 보편적이다.

2014년 위키리크스는 해외 조세 도피 지역에 자산을 빼돌린 중국 고위층 가족의 명단을 보도하기도 했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원로들이 해외에 빼돌린 자산이 무려 10조 달러(약 1경)에 이른다고 한다.

ⓒXinhua최근 중국은 코로나19, 대미 관계 악화, 홍콩보안법 사태, 홍수와 산사태 등 자연 재해(위)로 최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 원로 그룹들이 시 주석의 정권 운용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미국이나 홍콩으로 빼돌린 자산의 안전성과 수익성에 관련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2018년 7월 트럼프 정부가 주로 상하이와 광둥성 일대 첨단기업들을 대상으로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주로 자식이나 친인척을 통해 이들 기업을 보유한 원로 그룹이 시진핑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홍콩 사태에 원로들이 강경 대처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8년부터 미국과 무역 갈등이 본격화되자 장쩌민파 쪽에서 미국의 자산동결을 우려해 미국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을 홍콩으로 빼냈다고 한다. 지난해 홍콩 시위가 크게 확산되자 자기 재산의 안전성을 걱정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무력을 동원한 강경 진압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홍콩보안법 실시 이후 외견상으로 홍콩의 시위 열기가 수그러든 최근에는, 적어도 원로들 기준에서는 지난해처럼 시진핑 주석을 험하게 몰아붙일 이유가 없었다.

다만 대미 관계는 여전히 숙제다.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특별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실질적인 조처까지 취하면 홍콩으로 빼낸 자산가치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이미 많은 자금을 싱가포르로 다시 옮기긴 했다. 그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지금까지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리고 나면 시진핑 정권의 대미 자세가 그 전보다 유연해지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원로들의 해외 자산 문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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