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실종자 수색 닷새째인 8월10일 사고 발생 지점 아래에 있는 다리에 망가진 수초섬이 걸려 있다.

사고수습대책본부 천막 안이 술렁였다. 8월11일 오후 2시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 보트 전복 사고 지점 인근 강변에서 짙은 갈색 등산화 한 짝이 발견된 직후였다. 등산화가 수습본부로 전달되자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신발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발 봤어?” “확인해봤어?”라며 서로 되물어도 별 소득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휴게 천막으로 되돌아온 실종자 가족들은 다시 뉴스 속보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루 종일 전국 수해 지역의 피해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춘천 의암호 보트 전복 사고 소식도 주기적으로 화면에 떴다.

사고가 일어난 8월6일, 춘천시엔 일일 강수량 100㎜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전 11시35분, 의암댐 상류에서 인공 수초섬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던 8명이 강물에 휩쓸렸다. 이들은 고무보트(수초섬 관리업체 직원 1명), 경찰선(지원 경찰 1명·춘천시청 주무관 1명), 환경관리선(강 부유물 제거 담당 기간제 노동자 5명) 등 총 3척에 나눠 타고 있었다.

한 차례 작업에 들어갔던 이들은 물살이 너무 거세지자 수초섬 고정시키는 작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사고는 철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고무보트가 급류에 휩쓸리자 이를 구하기 위해 경찰선이 다가가다 위험 제한선에 걸려 뒤집혔다. 이를 본 환경관리선이 뒤쫓아오다 마찬가지로 중심을 잃고 전복되었다. 당시는 의암댐 15개 수문 중 9개가 열려 있는 상황이었다. 열린 수문을 통해 초당 약 1만t의 강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작업하던 8명 중 2명은 생존하고 4명은 숨졌다. 2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8월13일 기준). 의암댐 수문으로 휩쓸리기 직전 가까스로 빠져나온 노동자 1명을 제외하고 7명이 수문으로 휘말렸는데, 당일 노동자 1명은 구조되고 1명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사고 이틀 뒤인 8월8일 경찰관과 관리업체 직원의 시신이 발견됐다. 8월10일에는 시청 주무관의 시신을 찾았다. 나머지 두 명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들이 떠내려가는 걸 막으려 했던 수초섬은 산산조각이 났다. 축구장 5분의 1 크기에 달하는(1890㎡) 큰 부피 때문에 수문으로 휩쓸리기 전 의암댐 상부를 가로지르는 신연교 기둥에 부딪혔다. 사고 당일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는 박살이 난 채 교각에 걸려 있는 수초섬을 보며 “너무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 얘기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춘천시의 새로운 계획

춘천시는 2003년 6월 3억원을 들여 인공 수초섬을 조성했다. 친환경 수질정화와 관광 볼거리 제공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불과 석 달 만에 ‘애물단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2003년 9월 〈세계일보〉 기사는 수초섬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월 폭우 때 떠내려온 토사와 쓰레기로 인해 수초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물속에 잠겨 기대했던 수질개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당시 춘천시는 재난복구비 6500만원을 지원받아 수초섬을 다시 복구했다.

ⓒ시사IN 신선영8월11일 경기도 가평에 마련된 수색현장본부에서 실종자 가족이 브리핑을 듣고 있다.

2019년 10월 춘천시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의암댐 상류의 기존 수초섬을 두 배 이상으로 넓히고 이와 함께 새로운 수초섬 하나를 추가로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수초섬들의 외형은 하트(♡) 형태로 다듬을 계획이었다. 같은 해 25년 만에 재정비한 춘천시의 브랜드 심벌과 같은 모양이다.

춘천시는 의암댐으로부터 약 2.5㎞ 떨어진 중도선착장에 두 수초섬을 거의 조성한 상태였다. 완성되면 오는 10월 목적지로 옮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8월6일 기존 수초섬이 여러 인명과 함께 떠내려가 버렸다. 남은 수초섬 역시 현재 1.5㎝ 정도 되는 얇은 두께의 흰 밧줄 대여섯 가닥으로 나무에 묶여서 고정되어 있는 상태다. 만약 수초섬을 고정시켜놓은 나무가 다시 폭우와 바람 때문에 뿌리 뽑히거나 부러진다면, 새로운 수초섬까지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사고 당일 춘천시의 작업 지시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계속된 장마로 댐의 방류량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강에 들어갈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유가족이 공개한 관리업체 직원 ㄱ씨의 휴대전화 카카오톡 내용에는 사고 이틀 전인 8월4일 동료와 나눈 대화가 남아 있다. 숨진 ㄱ씨가 “감독(시청 관계자로 추정)이 집요한 데가 있어. 그러니깐 하는 말이 ‘현장 직원 상주 안 하시나요’ 하니 할 말이 없어서”라고 말하자, 동료는 “걱정되는 건 아는데 정도껏 해야죠. 이해는 해요. 비 오는데 뭔 상주. 그러다 직원 죽으면 책임지나”라고 답했다.

숨진 춘천시 공무원 ㄴ씨의 유가족은 그의 자동차 블랙박스를 경찰에 제출했다. 블랙박스에는 ㄴ씨가 사고 당일 선박에 오르기 전 “미치겠네 미치겠어, 나 또 집에 가겠네. 혼자만 징계 먹고”라고 혼잣말을 하며 흐느끼는 음성이 녹음되어 있다. 2018년 9월에 임용된 새내기 공무원 ㄴ씨는 지난 6월 자녀가 태어나 8월5일부터 8월14일까지 휴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유가족은 사고가 나기 직전에도 휴가 기간 중이었던 ㄴ씨가 ‘수초섬이 떠내려갈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아내와 함께 현장을 방문해 살펴봤다고 했다.

하지만 춘천시의 입장은 다르다. 사고가 난 다음 날 이재수 춘천시장은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무원 ㄴ씨의) 전화를 받은 담당 부서 계장은 ‘떠내려가게 내버려둬라’ ‘사람 다친다’ ‘출동하지 마라’ ‘기간제 절대 동원하지 마라’ 등을 강력하게 지시했다”라며 시에서는 오히려 작업을 만류했다고 해명했다. ㄴ씨 유가족은 “부서의 막내가 그것도 출산휴가 중에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혼자서 배 3척을 동원해 작업을 진행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은 “현재 시 차원에서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가 제한적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경찰 조사를 통해 좀 더 정확하게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실종자 두 명을 찾지 못한 8월11일 아침 수습본부에는 실종자 가족을 상대로 수색 계획을 설명하는 브리핑이 열렸다. 굵은 빗방울이 천막 지붕을 때리는 소리 때문에 종종 마이크 소리가 묻혔다. 인력 250여 명을 투입한 소방, 1200여 명을 투입한 경찰, 그리고 춘천시 관계자가 차례로 브리핑을 끝내자 한 실종자의 딸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감사하다. 지금 밖에 계신 분들도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전하게 수색하셨으면 한다.”

8월11일 오전 10시,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자 의암교 밑에서 대기하던 강원소방 특수구조대 대원들이 잠수복을 입었다. 물살이 거세지면 특수구조대 중에서도 급류 구조 훈련을 받은 대원들만 수상 수색에 들어갈 수 있다. 천정덕 수난구조대장은 25년 경력 중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비가 내리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를 포함해 대원 일곱 명이 나눠 탄 보트는 5초도 채 되지 않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강인데도 철썩이는 파도가 쳤다. 강변 자전거도로는 물에 잠겨 있었다. 무전기와 망원경을 든 육군 장병들이 끊어진 도로를 피해 수시로 지나다니며 강기슭을 수색하고 있었다.

ⓒ시사IN 신선영8월11일 강원소방 특수구조단 등이 의암댐 인근에서 실종자 수색활동을 벌이고 있다.

“실종자 수색 과정 흔들지 말라”

2시간쯤 지난 정오 무렵 다시 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온 구조팀은 천막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있을 마네킹 실험을 준비했다. 실종자가 입고 있던 것과 비슷한 옷과 신발을 마네킹에 입혀 의암댐에서 흘려보내면 구조팀이 보트를 타고 따라가며 마네킹이 어디에 걸리는지 혹은 가라앉는지 보고 실종자의 동선을 유추하는 방법이다. 구명조끼가 벗겨졌을 경우와 벗겨지지 않았을 경우, 비가 올 경우와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하루에도 여러 번 실험을 한다.

천정덕 대장은 “어제(8월10일)도 세 차례에 걸쳐  실험해봤지만 각기 결과가 달랐다”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닷새 만인 8월10일에는, 사고 지점에서 겨우 2.5㎞ 떨어진 지점에서 시청 공무원의 시신을 발견했다. 같은 날 오후엔 사고 지점에서 100㎞나 떨어진 서울 용산구 한강에서 ‘춘천시’라고 쓰인 구명조끼가 발견되었다. 이 구명조끼는 사고 당시 선박에 실려 있었거나 사고 당사자가 입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종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들을 향해 현장 인원이 수색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이재수 시장이 진상규명과 사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책임지겠다고 분명히 약속했기 때문에 수색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다. 시장 사퇴 요구 등으로 수색 과정을 흔들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 왜 하필 6개월 기간제 노동자와 막내 공무원이 춘천시의 상징물을 고정하는 작업에 내몰렸는지 시장의 약속대로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될 것으로 믿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자명 춘천·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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