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자
루쉰 지음, 자오옌녠 그림, 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

“저어… 사람이 죽어도 정말 혼은 남나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1924~1926년에 쓴 7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이 건국되었으나 군벌의 난립과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웠던 대륙의 암흑기다. 가족들과의 불화로 루쉰의 개인사에도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밀어닥쳤다. 중국의 변화와 개혁을 열망해온 진보적 지식인인 저자 역시 이 시기엔 절망에 침식되고 만 것으로 보인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비극적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던 그의 작풍이 회색빛으로 변하고 만다. 중국 판화계의 거장 자오옌녠이 각 단편을 주제로 제작한 판화 7점이 수록되어 독자의 작품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실리콘 제국
루시 그린 지음, 이영진 옮김, 예문아카이브 펴냄

“실리콘밸리가 정부에도 눈독을 들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세계 기술 중심 네트워크인 실리콘밸리가 거버넌스와 의료, 교육을 장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히 정부의 역할을 대체하려 든다면? 기술 중심의 디스토피아 전망은 ‘너무 앞서간 생각’이라는 평가를 받기 일쑤지만, 이 책은 합당한 의심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거대 테크 기업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기성 시스템이 이런 욕망을 경계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테크 기업은 표면적으로 세련된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몇 년 사이 미국 금융을 떠받친 것도 이들 거대 테크 기업의 힘이었다. 기존 사업 영역을 넘어서는 테크 기업의 ‘무분별한 야심’을 지적하는 이 책을 통해 이들의 ‘영향력’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경험이 될 듯하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김영서 지음, 이매진 펴냄

“아빠가 틀렸습니다.”

아빠라고 불러야 했던 사람이 죽었다. 2019년 1월22일 휴대전화 일정표에 다섯 글자를 적었다. ‘악이 사라짐.’ 부고를 들었을 때 느낀 감정에 딱 맞는 단어를 찾을 수 없어 사실만 적었다. 그가 사라지고 1년이 지났다. 새로운 방식으로 미투를 해야겠다고 결심이 섰다. 미투조차 어려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필명을 본명으로 바꿨다. 2012년 ‘은수연’은 2020년 ‘김영서’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주먹질, 발길질, 강간…. 어린 딸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시간들에 관한 기록을 다시 펴냈다. 그 모든 시간이 개인의 불행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럿이 함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말하기 위해서.

 

 

 

 

 

 

 

 

아무튼, 메모
정혜윤 지음, 위고 펴냄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을 익히 들었다. 새해가 되면 꼭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하지만 의지가 멈춰 선 곳은 늘 1월과 2월 사이 어딘가. 습관을 들이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가. 저자도 ‘메모해둘걸’ 하는 한탄 속에 빠져 있던 비메모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르포 작가가 되고 싶어 메모를 시작했다. 소설 속 한 문장부터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 한 구절,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까지. 차곡차곡 모인 문장들은 그의 삶을 떠받치는 단단한 주춧돌이 되었다. 그는 메모가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라고 말한다. 메모하는 습관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만든다. 메모가 사소한 일이 아니라,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소금 눈물
피에트로 바르톨로·리디아 틸로타 지음, 이세욱 옮김, 한뼘책방 펴냄

“그저 살아갈 곳, 자라날 곳을 찾고 있는 그 어머니들과 아버지들, 그 딸들과 아들들에게.”

책은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익사할 뻔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더 이상 조잘대지 않는 말없는 소년이 됐다. 바다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의 경험은 50여 년 뒤 바다를 건너온 난민들의 모습에 오버랩됐다.
저자 가운데 한 명인 의사 피에트로 바르톨로가 태어난 람페두사는 이탈리아 최남단 섬이다. 거리상 이탈리아보다는 아프리카 대륙에 더 가깝다. 2010년 ‘아랍의 봄’ 이후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난민이 람페두사를 거쳐 갔다. 지중해의 작은 섬에서 25년 동안 난민을 돌보고 치료해온 저자의 모습이 담긴 영화 〈화염의 바다〉가 201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기도 했다.

 

 

 

 

 

 

 

 

 

편집가가 하는 일
피터 지나 편저, 박중서 옮김, 열린책들 펴냄

“많은 독자에게 훌륭한 책을 가져다주는 것만큼 저자와 우리 문화에 중요한 일이 또 있겠는가?”

맞춤법·외래어표기법 등 편집할 때 알아야 할 지식이 아닌, 책을 내는 ‘일’에 대해 소개한다. 한 권을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원고를 받아 교정을 보고 디자이너를 섭외하여 인쇄소에 넘겨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은 어떤 책이든 똑같다. 하지만 편집가의 일이란 설명처럼 간단하지 않다. 출판계의 유서 깊은 격언에 따르면 편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하고, 저자를 상대로 출판사를 대변한다”. 또 “저자를 상대로 독자를 대변하고, 독자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한다”. 저자와 독자, 출판사를 어르고 달래며 영구적으로 도전한다. 그 와중에 좋은 책을 세상에 내놓는 자부심과 어떻게든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한다는 사업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인생의 경험이 총동원되는 일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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