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비트코인으로 돈 벌어 OP(오피스텔 성매매) 가야지.” 비트코인 열풍이 한창이던 때 ㄱ의 남성 직장 동료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며 정답게 낄낄거렸다고 한다. 비트코인이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n번방’의 주요 거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낄낄거림이 생각났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던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날로 발전하는 기술이 남성들의 성착취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디스토피아

문명의 발전이 인간에게 꼭 좋은 일인가? 우리는 날로 발전하는 기술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사회에 만연한 성착취 문화와, 인간을 도구화하는 자본과 기술이라는 악마가 우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조종하며 낄낄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플랫폼이란 본디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이 단어가 복잡해지는 사회 변화에 맞춰 여러 의미로 파생되고 있다. 플랫폼이 디지털과 만나면 노인이나 장애인 등 기술에서 소외되는 인간을 양산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착취 구조가 형성된다. ‘플랫폼 노동자’는 현대사회의 노동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잔혹한 범죄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남성들은 굳이 성매매 업소를 찾아가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플랫폼에 접속하여 클릭 몇 번만 하면 성적 욕구를 충족할 대상을 찾거나 자신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노예’를 구매할 수 있다. 이런 플랫폼은 단지 왜곡된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양심과 상식을 초월한 새로운 ‘인간’ 유형을 만든다.

n번방 사건에 관한 여러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반응은 그 방을 이용한 어느 남성이 억울하다며 쓴 글이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정당한 성인 콘텐츠를 이용료 내고 시청한다는 게 잘못인지” 물었다. “자기 몸 영상 올리는 음란녀들”이 그런 영상을 안 올렸으면 “26만명의 피해자들도 없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피해자인 자신이 범죄자 취급받는 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잔혹한 피해를 당한 여성을 향한 죄책감 따윈 들어설 곳 없는 단호함이다.

이런 태도는 단지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 ‘야동을 보는’ 수준을 초월한다. 명백한 성착취 범죄를 마치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정당한 이용료 내고 구매한 것으로 여길 정도로 인간과 세상에 관한 인식의 틀이 망가진 것이다. 기술 발전이 인간이 상상한 여러 ‘판타지’를 현실로 만들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디스토피아를 가속화했다는 점을 n번방들은 충격적으로 증언한다.

화들짝 놀라 n번방을 부수고, 주범과 공범들에게 높은 형량을 부과하면 나아질까? n번방 바깥에 존재하는 n개의 방, 나날이 진화하는 각종 기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럴 준비는 되어 있을까? 그러므로 n번방 사건은 새로운 질문이어야 한다.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2019) 저자 사피야 우모자 노블의 말처럼 “통제받지 않고 윤리적이지 않은” 기술이 초래할 문제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공공정책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일까 질문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플랫폼을 방치하는 동안 결국 피해자와 그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여성들이 먼저 나섰다.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대학생들, 디지털 성폭력에 대응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페미니스트들이 폭력적인 플랫폼의 파도에 맞서 싸운 이들이다. 이들이 앞서갔기에 비로소 법과 제도를 보완할 기회가 생겼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대에 그것에 맞설 백신을 준비하듯, 날로 발전하는 기술을 감당할 새로운 윤리적 감각, 촘촘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기자명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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