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다른, 2020)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재미와 놀라움이 차곡차곡 더해지는 책이지만,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이 책의 범주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517쪽에서 얼핏 밝힌 바로는 ‘전기’가 분명하지만,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가 한 인물을 탐색하는 관행과 달리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인물 여러 명을 함께 다룬다. 누가 누구와 만나 무슨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어떤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탐색하는 이 책은 넓게 보아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라고 할 수 있으며, 좁게는 특정 집단의 공통된 특성에 초점을 맞춘 집단적 인물 연구(prosopography)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한 사전 준비로 장르부터 꽉 움켜쥘 필요는 없다.

총 29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지은이가 한 장 이상씩 지면을 할애한 인물은 총 10명이다. 이 중에는 요하네스 케플러·허먼 멜빌·찰스 다윈 같은 남성이 포함되어 있지만, 세 사람은 고작 한 장씩을 차지했을 뿐이다. 나머지 26개 장은 모두 여성에게 돌아갔다.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만능 저술가인 마거릿 풀러, 천문대의 자료분석가 윌리어미나 플레밍, 조각가 해리엇 호스머, 시인 에밀리 디킨슨,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 브라우닝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인인 이 여성들은 얼핏 보기에 두서없이 호출된 것 같다.

〈진리의 발견〉에 나오는 위인을 크게 나누면 과학자가 반이고 시인(예술가)이 반이다. 여기에 이 책의 첫 번째 주제가 있다. 오늘날 과학과 시는 넘기 어려운 칸막이로 구획되어 있지만, 지은이는 원래 “과학과 시는 공생관계”였다고 말한다. 괴테는 시와 과학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일을 격렬하게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느 곳의 누구도 과학과 시가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들 과학이 시에서 태어났음을 잊어버렸고, 시대가 바뀌면 두 분야가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친구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20세기의 천재적인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괴테의 시 한 편을 무심코 암송하다가 자기장에 대한 착상을 했다. 레이철 카슨은 해양생물학자가 되기 이전 여러 잡지에 무수히 시를 투고하던 시인 지망생이었으며, 반대로 미국에서 성공한 최초의 여성 조각가였던 해리엇 호스머는 말년에 본업을 작파하고 영구기관 제작에 매달렸다.

여성은 과학을 할 줄 모른다고?

두 번째 주제는, 여성은 과학을 할 줄 모른다는 오래된 선입견을 근거 없는 헛소리로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에 유독 17세기의 인물인 케플러가 배치되어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수학자가 본업인 케플러는 세계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인 〈꿈〉을 통해 지동설을 우화(우회)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 책이 빌미가 되어 약초 의사였던 그의 어머니 카타리나는 마녀재판에 회부되었다(다행히도 간신히 방면됐다). 지은이는 독일에서만 2만5000명이 마녀로 희생된 이 일화를 통해 여성이 과학을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과학은 금지구역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성은 20세기 초가 되기까지 특출한 재능이나 남성의 비호 없이는 과학에 입문할 수 없었다.

미국인 최초로 혜성을 발견한 마리아 미첼이나 화학 살충제(DDT)의 위험을 폭로해 화학업계의 천적이 된 레이철 카슨이 카타리나가 살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마녀로 화형당했을 것이다. 현재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과학자(scientist)’라는 중성명사를 쓰지만, 애초에는 ‘과학의 남자(man of science)’라는 표현만 있었다. 1834년, 영국의 여성 과학자 메리 서머빌이 뛰어난 논문을 발표한 것 때문에 할 수 없이 만들어진 단어가 과학자다.

거칠게 요약해놓은 주제 두 가지는 이 책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진리의 발견〉의 진정한 주제는 아마도 세 번째 것일 테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페미니즘, 여성 위인 전기, LGBT 전기’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의 거의가 성소수자(동성애자) 이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은 스무 살 때 같은 나이의 수전 길버트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고아인 수전은 에밀리와의 사랑이 비현실적임을 알고, “그 오빠의 아내가 되어 디킨슨가를 떠나지 않고 에밀리 곁에 있는 방법”을 택했다. 이후 에밀리는 36년 동안 수전에 대한 사랑을 간직했다. 1700편이나 되는 그녀의 시는 이성애를 상정한 사랑시로 읽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이 여성에게 바치는 아가(雅歌)다. 안데르센의 성정체성은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아동들이 읽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그녀의 성소수자성을 알고 읽어야 더 절실하고 명료해지는 작품이 많다. 그런데도 점잖은 해설자들은 이 사실을 건너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레이철 카슨과 결혼 생활 29년째인 도로시 프리먼 역시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도로시가 곧바로 남편에게 두 사람의 감정을 말했을 때, 스탠리는 레이철을 자신의 경쟁자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마음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일을 기뻐했다”. 이런 관계를 운명이라고 일컫지만 지은이는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에이드리언 리치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날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운명이라고 과장하고 있는 것 혹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랑은, 운명도 선택도 아닌 그저 “우연”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것은 언젠가 당신에게도 심상하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광대한 규모의 사실주의이다”.

이 책의 원제 ‘figuring(형상화)’에는 주류 역사에 의해 자신의 실체를 은폐당한 여성 성소수자의 뛰어난 생애를 드러내보겠다는 지은이의 의지가 표명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판에서는 제목이 〈진리의 발견〉으로 바뀜에 따라, 이 책을 손에 잡은 독자의 문제의식도 함께 바뀌었다. 대체 무엇이 진리이고, 이 책에서 어떤 진리를 발견하라는 말인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주제를 통관하는 것은 전체성이다. 시(예술)와 과학, 남성과 여성의 능력은 나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성(性)과 사랑조차 이성애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성별의 “완전히 극단적인 이원성”을 선구적으로 비판했던 마거릿 풀러는 “완전히 남성적인 남자도, 순수하게 여성적인 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허먼 멜빌은 15년 연상의 너새니얼 호손에게 구애를 했으나 거부당하고, “남은 40년 동안 이 슬픔을 안고 살아갔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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