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코로나19 대구 지역 거점병원인 계명대 동산병원 게시판에 의료진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붙어 있다.

먼저 스무 살 대학생이 된 것을 축하한다. 네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2015년 이른 봄에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만으로도 5년이 흘렀고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하던 네가 어엿한 성인이 돼 새로운 출발점에 섰구나.

네게 주는 역사 ‘편지’가 이번으로 257번째다. 이미 여러 권 책으로 묶여 나왔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셈이야. 아빠가 그 책에 가끔 서명을 할 기회가 있을 때 꼭 남기는 글귀가 있다. “우리의 일상이 역사가 됩니다”라는 것이지. 그리고 오늘 대학생 딸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하고 싶구나. “네가 겪는 일상이 역사가 된다.”

새삼스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요즘 네 일상을 잠식한 코로나19는 아마도 21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충격의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 할 정도로 나라와 나라 간의 교역이 끊겼고, 각국 정부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아 별다른 대책도 없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기 속에서도 일상의 평온을 근근이 지탱하고 있는 것 같으나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지. 그런 말도 들리더구나. “IMF 위기는 살던 집이 무너진 것이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온 나라 땅이 꺼지는 격이다.”

겁을 주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역사의 전환기 속에 산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야. 우리 키를 훨씬 넘는 파도가 일상을 쓸고 지나는 중이지만 결국 그 파도의 높이를 결정하고 파도를 넘을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것 역시 우리 일상의 힘에 달려 있노라 얘기하고 싶어. 즉 ‘우리’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이 역사의 전환기에서 살아남거나 몰락하거나 극복하거나 쓰러지는 이유를 만든다는 뜻이야. 비록 나나 너나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개인일 뿐이지만 우리가 이 위기에서 감행하는 선택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일면 거창해 보이지만 당연한 명제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네가 지금껏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온 ‘연대’에 주목하기 바란다. 사실 인간은 파괴적인 동물이다.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어처구니없을 만큼 바보여서 서로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기도 했지. 대개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 지구도 가끔은 무시무시한 위력의 자연재해로 인류를 공황으로 몰아넣었지. 대기근, 화산 폭발, 대지진 등등에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질병이 세상을 뒤덮은 일도 부지기수였지. 하지만 그 충격과 공포, 그리고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파괴적 본능의 위협에서 인류가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 것은 최악의 순간,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과 인간의 연대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조지아의 드마니시 유적에서 발견된 약 180만 년 전 유인원 유골인 ‘드마니시 3444호’의 주인공은 “늙은 데다가 치아가 모두 빠져 제대로 씹을 수 없었음이 분명했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오래 살았다(〈동아사이언스〉 2015년 12월1일).”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우리 조상들은 이미 늙어서 힘 빠진 사람이라 해도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고 부상을 입으면 곧 죽음이었던 동물의 세계와는 다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DNA는 가느다랗지만 끊어지지 않고 인간들에게 전수돼왔단다.

20세기에 벌어진 가장 파괴적인 장면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의 격전을 들 수 있을 거야. 드넓은 소련의 영토 곳곳이 피바다가 됐고 소련의 ‘정신적 수도’라 할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무려 900일 동안 포위 공격을 받았어. 독일군은 무력으로 도시를 점령할 수도 있었지만 포위망을 구축하고 보급을 차단해 레닌그라드 시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는 쪽을 택했고, 도시에 갇힌 소련 사람들은 식인(食人)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지.

ⓒEPA1995년 1월17일 고베와 오사카를 잇는 히가시나다구의 한신 고속도로가 대지진으로 붕괴되었다.

전쟁 중에도 인간에 대한 예의 지킨 사람들

네덜란드 작가 얍 터르 하르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레닌그라드의 기적〉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단다. 소련의 어린아이들이 먹을 걸 찾아 헤매다가 들판에 쓰러진 것을 독일군 정찰병이 발견한다. 독일군 정찰병은 죽음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러시아군에게 데려다주었는데 러시아군이 독일군에게 총을 겨누자, 어린아이 보리스가 외치지. “그는 내 목숨을 구했어요, 내 친구예요.” 러시아군 중위도 이에 호응했어. “아이들을 구해줘서 고맙다. 돌아가라.” 이후 소련군은 매서운 반격을 개시했고 이번에는 무수한 독일군 포로들이 추위에 떠는 포로 신세가 됐지.

끌려가는 독일의 한 어린 병사에게 보리스가 초콜릿을 건넨다. 자신들의 혈육을 수없이 죽인 독일군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는 야유가 쏟아지는데 한 아주머니는 보리스를 칭찬해. “잘했다.” 아주머니는 사람들에게 묻지. “증오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자유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극한에 몰려 악에 받치고 죽음을 눈앞에 달고 다녔던 이들 가운데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 사람들이 있었던 거야.

1995년 1월17일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어. 사망자 6434명, 부상자 4만3000여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재앙이었지.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후 고베시의 어느 동네에서 한 초등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는 몸을 피했지만 가토 하루카라는 열한 살 아이는 끝내 집을 빠져나오지 못한 거야. 지진 복구에 땀 흘리던 그해 여름, 동네 사람들은 공터가 되어버린 하루카의 집 근처에서 탐스럽게 피어난 해바라기들을 보게 되었어. 난데없는 해바라기의 출현에 의아해하던 동네 사람들은 곧 이유를 기억해냈지. “해바라기씨야. 하루카가 귀여워하던 앵무새에게 주던 해바라기씨가 지진 때문에 땅에 묻히면서 이렇게 피어난 거야.” 살아남은 가족들도, 하루카를 못 잊어하던 동네 어른들도 하루카가 살아온 듯 해바라기 앞에 모였어. “하루카. 하루카 네가 해바라기로 되돌아왔구나.”

환하게 피어난 해바라기 앞에서, 하루카의 가족과 동네 사람들은 이 해바라기 씨를 고베 곳곳에 옮겨 심기로 한다. 하루카의 넋을 기리면서 또 희망을 잃지 말자는 뜻에서 심은 해바라기들은 도시 도처에서 활짝 피어났고, 사람들은 더욱더 많은 곳에 해바라기씨를 뿌리고 피어나는 꽃을 반겼다. 지진을 이겨내고 희망을 바라보자는 뜻이었겠지.

이렇듯 인간의 온기가 내는 빛은 인간들이 만든 어둠 속에서 가치를 더하고 인간의 바닥에 깔린 희망은 자욱한 절망의 안개 사이를 뚫고 솟아오르는 법이야. 한번 다짐해보자.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도, 그 이후에 들이닥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일상을 역사로 만드는’ 개개인인 우리 딸은, 그리고 아빠는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조금 더 배려하면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연대를 구하고 예의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보자고. 스무 살 성인이 된 네 개인적 역사(歷史)에 축복 있기를.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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