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3월6일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3월12일 현재 미국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13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38명에 달한다. 코로나19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자 미국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주식시장까지 폭락을 거듭하면서 11년간 호황을 누려온 미국 경제가 침체에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까지 느껴진다.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방역과 퇴치를 위해 83억 달러(약 10조원)를 긴급 승인했다. 연방정부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 마련에 부심하는 한편 마이크 펜스 부통령 중심으로 대책본부를 꾸렸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초기대응 실패, 신속한 진단을 가로막는 보건 당국의 관료주의적 행정, 진단키트 및 장비 부족 등으로 미국의 방역 대응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우선 확산 추세를 보면 3월12일 현재 50개 주 가운데 수도인 워싱턴 D.C.와 인근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 최소 41개 주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각 주에서 확진 여부 검사가 대규모로 진행 중이거나 검사 결과가 지연되고 있어서 향후 확진자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별 확진자를 보면 서부 워싱턴주가 273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동부 뉴욕주 173명, 캘리포니아주 123명 등이다(3월12일 기준). 확진자 가운데는 크루즈선 탑승자, 코로나19 발생지 경유 여행객 외에 미국 내에서 감염된 환자도 수백 명에 이른다.

워싱턴 등 12개 주 비상사태 선포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해지자 캘리포니아, 워싱턴, 뉴욕 등 12개 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확진자가 가장 많은 워싱턴주에서는 각종 스포츠 행사와 콘서트 등 250명 이상의 집회가 금지됐다. 캘리포니아주는 수십 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샌타클라라 카운티에 대해 1000명 이상의 집회금지령을 발동했다. 뉴욕주는 1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 뉴로셸시에 주 방위군을 투입해 3월12일부터 2주간 ‘봉쇄 존’을 발동하고 학교, 종교시설 등을 폐쇄했다.

미국 전역의 주요 대학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전환했다.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퍼드, 캘리포니아, 듀크, 워싱턴 대학을 포함해 최소 15개 주요 대학이 3월 중순 시작되는 봄방학 이후에도 당분간 온라인 수업을 지속할 계획이다. 적지 않은 회사들도 직원들의 감염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재택근무를 적극 독려 중이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서부 지역의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은 이미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시민들은 유사시 대비 요령을 숙지하는 등 사회 전반에서 긴장감이 역력하다. 필자가 사는 메릴랜드주에서도 3월12일 현재 확진자가 9명 발생했다. 다만 거리나 상점, 시장, 음식점, 직장, 학교, 종교시설 등에서 아직까지는 마스크 착용자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건강한 일반인이 아닌 감염성 호흡기 질환자나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 종사자에 한해 마스크 사용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전역이 긴장하고 있는데 정작 보건 당국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앨릭스 에이자 보건장관은 CNN과 인터뷰에서 “현재 민간 진단회사와 병원 등으로부터 수십만 건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들이 직접 CDC로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현황을 알 수 없다”라고 밝혔다. 진단장비와 검사 시설 부족도 큰 문제로 꼽힌다. 실제로 미국 전역에서 CDC와 공중보건시설에서 실시한 코로나19 감염 검사는 3월9일 기준 5861건에 불과하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한국이 인구 100만명당 검사 숫자가 미국의 700배에 이른다”라며 미국 보건 당국의 부실 대응을 꼬집었다.

ⓒAP Photo3월11일 증시가 급락하자 뉴욕 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괴로워하고 있다.

미국은 50개 주 78개 공중보건 시설이 하루 평균 7만5000건의 검사능력을 갖추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3월 첫 주에 진단키트 110만 개가 미국 전역에 보급됐으며, 이후 수백만 개가 추가로 보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진단 대상자가 폭증하면 신속히 검사해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로버트 레드필드 CDC 소장은 3월11일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각 지역 공중보건 시설의 장비와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라고 하소연했다. 하버드 대학 감염병 전문가인 마크 립스티치 교수는 “이미 확진된 감염 환자 외에도 검사를 받지 못한 환자가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보건 당국의 무사안일한 대응도 드러났다. 미국 내에서 최대 확진자가 나온 워싱턴주 시애틀 독감연구소(SFS)의 감염병 전문가인 헬렌 주 박사가 실제 겪은 에피소드다. 1월 하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독감 표본을 검사하던 그는 신종 바이러스 소식이 알려지자 기존 독감 검사를 코로나19 검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주 보건 당국에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주 박사는 CDC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CDC는 “해당 연구소가 자체적인 검사를 하고 싶으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라”고 답했다고 한다. FDA는 “해당 연구소가 임상 실험실로의 용도 변경을 인증받지 않았기 때문에 승인해줄 수 없다”라고 딱 잘라 거부했다.

“코로나19 미국 전 지역으로 퍼졌다”

이후에도 주 박사는 거듭 당국에 코로나19 검사 승인 요청을 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결국 2월25일까지 승인받지 못한 주 박사와 동료들은 임의로 코로나19 검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해외여행 경험도 없고 감염 지역도 방문하지 않은 10대 학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주 박사는 “이 정도면 바이러스가 이미 전 지역으로 퍼졌을 게 확실하다”라며 보건 당국의 관료 행정을 질타했다. 실제로 이 학생의 확진 판정 뒤 시애틀 지역엔 불과 수일 만에 20명 이상의 확진자가 속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과 처신도 논란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초 뉴햄프셔 유세 당시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이면 바이러스는 기적적으로 사라질 것이다”라고 호언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그가 코로나19에 따른 정치적 불똥을 차단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CDC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 낸시 메소니에 국장이 2월 하순 미국 전역의 코로나 확산 가능성을 경고한 뒤 주가가 폭락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에이자 보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고 한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행정부 관리들도 코로나19 위험을 실제보다 축소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을 받은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보건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경고해왔다. 금융시장 혼란과 국민들의 패닉을 이유로 백악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제동을 거는 바람에 전문가들의 견해가 무시됐고 초기대응 실패로 이어졌다. 〈폴리티코〉는 복수의 전·현직 고위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접근방식이 결국 위기를 부채질했다”라고 지적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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