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4월2일 김용일씨가 코호트 격리 중인 효사랑요양원에서 나온 의료폐기물을 운반하고 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출입을 통제합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수원의료원 앞 출입 통제 경고문을 김용일씨(56)는 거뜬히 지난다. 확진자가 다수 발생해 코호트(동일 집단) 격리가 된 경기도 군포시 당동 효사랑요양원, 해외 입국자들을 위해 코로나19 임시 검사시설로 지정된 경기 의왕시 코레일 인재개발원도 그의 일터다. 김씨는 의료폐기물 수거업체 직원이다. 3.5t 냉동 트럭에 의료폐기물을 싣고 병원과 소각장 사이 260여㎞를 매일 오간다. 수원의료원에서만 매일 200통이 넘는 의료폐기물이 나온다. 올해로 20년째 이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인데 “감염병에는 베테랑이 없더라”며 웃음을 짓는다.

레벨 D 보호구를 입고 일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까지 감염병이 돌 때이다. 최전방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들은 의료진만이 아니다.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의사·간호사 같은 의료진의 희생과 중요성은 언론에 자주 소개된다. 의료진이 확진자를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그림자 노동’의 몫이다. 김씨처럼 최전방 방역 전선에는 ‘그림자 노동 전사’들이 묵묵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12일 우한 교민 140여 명이 경기도 이천시 합동 군사대학교 국방어학원에 입소할 때도 김씨는 그곳으로 향했다. 주삿바늘부터 의료진이 입었던 레벨 D 보호구, 마스크, 의심환자들이 남긴 음식물 등을 수거하기 위해서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감염질환과 관련된 폐기물은 모두 ‘격리 의료폐기물’로 분류된다. 안전관리를 위해 전용 봉투와 합성수지 전용 용기로 이중 밀폐되는 데다 뚜껑을 한번 닫으면 다시 열리지 않는 구조이지만 수거에 나서는 사람이 많지 않다. “코로나 병원이라고 하면 업체들이 다 꺼려해요. 돈도 안 되고 위험하니까. 나라가 위기인데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겠어요?”

ⓒ시사IN 조남진김용일씨(아래)가 수거한 의료폐기물은 경기도 용인의 소각장에서 전량 소각된다.

코로나19의 격리 의료폐기물은 ‘당일 배출, 당일 수거, 당일 소각’이 원칙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두 달간 김씨가 단 하루도 쉬지 못했던 이유다. 새벽 3시30분에 집을 나와 서울, 광명, 안산, 수원 등지에 있는 병원과 연구소 30여 군데서 일반 의료폐기물을, 오후에는 코로나19 격리 의료폐기물을 수거한다. 수거한 격리 의료폐기물은 용인시 소각업체 ‘스테리싸이클코리아’로 운반된다. 김씨는 “두 탕을 뛰느라” 오후 8시가 되어야 퇴근한다. 하루에 나가는 주유비도 30만원을 훌쩍 넘는다. 격리 의료폐기물은 운반 시 온도를 4℃ 이하로 유지해야 해서 냉동기를 틀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막 기어다니는 손주를 못 보니 아쉽지.” 한 번 운반할 때마다 차량 내부를 매번 약물로 소독하지만 혹시 몰라서 자녀들에겐 당분간 찾아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23일부터 3월17일까지 발생한 코로나19 관련 의료폐기물은 총 575t이다. 격리병원 발생 폐기물(341t), 생활치료센터 폐기물(109t), 교민 임시생활시설 폐기물(61t)이 주를 이룬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격리 의료폐기물도 함께 증폭하고 있다. 전국에 13곳뿐인 소각업체들도 비상 국면을 맞았다. 국내 한 소각업체 설명에 따르면 3월 코로나19 관련 격리 의료폐기물의 양은 1월 대비 5배 정도 증가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격리 의료폐기물이 훼손되지 않고 안전하게 소각로로 투입되도록 매 순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작업자들의 피로 누적과 혹시 모를 감염의 우려가 걱정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감염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주야간에 각각 3명씩만 근무하고 있다.

남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일터인 사람들

김씨 같은 의료폐기물 노동자는 집단감염과 코호트 격리 이후 그곳에 남겨진 이들을 만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군포 효사랑요양원의 경우 당초 격리 기간이 4월3일까지였지만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격리 기간이 2주 더 늘었다. 김씨는 “나야 그래도 바깥에 나와서 움직일 수 있는데 이분들은 3월19일부터 꼼짝없이 갇혀 있으니, 보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지키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의료폐기물을 건네받는다. 유리문 건너에는 역시 그림자 노동 전사들인 간호조무사, 간병인, 요양보호사들이 “수고한다”며 김씨에게 인사를 건넨다. 가끔 배급품으로 들어온 간식을 받을 때도 있다. 김씨에게 고된 노동을 견디게 하는 순간이었다. “다들 돈 벌러 나왔다가 집에도 못 가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눈물도 맺혀 있는 걸 몇 번 본 적 있어요. 그런 와중에 나를 챙겨주는데 얼마나 감사해요.” 4월1일 김씨는 군포 효사랑요양원에서 건네받은 음료수 2병을 운전석에 싣고 용인으로 다시 출발했다.

ⓒ마산의료원 미화노동자 제공마산의료원 미화노동자들.
마산의료원 미화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보내온 편지.

병원 안에도 방역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의료진’ 외에 더 있다.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9세 확진자가 나온 3월31일, 미화노동자 진명수씨(가명)도 병원 안에 있었다. 코로나19 입원 환자는 있었지만, 일반 환자 중에 양성 판정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울아산병원에 빨간불이 켜지자 진씨도 초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전체 건물을 소독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네요. 어젯밤도 꼬박 새웠어요.” 4월1일 짧은 전화통화에서 남긴 말이었다. 확진자가 다녀간 병동을 폐쇄하고 소독하는 일이 진씨의 담당이었다. 다행히 접촉자 500명을 검사한 결과 모두 음성이 나왔다. 진씨처럼 서울아산병원에서 청소와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미화노동자들만 600여 명에 이른다. 모두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청소 여사님’이라 불리는 병원 내 미화노동자들도 방역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마산의료원 미화노동자 이숙자씨(가명·55)는 직장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바뀌면서 비닐 가운과 고글, 의료용 마스크를 처음 착용했다. 응급실에서 배출되는 의료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한 통이 나오더라도 ‘당일 배출’이 원칙이라 폐기물 전용 엘리베이터와 주변 바닥을 매일 몇 번이고 소독해야 한다. 소독약이 신발 밑창에 엉겨붙어 눅진눅진할 정도다. 일반 환자를 받지 않아서 이전보다 일의 양은 줄었지만 긴장감은 배로 늘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혹시나 제가 감염이 되면 의료진들까지 다 격리될까 봐 항상 가슴을 졸이고 있어요.”

남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일터이다 보니 사람들 만나는 건 진작 포기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씨를 포함한 미화노동자 대부분에게 의무 사항이다. “월요일에 보면 다들 얼굴이 부어 있어요.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거든요.” 말주변이 없다며 이씨의 동료들은 인터뷰 요청에 편지 몇 장을 보내왔다.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은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들이었다. “24명의 청소 여사님들과 일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 이거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 가족에게 전염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최미애·가명·63).” “환경미화라는 일이지만 병원 특성상 정신도 바짝 차리고 조심 또 조심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기에 누구 한 명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맡은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임경숙·가명·60).” 매년 용역업체가 바뀌는 불안정한 고용환경 속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이들 비정규직 미화노동자들도 의사·간호사 못지않게 국민을 위해 코로나19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이숙자씨는 그럼에도 가장 보상받아야 할 사람은 의료진이라고 말한다. “옷이랑 머리가 흠뻑 젖어서 기진맥진해 나옵니다. 고생하는 의료진들 보면 저희는 아무것도 아니죠.” 격리병동에서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간호사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늘 짠하다. 이씨는 간호사들이 다녀간 후 탈의실에 남은 빨랫감을 수거해서 세탁하고, 의료진이 묵는 숙소를 매일 소독한다. 방역체계 곳곳에 이숙자씨나 김용일씨 같은 노동자들의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의료진들이 지친 게 보여요. 저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해야죠.” 오늘 아침 8시에도 이씨는 ‘출입 통제’ 안내문을 뚫고 출근했다. 그렇게 코로나19의 그림자 노동 전사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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