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가을, 1970년대 중앙정보부(중정)가 양성한 북파 특수공작원 조박씨가 편집국을 찾았다. 그는 기자에게 1억원대 현금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줬다. 입금자는 국가정보원(원장 김만복)이었다. 조씨는 2005년 4월, 〈시사저널〉 기자로 있던 나에게 “내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파리 외곽 양계장 파쇄기에서 암살했다”라고 고백해 파문을 불렀던 인물이다. 1979년 봄부터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라인의 부름으로 김형욱 암살 공작을 기획한 뒤 파리 외곽의 한 양계장에서 파쇄기를 통해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2005년 국정원은 이른바 과거사 8대 사건을 조사하던 중이었다. 조씨는 국정원 진실위에 자진 출석해 기꺼이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나는 2005년 당시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을 만났다. 김 실장은 ‘차지철 경호실장 지시였다면 국정원 전신인 중정의 과거사는 아니다’는 형식 논리로 조씨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그해 5월 김형욱 실종사건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재규 중정 부장이 10·26 사건 직전 파리 주재 한국 대사관에 나가 있던 이상열 공사와 연수생들에게 독침과 권총 1정, 미화 10만 달러가 든 007 가방을 건네며 김형욱을 제거하라고 지시해 이뤄진 청부 암살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루마니아 조폭 2명을 고용해 김형욱을 납치해 파리 외곽 산책로 옆에서 권총으로 사살하고 낙엽으로 시신을 덮었다는 것이다. 당시 국정원 진실위에 민간위원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참여정부 국정원이 하는 일은 믿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김만복 국정원장은 조박씨에게 거액의 돈을 입금했다. 국정원은 왜 김형욱 암살과 무관하다던 조씨에게 돈을 건넸을까? 최근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김형욱 사건을 허구로 다뤘다. 영화에서 김형욱의 시신은 커다란 사료 파쇄기에 넣어진 것으로 묘사된다.
2005년 국정원 진실위에 참여한 한 민간위원은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당시 우리가 추정하기로 (중정 요원이) 김형욱을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는데, 그 요원은 마지막 처리는 직접 안 하고 마피아가 낙엽을 덮었다고 진술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과거 국정원의 발표 때 민간위원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들러리 섰다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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