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정신분석학자 시몬느 소스는 장애아와 그 가족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연구한 〈시선의 폭력〉(한울림스페셜, 2016)에서, “장애아의 성은 부모에게 가장 조심스럽고 어려운 문제이다. 장애와 관련한 어떤 문제든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성에 관한 문제는 마지막 금기로 남아 있다”라고 말한다. 장애 청소년이 의심할 여지 없이 사춘기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부모나 보호자는 장애 청소년을 고집스레 어린아이로만 보려고 한다.

“사람들은 장애아의 성을 이야기할 때면 성적 욕망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틈만 나면 장애아의 부드러운 감수성을 열심히 들먹이는 이유는 아이의 성적 자각을 모르는 체하기 위해서이다. 장애와 성을 연관 지으면 부모는 견딜 수 없는 이미지와 대면하고, 전문가들은 대단히 미묘한 윤리적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예를 들어 다운증후군 청소년이나 어른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천자오루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사계절, 2020)은 정답을 얻기 어려운 질문을 공론화하기 위해 쓴 책이다. 타이완에서 이름난 르포라이터인 지은이는 ‘암흑의 나라’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에서 지금까지 무성적으로 취급되거나 성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지체장애인과 발달(지적)장애인의 섹스를 주제 삼아, 그들의 연애와 결혼으로까지 화제를 넓힌다. 그러기 위해서 지은이는 여러 부류의 장애인과 이들의 가족을 만났고 사회복지사와 전문가를 취재했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장애인은 신체의 온기와 쾌락을 갈망하지만, 불공평한 이데올로기에 결박된 채 암흑의 나라에 감금되어 영원히 환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처지와 같다. 문학과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희열은 건너편 빌딩을 환히 밝히는, 마치 딴 세상의 불빛처럼 은은하게 빛을 내보낼 뿐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장애인들은 그것이 자신에게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만은 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에게도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지은이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성으로부터 배척당한 장애인이 겪는 실제적인 고통과 그들에 대한 연민이다. ‘성’은 양다리 사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성’은 종종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

비장애인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의수와 의족에 의지해 산을 오르는 도전자, 휠체어를 탄 댄싱 퀸, 상처로 팬 얼굴을 가진 모델, 사지가 없지만 성공한 위인 등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장애인의 성적 욕구는 상상하지 못한다. 이런 불공평한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난해하지 않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에 대해 이렇게 반문한다. “잘 먹고 잘 자면 그것으로 됐지. 또 무슨 행복과 즐거움을 바라겠다고?” 이런 무시에는, 장애인에게 성적 자율성이 주어지고 나면 사회가 그들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숨어 있다. 타이완의 어느 연구자는 사회복지 관련 기관이 장애인의 성교육과 성적 돌봄 문제를 기피하는 이유로 “이러한 필요가 복지 서비스로 채택되면 다른 복지 예산을 갉아먹는 결과”가 초래될 것을 꼽았다.

국가는 성에 간섭하는 여러 법률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개개인의 성적 행동에 법률적으로 관여하지만, 장애인의 성적 필요에 대해서만은 ‘성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회피한다. 그러나 한 세기 전만 해도 미국과 독일 같은 선진국들이 우생학의 영향을 받아 지적장애나 뇌전증을 앓는 장애인에게 강제 불임시술을 했던 역사가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지적장애인에게 불임시술을 강제하는 일이 흔치 않지만, 가족이 나서서 요구하는 사례는 전모가 파악되지 않는다. 이 또한 국가의 방기나 묵인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지적장애인=무성애자’로 여겨

국가와 사회가 지적장애인을 무성애자로 간주하면서 그들에 대한 성교육의 필요성도 따라서 생략된다. 장애인의 사회복지를 도맡은 기관은 장애인들에게 괜한 성교육을 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그 때문에 지적장애인 여성은 다른 여성보다 성폭력 피해자가 될 확률이 더 높다. 2016년 타이완에서 발생한 성범죄가 8000여 건인데 그중 10%가 넘는 피해자가 장애인이고, 그 가운데 50%가 지적장애인이다. 경·중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지적장애 여학생은 적절한 학습과 지도 아래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식별할 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이해한다. “그에 더해 실제 훈련과 반복적인 연습을 거치면, 감정전달 및 자기결정 능력을 갖추었다.”

남성 지적장애인은 사춘기가 되면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각한다. 그들의 가족과 사회복지사(활동보조원)의 관찰에 따르면, 성적 욕망이 충족되지 않은 지적장애인은 필사적으로 고함을 지르거나 기물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복지 단체가 이 문제를 외면하는 사이 여러 장애인들은 개별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야 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동남아시아의 외국인 신부를 데려와 “가족 부양은 물론 돌봄 인력과 성적 자원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다. 몇십만 타이완 달러에 신부를 사오는 이 방법은 장애인의 행복추구권이 또 다른 인권침해를 낳는 모순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장애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는 섹스 치료사(sex therapist), 섹스 대리인(sex surrogate), 섹스 도우미(sex assistant)라고 불리는 다양한 장애인 섹스 서비스 제도가 있지만, 이들의 활동은 공적 지원을 받기는커녕 비장애인에게 적용되는 여러 성매매 단속법의 눈치를 봐야 한다. 타이완에서는 혼자 힘으로 자위를 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 무료로 자위를 대신해주는 손천사(手天使)라는 장애인 성 자원봉사 단체가 만들어졌지만, 사회질서유지법은 이들의 무료 성 서비스마저 기소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장애인의 성을 중심으로 몇몇 화제를 기술했지만, 비장애인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장애인의 섹스 욕구뿐만이 아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연애와 결혼 역시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섹스 욕구와 똑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이 책에서 단 한 구절만 기억하라면 나는 이것을 기억하겠다. “장애는 개인의 불행이지만, 사회적 조건과 문화적 편견이야말로 그들이 생존하는 데 장애가 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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