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19년 12월31일 ‘선거 연령 18세 법안’이 통과되자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2019년 마지막 날, 패스트트랙이라는 낯선 말과 함께 선거 연령이 낮아졌다. 2020년, 30년 전 ‘원더 키드’가 있을 것이라고 꿈꿨던 시기가 이르러서야 18세가 한국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새해벽두부터 ‘교실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며 학교 안에서 각종 선거운동을 불허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도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던 모의 선거조차 금지했다.

‘교실의 정치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교사가 평소 사회문제와 관련해 하는 말과 뉘앙스를 통해 학생들이 교사의 지지 정당을 추측하고, 투표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인가? 성인들도 평소 정치에 관심을 가질 만한 여력이 없으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의 선택을 참고하거나 혹은 가장 불신하는 사람과 반대되는 쪽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학생은 교사를 신뢰하기도 하지만 불신하기도 한다. 교사가 무조건 찍으라고 해서 투표하는 18세가 얼마나 있을까? 학생들은 교사뿐 아니라 친구 등 누구의 말도 참고할 권리가 있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투표를 앞둔 학생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갈 수 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너 이번에 누구 찍을 거야?” “나는 ○○○ 찍을 거야.” 학생들은 평소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며 추가 정보를 찾거나 마음에 드는 후보를 판단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서 이뤄지는 최소한의 민주시민교육이다.

‘교사의 선거 개입’이 걱정된다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교사 의견을 눈앞에서 되받아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만약 내가 학생들에게 “학생인권법을 정책으로 내놓는 정당을 지지하겠다”라고 말했을 때, 학생들이 “선생님, 그런 말씀 하시기 전에 선생님부터 학생 인권을 먼저 존중해주세요”라고 한다면, 이 대화는 교사의 삶과 지지하는 정치에 대한 일치의 문제로 논점이 바뀔 것이다. 또는 학생들이 “그 정당이 ○○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아십니까? 편파적으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유권자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정치적 결정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토론할 수 있다. 이렇듯 교실의 정치화는 각자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화하며 물꼬를 틀 수 있다.

ⓒ연합뉴스지난 1월29일 청소년YMCA 관계자 등이 학교 내 선거교육을 규제하는 선관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치적 대화 금지가 가짜 뉴스의 힘 키워

학생들은 SNS와 유튜브 등에 있는 잘못된 정보로 정치적 판단을 하므로 교실에서 선거 이야기를 금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학생들이 왜 SNS와 동영상 채널을 통해서만 정치를 접하게 되었을까? 학교 안에서 정치를 제대로 토론하고 논쟁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지적하듯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일방적이다. 만약 이것이 정말로 걱정된다면 학교 안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하려면 학생들이 접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교사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이것이 금지되어 있다. 학생들이 정치나 선거에 의문이 생겨도 교사에게 물어볼 수 없다. 혹시 질문이 들어와도 교사들은 “정치적인 것은 묻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로서는 친절한 답변과 나름의 논리적 전개로 정치의식을 구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통로가 SNS와 유튜브 등이다. 학생들에게 학교 안에서 정치적 대화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편향된 경로에서 오는 가짜 뉴스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8세 선거 연령 하향의 진정한 의미는 학생들의 투표권 부여에만 있지 않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유권자인 학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갑’의 위치에서 학교를 드나들었던 정치인이 표를 구하는 ‘을’로서 청소년 유권자를 만난다면, 학생들은 투표권을 통해 일상에서 갑과 을이 전복되는 민주적 경험을 할 것이다.

후보자가 학교를 휘젓고 다닐까 봐 걱정된다면 학생들이 직접 후보들을 초청해 정당 연설회를 열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다. 정치인들이 내건 공약을 비교하고, 나아가 학생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법을 만들며, 그것을 공약으로 받을지 말지 토론회를 열 수도 있다. 그러면 ‘기존 정당 중 누구에게 투표할까’가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정책을 국회에 반영하는 과정이 정치’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몇몇 교육청에서 학내 선거활동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선관위도 학교 내 여러 활동을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볼 때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18세부터 참정권을 행사하려면 그 이전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리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선관위는 모의선거마저 불허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투표권만 있을 뿐, 학내 정치 토론에 대한 침묵을 강요당한 채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제 유권자인 학생들은 규제 위주의 선거법을 개정할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고,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외면하는 교육감을 2년 뒤에 심판할 수 있다.

학생들이 권리를 누릴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교육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유권자로서 힘을 행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정치에 휘둘리는 게 싫다면 그들이 정치적 힘을 휘두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치가 더럽게 느껴진다면 학생들과 함께 바꾸자고 해야 한다.

2014년 ‘더러워서 피한’ 정치의 결과로 가장 많이 희생된 사람들이 바로 청소년이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월호 참사를 접했다. 이들은 정치가 우리 삶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고, 문제 제기하고, 투표로 심판한 만큼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걸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배웠다. 이들이 일궈낸 제도적 변화인 선거 연령 하향을 무력화하지 않으려면 학교에서 대자보 붙이기, 정치 토론회 또는 집회의 개최 등 학생들의 정치 표현의 자유를 좀 더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기자명 조영선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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