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2월3일 저녁 퇴근길 시민들이한 지하철역에서 이동하고 있다.

2020년 2월의 일상이 코로나19(COVID- 19)에 잠식당했다. 확진 환자가 늘고 감염 확산 우려가 커지면서 전 사회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2월13일 현재 전국 449개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가 휴업 또는 조기방학에 들어갔다.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추고 확진 환자가 다녀간 백화점·마트·식당 등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19의 전파력과 위험성은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코로나19의 재생산지수(R0·감염자 1명이 직접 감염시키는 평균 인원수), 치사율, 잠복기간에 관해 나오는 모든 전문가 발언과 언론 보도는 최종 결론이 아니다. 결론의 바탕이 될 변수, 이를테면 확진자 수·사망자 수·감염 경로·환자 증세 같은 데이터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전 세계에서 추가·수정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코로나19 사태가 하루 이틀 안에 끝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2월13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 수가 이미 4만5000명을 넘었다. ‘감염자 수’가 아닌 ‘확진자 수’다. 각국의 방역망 안에서 바이러스 검사를 마쳐 확진된 환자는 실제 감염된 사람의 일부이다. 실제 감염자 수가 몇 명일지는 전 세계인 전수검사를 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잠복기가 14일로 비교적 길고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확진 환자가 많다는 점도 코로나19의 전파 확률을 높인다. 자신이 감염됐는지 모른 채 일상생활을 지속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지역사회 감염’ 상황이다. 2월12일 현재 중국을 포함해 타이,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마카오 등이 지역사회 내 감염이 확인됐다.

한국도 지역사회 전파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직 지역사회 내 감염 확진 환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상 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도 2월12일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지역사회 전파 등 모든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시기이다”라고 말했다.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이 높다’의 함의는 무엇일까? 이제 코로나19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어떻게 유입을 막을까’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유입 차단에 힘쓰는 동시에, 이미 퍼졌을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추가 확산을 어떻게 막을지, 그것이 일으키는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지에 관해 좀 더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이제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 들어갔다.

감염병과의 장기전 국면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 번째가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세이다. 2월10일 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두 학회는 시민사회와 정부에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가장 강조했다. 감신 대한예방의학회장(경북대 의대 교수)은 “이 상황은 오늘내일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코로나19 국내 12번 확진자가 방문한 신라면세점 서울점이 2월2일부터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집중하고 있는 대응 방안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이를테면 무분별한 휴교·휴업 결정, 중국 전체 지역에 대한 입국금지 논란 등이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은 “수학적 모델링을 해보면 휴교가 감염병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공기 중 감염으로 전파돼서 감염원을 찾거나 환자를 찾아서 격리할 수 없는 형편이거나 주로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질병이어야 한다. 또 초기에 일시적으로 모든 학교가 휴교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일부만 휴교하고 학원은 계속 다니는 상황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라고 말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다중이용시설도 마찬가지다.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은 확진자 동선이 발표될 때마다 근무 회사, 백화점, 마트, 식당 등이 며칠째 문을 닫거나 사람들이 그곳 출입을 꺼리는 현실의 비과학성을 지적했다. “바이러스는 그런 공간에서 5초 이내 바닥에 앉는다. 확진자 동선에 따라 방역과 소독을 다 마치고 나면 그곳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방역 작업에 필요한 서너 시간을 감안해 하루 정도 출입 규제는 필요하겠지만 그걸 넘어선 기간은 아무런 과학적 이유가 없다.” 김 교수는 또 “환자와 접촉자 등을 사회적으로 비판하거나 낙인찍고 확진 환자가 다녀간 곳을 일단 폐쇄하는 분위기에서는 당사자들이 방역 당국을 피해 다녀 오히려 방역 효과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인권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확진자 동선 정보를 대중에 공개하는 까닭은 그 장소가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경고’ 신호가 아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 있다면(CCTV에서 확인된 밀접접촉자는 개별 연락이 간다) 개인 위생을 더욱 철저히 하고 혹여 증상이 있으면 빨리 보건 당국에 신고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제적 ‘예방’책에 가깝다.

계속해서 제기되는 중국 지역 전체 입국금지 주장도 득실을 잘 따져봐야 한다. 그 방안이 현실화되면 경제 영향과 외교 마찰 등은 둘째치고라도, 당장 정부와 사회의 역량이 한쪽으로만 쏠려 사용될 수밖에 없다. 기모란 교수는 “중국 전체를 입국금지하면 우한 교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중국 모든 교민들을 데리고 와야 한다. 또 우한을 거쳐 온 모든 입국자들을 자가격리시킨 것처럼 중국 경유 모든 입국자들에게도 같은 정책을 취해야 한다. 보건 당국이 이것에만 매달려야 한다. 부족한 자원을 방역에 알맞게 배분해야 하는데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정된 인력 피로 누적된 상태”

‘우선순위에 따른 자원 확보 및 활용’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부족하다고 지적받은 우리나라 공중보건 위기 대응 역량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WHO로부터 대한민국 공중보건 위기 대비·대응 체계에 관한 합동외부평가(JEE)를 받았다. 당시 48개 지표 가운데 5점(만점) 29개, 4점 15개 등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정부는 홍보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최저점 3점을 받은 4개 지표 가운데 2개가 ‘공중보건 위기에 대비한 우선순위에 따른 자원 확보 및 활용’과 ‘공중보건 위기 상황 발생 시 보건의료 인력 파견을 위한 체계 구축’이다(나머지 2개는 위기소통 관련 지표이다).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공중보건 자원이 현장에서 원활히 수급·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염병과 같은 공중보건 위기에 필요한 자원이란 크게 공간·물자·인력 세 가지이다. 마스크 품절 대란처럼, 공중보건 위기에서는 무엇이, 언제, 얼마만큼 수요와 공급 변동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위기가 오기 전에 미리 최대한 준비해놓는 게 중요하다.

첫 번째 ‘공간’ 문제는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주로 음압격리치료 병상 부족 사태로 나타난다. 2015년 메르스 사태로 교훈을 얻어 꾸준히 늘려왔지만 현재 전국 200개 병상(다인실 포함)을 넘기지 못했다. 환자가 넘쳐 체육관, 컨벤션센터 등까지 병원으로 급조하고 열흘 만에 병원 공사를 마치는 중국 우한처럼 아비규환을 맞을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갑자기 환자가 늘었을 때의 대비책은 분명 마련돼 있어야 한다. 박능후 중앙사고수습본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은 2월9일 “현재 국가지정 음압치료병상은 198개이지만 지역별 거점병원, 감염병 관리기관 등을 활용해 최대 900여 개를 확보했고 필요한 경우 민간 의료기관이 보유한 1000여 개까지 포함해 총 1900여 개를 운영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조남진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맨 오른쪽)이 2월10일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두 번째 ‘물자’는 지금도 의료 현장에서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이성순 일산백병원 원장은 “의료용 마스크 같은 경우 최근 우리 병원에서 하루 1만 장이 나가는데 새로 주문하려고 했더니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더라. 메르스 때 겪었으면 방역복, 마스크 이런 걸 당연히 국가 물자로 많이 비축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병원에 방역복 지급이 안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2월4일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반장은 마스크가 의료 현장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의료진이 쓰는 N95 마스크의 경우 현재 170만개 정도 비축하고 있는 걸로 안다. 각 시도에서 요청한 만큼 즉각 지원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자원관리과 관계자는 “마스크, 보호구 등 전염병 대비 국가 비축 물자는 전염병 관리위원회 심의로 설정된 수량 목표에 따라 비축해놓고 있다. 현재 요청이 오는 수량 대비 비축량이 모자라지 않고 추가 구매 계약도 예정돼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2월9일 “역학조사 인력을 대폭 확충해 현재 10개의 즉각대응팀을 30개까지 늘리겠다”라고 발표했다. 이런 ‘인력’ 대비는 확진자 검사와 치료에 필요한 의료 현장에도 절실하다. 박영우 병원간호사회 회장은 “(국가지정 격리치료병원 중 한 곳인) 인천의료원의 경우 간호사 충원율이 60% 수준이다. 다른 곳들도 비슷하다. 감염병 치료의 경우 무거운 보호구를 착용하고 폐기물 처리까지 도맡아야 하는 등 일반 치료보다 3배 이상의 노동력이 드는데 한정된 인력이 피로가 누적되며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정된 인력 속에서 정부가 취한 대응은 지난 1월28일 발표한 ‘방역·검역·치료 업무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 기준 완화’였다. 인터넷 뉴스와 커뮤니티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비해 눈에 띄게 초췌해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전후 비교 사진이 훈훈한 미담처럼 공유되고 있지만, 탁상우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학조사관은 방역 인력의 격무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하나의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서 그나마 다행인 소식은, 치사율이 처음 우려보다 낮다는 점이다. 2월7일 코로나19 중앙임상TF 기자회견에서 방지환 중앙임상TF팀장은 “애초 치사율이 4% 정도라고 알려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 후베이성에서 치사율이 유독 높은 이유는 단기간 많은 환자가 발생하면서 지역 의료 시스템이 붕괴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월13일 현재 WHO에 보고된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중국 외 사망자는 필리핀, 홍콩, 일본에서 발생했다.

치사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도 2월10일 국회 토론회에서 “초기 치료가 불가능한 중국 후베이성과 지금 한국은 확연히 다른 환경이다. 확진과 동시에 임상적 치료를 적절히 받는다는 전제하에서 생명을 잃을까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겨울 미국에서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는 독감과 비교해(2019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1만2000명 이상이 독감으로 숨졌다)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차분히 판단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공포만큼이나 방심도 경계해야 한다. 백신이 있고 고위험군은 예방접종으로 미리 대비하는 독감과 달리,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 앞에서 인류 사회가 무방비 상태인 점은 사실이다. 무방비 상태로 맞는 공격이 예상 외로 약하다면 다행이지만 예상만큼 강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월8일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중국과 일본(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확진자 포함)에 이어 세 번째로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다. 리 총리는 싱가포르 내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 위험을 솔직하게 알리면서도 “정부는 도시를 봉쇄하거나 외출금지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모든 물품에 대한 충분한 재고를 비축하고 있다”라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싱가포르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응집력과 심리적 단합입니다.” 이 담화 이후 사재기 등 시민들의 불안한 모습이 급감했다고 많은 외신들이 알렸다. 바야흐로 전 세계가 방심도, 공포도 모두 떨쳐내야 할 난이도 높은 코로나 장기 전쟁을 겪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도 ‘코로나 장기전에 대처하는 지속가능한 자세’를 판단해야 할 때가 왔다.


〈시사IN〉은 속보보다 심층보도에 초점을 맞춥니다. 코로나19 사태 원인과 대책, 그리고 그 후 대처를 깊이있게 보도하겠습니다. 

〈시사IN〉코로나19 특별 페이지 https://covid19.sisain.co.kr/
〈시사IN〉구독하기 https://subscribe.sisain.co.kr/
〈시사IN〉후원하기 https://support.sisain.co.kr/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