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이 글을 쓰기 위해 최영미 시인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한 그녀의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읽은 지는 2년쯤 된 듯하다.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그녀가 ‘괴물’을 쓰고 난 뒤에 나는 그녀와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되었다. 내가 그녀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두 시집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는 그녀가 차린 출판사다. 시집 뒤의 판권 사항을 보면, 2019년 4월2일 출판 등록을 했고,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89 마포우체국 사서함 11’을 주소로 쓰고 있다고 나온다. 아마 별도의 출판사 사무실을 마련하지 않았기에, 우체국 사서함을 통해 우편물을 받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미가 낸 첫 책이 최 시인의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고, 두 번째 책이 그녀의 영문 시집인 〈The Party Was Over〉, 세 번째 책이 2005년 실천문학사에서 초판이 나온 〈돼지들에게〉의 개정증보판이다.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라는 시집 제목은 “가슴을 두드렸던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라는 ‘시인의 말’에서 비롯했다고 시인이 직접 밝힌 바 있다(‘시인의 방에서, 사업자의 방으로’, 〈W Korea〉, 2019. 9. 14.).

어디 가슴을 두드렸던 그 순간뿐이겠는가. 인생의 모든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시간도, ‘괴물’을 썼던 시인의 시간도, 만나고 헤어지고 담소를 나누었던 그 모든 시간들도, 다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순간을 더듬고 반추하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기억을 핀셋으로 집어 종이 위에 옮겨놓는 일을 한다. 물론 이때 글로 복원된 순간은 실제의 순간과는 다르다.

1999년 가을, 시인은 속초에 살면서 이렇게 적었다.

“산다는 건 내게 치욕이다. 시는 그 치욕의 강을 건너는 다리 같은 것. 내가 왜 어떤 항구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었는지,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나직이 풀어놓을 힘이 내게 남아있으면 좋겠다. 해변에 엉거주춤 서 있는 저 가엾은 백로들도 훌훌 털고 비상할 때가 있으리라. -1999년 가을, 속초에서(‘바람 부는 날’의 詩作 노트, 〈돼지들에게〉, 이미, 52~53쪽).”

‘우리’ 안의 허위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시인

사는 일을 치욕이라 여기는 정신의 세계나 마음의 풍경을 내가 온전히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동해안 어느 해안가의 백로를 가엾게 여기는 시인의 시선에는 나도 도리 없이 눈길이 간다. 그녀가 털어놓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에 내가 귀를 기울이려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

〈돼지들에게〉에서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은 시들(1부 ‘순진의 시련’에 실린 시들에 나오는 ‘돼지’와 ‘여우’가 누구인가에 대해 오랜 논란이 있었다)보다 내가 더 인상적으로 읽은 시는 ‘시대의 우울’이었다.

그처럼 당연한 일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했던가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종이로 인쇄되어 팔리는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
-‘시대의 우울’, 〈돼지들에게〉, 이미, 93쪽

이 시에 나오는 ‘밑씻개’라는 시어는 김수영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에서 40년쯤 전에 먼저 쓴 바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시는 어느 정도 김수영을 떠올리게 한다. 40여 년 전 김수영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라고 주장했다면, 시인은 “관념” “자기도취” “감상적 애국” “흑백논리”에 빠진 진보에 대해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라고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양심과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 자들이/ 이 세계를 만들고 파괴하지// 단순한 흑백보다는 복잡한 회색이 인류에게 덜 해롭다(‘짧은 생각’,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이미, 79쪽)”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우리” 안의 허위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한편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는 ‘미투’의 여진을 담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시들에서 시인은 “나는 내 명예가 그의 명예보다/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바위로 계란 깨기’)라고 읊조리고, “한 편의 짧은 시를 쓰고/ 100쪽의 글을 읽어야 하다니”(‘독이 묻은 종이’)라고 탄식하며, (화면과 자판의 이음새가 깨져 테이프로 고정시킨 노트북으로 책상 위의 괴물과 싸웠다)”(‘2019년 새해 소망’)라고 고백한다. 또 “당사자 심문을 앞두고/ 3년이나 대기한 시립요양원에 자리가 나왔는데도/ 엄마를 옮겨드리지 못했다”(‘뭘 해도 그 생각’)라고 술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훗날 ‘미투’보다 그녀가 남긴 ‘시’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시 2편 달라는 메일을 받고/ 세수도 하지 않고/ 세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고/ 계량기 교체하느라 단수한다는 안내방송도 듣지 못하고// 시간의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겨/ 이미 여러 번 우려먹은 기억을 재활용하느라/ 새벽부터 엉덩이 붙이고 앉아/ 브런치를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는데, 10분 전인데/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어떤 사랑의 묘약이 이보다 독하랴(‘원고 청탁’,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이미, 89쪽)”라고 설레어 하는 그녀가 천생 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61년 태어나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30여 년 가까운 기간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 〈다시 오지 않는 것들〉 등 시집 여섯 권과,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 등 장편소설 두 권, 그리고 여러 권의 산문집과 시 해설서를 펴냈다. 1983년 태어나 2011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서 한 편의 시를 기억해야 한다면, 이 시를 고를 것이다.

내가 아니라 우리
너가 아니라 우리
싫어도 우리, 라고 말하자

(중략)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아니라
여성의 이름으로 우리의 역사를 써야겠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그래야, 이 삐뚤어진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머뭇거리던 목소리들이 밖으로 나와
하나의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로 이어지고
함성이 되어 벽을 무너뜨린다

두려움을 넘어
내가 우리가 되는 기적

보석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너희들은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거라
-‘여성의 이름으로’,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이미, 48~50쪽)

기자명 허진 (문학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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