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를 타고 포르노 바다를 건넌다.’ 알쏭달쏭한 암호문 풀이를 취재했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 당나귀는 당시 인터넷 파일 공유(P2P)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 정식 명칭은 당나귀를 뜻하는 ‘edonkey’였다. 일종의 공유 프로그램인데, 불법 촬영물이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다. 취재한 계기는 아동 살인사건이었다. 지방의 한 빌라 창고에서 여섯 살 여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사건 발생 9개월 뒤 용의자가 붙잡혔다. 엽기적인 사건의 범인은 고등학생이었다. “포르노를 본 뒤 충동에 못 이겨 범행을 저질렀다.” 그가 조사 과정에서 성폭행 14건을 자백해 경찰을 놀라게 했다.

디지털 성범죄도 진화했다. 면웹, 딥웹, 다크웹 등 다양한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했다. 비트코인 등과 결합해 성범죄가 산업화되었다. 용의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조주빈은 악마가 아니라 숱한 성착취 범죄자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했다.

조씨뿐 아니라 최대 26만명으로 추정되는 n번방 가입자들도 공범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생산-유통-참여-소비로 이어지는 생태계 구조에서 이들은 ‘협업적 성착취’의 가담자다. ‘갓갓’이나 ‘박사’가 제작형 또는 유포형 가해자라면 디지털 성범죄 결과물을 소비하는 이들은 소비형 가해자다. 이번 기회에 이런 정의가 더 명확히 공유되어야 한다. 실수로 가입하고 소비했다는 변명이 더 이상 면책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과정을 보면서 공적 시스템의 부재를 실감했다. 대학생 두 명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의 취재와 신고 덕에 경찰과 언론이 뛰어들었다.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사법체계와 언론은 겨우 뒤따라갔을 뿐이다.

ⓒ시사IN 신선영

또한 공적 시스템 부재의 빈틈을 여성들의 분노가 메우며 공론화에 기여했다. 나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누군가 내게 가치관을 가장 크게 흔든 사건을 묻는다면 1980년 5월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 학살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오늘날 여성들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떠올린다. 그날 이후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바뀌었다. 검찰과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의 발본색원을 다짐한다. 그들도 우리도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더디게 바뀌는 세상과 달리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바꿔내고 연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발본색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분노의 공감이다. 분노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시사IN〉은 그 분노에 공감한다. 함께 공감하고 행동하면 세상은 분명 바뀔 것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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