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좀이 쑤셔온다. 엿가락처럼 아이 개학도 늘어지고 있다.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못해 이제는 질겁할 노릇이다. 노란 개나리도 새하얀 목련도 집안에서 나오라며 아우성인데, 하루 대부분을 좁은 집안에 갇혀 살다시피 하고 있다. 겨우 30일도 채 되지 않았다. 오라는 데도, 가라는 곳도 사라진 사회적 단절 시절에 우리가 있을 곳은 그저 작고 비좁은 마스크 뒤뿐인가. 길게 늘어선 마스크 구매 행렬에도 실선처럼 격리의 선이 그어졌고, 접촉은 피하고 대화는 끊겼다. 영세할수록, 후미진 곳일수록, 비정규 노동에 기댄 곳일수록 어려움은 즉각적이고 파괴적이다. 30%를 육박하는 자영업의 나라, 알바 천국의 나라, 비좁은 대한민국이 휘청거린다. 코로나19의 쓰나미가 지나가고 나면 피해는 더 노골적인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지금은 그저 코로나 안갯속일 뿐이다.

0.5평 철탑 농성장에서 사회적 격리 300일

더 좁은 곳이 있다. 고작 0.5평. 발을 뻗으면 비쩍 마른 두 다리가 공간을 비집고 나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곳. 4월4일이면 300일이 되는 곳. 서울 강남역 사거리 철탑 농성장.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가 있는 곳이다. 지난해 6월에 시작된 철탑 농성이 해가 바뀌었다. 김용희씨는 1982년 12월 삼성항공 창원공장에 입사했다고 한다. 1990년 8월 ‘삼성그룹 경남지역노조 설립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사측에 납치되어, 노조 설립 포기 협박을 받았다. 결국 아버지는 유언장을 남긴 채 행방불명되었고, 아내 또한 경찰조사 과정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1995년 해고되었지만 부당해고 철회를 이끌어내어 1996년 삼성건설에 복직했다. 그러나 다시 일자리를 빼앗겨 복직 요구 투쟁을 벌였으며, 그동안 두 차례나 감옥에 갇혔다. 노조 설립 포기각서 서명을 거부하다 간첩으로도 몰렸고 모진 탄압을 겪었다. 소설 속 주인공 얘기가 아니다.

정년 전 복직을 요구하며 시작된 강남역 사거리 철탑 농성이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년도 지났다. 삼성에서 노조 설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 통지서 한 장 받지 못하고 불법적으로 해고되어 25년간 싸웠다. 이런 김씨를 두고 정부가 내놓는 ‘노동 존중’이라는 말은 언감생심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한 인간의 삶 옆에서 벌어지는 말의 성찬은 비참함만 가속화할 뿐이다. 사법도 행정도 입법도 외면한 곳에 한 인간의 육신이 말라가고 있다. 어째서 이토록 문제 해결이 어렵단 말인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 한복판 강남역 사거리 철탑엔 고통이 융기된 아픔이 우뚝 솟아 있다. 25년간 삼성과 싸우는 사람이 사회와 격리된 채 우리 곁에 0.5평 철탑 속에 웅크려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참혹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얼마나 잔인하게 노동자를 핍박하고 탄압했던가. 더 이상 노동자 탄압으로는 경영이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진실한 참회와 반성이 사태 해결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조차 비말처럼 공중으로 날아갈 뿐이다.

지난 1월9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발족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법조계·시민사회·학계 인사들이 외부위원으로 활동한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최고경영진이 준법 의무를 위반할 위험이 있다고 인지하면 이사회에 고지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저 요식행위로 위원회 활동이 끝날 일이 아니다. 삼성에서 벌어진 노동탄압과 부당노동행위 전반에 걸친 근본적 처방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특히 김용희씨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한 인간이 싸워내기에 버거울 만큼 커다란 상대가 삼성이다. 그만큼 사회적 책임 또한 넓고 크다. 적폐 청산의 칼날을 피해 오너 일가의 일신만을 위한 준법감시위원회가 되어선 결코 안 된다. 4월4일이면 김용희씨의 철탑 농성이 300일이 된다. 사태 해결을 촉구한다.

기자명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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