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이 ‘위대한 복지국가’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복지국가란 북유럽처럼 미래를 내다보고 ‘거래’할 줄 아는 노사와 정치의 리더십, 성숙한 여론 따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 아닐까 하는 체념은 익숙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노동조합이 정치와 긴밀하게 소통해 복지국가의 기틀을 만든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건강보험 통합이 그 사례다. 기존 의료보험은 지역별로, 직장별로 재정 격차가 심각했다. 조합 수백 곳으로 쪼개진 의료보험을 하나로 통합해 지금의 건강보험을 만든 것이 김대중 정부 때였고, 그 변화를 이끈 주체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였다.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는 바로 그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책이다(저자가 시카고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16년 영문으로 출판된 책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불평등의 세대〉를 통해 이른바 ‘586 세대’의 자원 독식을 비판한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이 책에서는 과거 노동·시민운동의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당시 한국노총과 산하 노조들은 건강보험 통합에 반대했다. 이미 양질의 직장의료보험 혜택을 누리던 임금노동자들은 농민, 비정규 노동자, 자영업자와 비취업자가 대부분인 지역의료보험 조합원들과 이익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균형추를 움직인 것이 민주노총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재벌 대기업 노조였다. 이들이 “사내에 쌓인 자신들의 보험료가 전체의 혜택을 늘리는 데 사용되는 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저자는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연계(배태성)를 한 축으로, 노동운동과 정당 사이의 동맹(응집성)을 다른 축으로 삼아 ‘어떤 조건에서 보편적 사회정책 개혁, 즉 연대가 가능한지’ 추적해간다. 동의하기 어려운 견해도 일부 있지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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