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특별한 가정으로 전개된다. ‘남자가 멸종한 세계’라는 기발한 설정이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로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는 요즘, 이 기발한 상상력이 황당한 판타지로 읽히지만은 않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인스타그램에 연재하며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연재 당시 평균 3만~4만 개, 최고 11만여 개의 ‘좋아요’와 댓글 1000여 개가 달렸다고 한다. 책으로 출간된 후, 2019년에는 이그나츠상(Ignatz Award)을 수상했고, 현재 텔레비전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언제부터인가 남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남자들은 일찍 죽어가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는 온통 여자아이뿐이다. 급기야 세계 정상회담에 참석한 지도자 모두가 여성이 되는 날이 왔다. 남자들은 그렇게 사라졌고 그 와중에 자연재해가 발생해 세계를 휩쓸고 전쟁과 폭동이 겹치며 문명은 사라져버렸다.

이제 온전히 여자들만의 힘으로 일상을 꾸려나가고 마치 원시와도 같은 환경에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여자는 남아 있는 정자를 관리하고 새로운 임신과 출산 방법을 연구한다. 여자만 남은 세상의 ‘비욘세의 허벅지’ 마을, 이 책은 그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시스템과 제도

시절이 흉흉한 이때에 이 책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 것은, 남자의 멸종을 하나의 비유로 대체해서 읽다 보면 그다지 황당한 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하나둘 사라지고, 면역력이 강한 집단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예측 말이다.

이 책에 남겨진 여자들의 세계에는 그 어떤 ‘결여’나 ‘불안’의 요소도 없다. 주인공들은 사라진 인류의 첨단 문명을 찾으려 하지도 않고, 법체계와 경찰, 군대가 없는 세상에서 자원과 권력을 독점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이들은 그저 자신들의 일상을 이어갈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꿈을 꾼다. 그들의 평온한 일상을 최신 IT 기술과 체계적인 시스템 없이 유지해가기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고 우애를 나눈다.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혐오하거나 차별하지도 않는다. 뛰어난 의술도 없고 빠른 교통수단도 없지만, 이들은 개인의 능력을 모아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고민과 대화를 통해 내적 성장도 이루어간다. 이렇게 ‘우먼월드’의 낯설면서도 익숙해 보이는 일상은, 자연스럽게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시스템과 제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유머’다. 소제목을 달고 이어지는 일상의 단편은 온갖 유머로 가득 차 있어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또 하나, 이 책이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라면 마을의 일상을 통해 보이는 ‘연대’의 힘이다. 남겨진 자들끼리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지 유쾌하게 보여주면서, 오늘의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우먼월드에는 남자가 없으니 물론 페미니즘도 없고 가부장제도 없고 권력관계도 없다. 여자들은 옛날 잡지 속 미백 화장품 광고를 보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연히 발견된 하이힐을 보며 그 원래 용도를 알아내지 못한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역할과 직업이 있지만, 과거와 같은 지시와 복종의 관계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고 지향해야 할, 미래의 (정신적 의미에서의) 공동체 모습이 아닐까. 모두가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그 어떤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삶. 그것이 바로 인류의 본래 모습이며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는 핵심 요소임을 일깨워준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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