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인도 뭄바이에서는 5000여 명이 도시락 배달 산업에 종사한다.

〈시사IN〉이 진행한 ‘여행작가 환타와 함께 떠나는 북인도 기행’ 덕에 인도를 잘 모르던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카스트 제도가 인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사라질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카스트 제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을 지내고, 인도 헌법에 카스트로 인한 모든 차별이 불법이라는 조항을 넣은 암베드카르 박사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성자의 나라’에도 투쟁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결국은 투쟁가가 더 많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카스트는 힌두교 시스템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카스트를 알려면 힌두교를 이해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설명한다면 힌두교는 누가 더 더러운지를 겨루는 데 교리가 특화된 종교다. 여기서 더러움이란 낮은 카스트를 말한다. 육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노동으로 인한 분비물, 즉 땀을 불결하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분비물을 다루는 노동은 더 불결하다. 불결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카스트는 낮다.

도시락 배달 시스템의 빛과 그늘

이 불결함을 겨루는 게임이 극단화된 게 최대 경제도시 뭄바이에서 발달한 도시락 배달 시스템이다. 부인이 만든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맞춰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배달하는 산업이다. 굳이 부인이 만든 도시락을 기어코 배달해야 하는 이유도 카스트 때문이다. 부인은 누군지 알지만 식당 요리사는 누군지 모른다. 상층 카스트일수록 하층 카스트가 만든 음식을 꺼린다. 장대에 도시락 여러 개를 매고 점심시간에 맞춰 배달하는, 극단적 암기력과 길 찾기 능력을 요구하는 이 희한한 산업이 발달한 배경을 우리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도의 종교 개혁가이자 시크교를 창시한 구루 나낙은 한데 어울려서 밥을 먹는 걸 카스트 문제의 해법으로 봤다. 구루 나낙은 시크교를 창시하면서 카스트를 없애기 위해 두 가지 노력을 했다. 하나는 성씨를 통합했다. 인도에 처음 온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인도인들은 카스트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인데, 실은 매우 간단하다. 사람의 성씨를 보면 알 수 있다. 시크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는 싱(Singh), 여자는 카우르(Kaur)라는 성을 갖는다.

또 하나는 공동 부엌인 랑가르(Langar)를 만든 일이다. 시크교인들은 랑가르에서 모두 함께 밥을 나눠 먹어야 한다. 이게 뭐가 대단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구루 나낙이 살던 15~16세기에는 카스트가 다르면 한자리에서 밥도 먹지 않았다. 지금도 시크교 사원에서는 이 랑가르에 모여 공동 식사를 한다. 점심식사 때는 종교도 가리지 않아 모든 방문객이 밥을 먹을 수 있다. 여행 안내서에는 ‘무료 식사’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 이 공동 식사야말로 카스트 제도를 깨고 싶었던 그루 나낙의 꿈이 실현되는 모습인 것이다.

시크교 최대의 성지인 암리차르의 ‘구루 카 랑가르’는 세계 최대의 공동 부엌이다. 재료 다듬기, 요리, 배급, 설거지가 모두 자원봉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매일 10만 명가량이 공동 점심식사를 한다. 매일 밀가루 5t, 렌틸콩 2t, 쌀 1.5t, 우유 700㎏이 사용된다. 이 한 끼 식사를 위해 5000명가량의 자원봉사자들이 팔소매를 걷고 나선다. 그들은 모두가 한데 밥을 먹는 ‘대동 세상’을 꿈꾸며 싸우는 중이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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