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꺼내들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계하는지 잘 모르는 수치가 있다. 각종 사회적 논쟁에서 경제성장을 다룰 때마다 소환되는 숫자. 바로 GDP(국내총생산)다. ‘1인당 국민소득(GNI) 4만 달러’를 외치는 우리 사회 역시 이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 마법의 숫자가 정말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경제 규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을까.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로 30여 년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을 취재한 저자는 ‘GDP 절대론’과 ‘성장 절대론’에 반발하며 경제를 진단하는 여러 대안적인 시도를 설명한다. 신선한 주제는 아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GDP가 완벽한 숫자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DP는 경제정책 테이블에서, 언론에서, 학계와 일선 산업현장에서 매우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선진 경제일수록 GDP의 성장이 지상 과제인 것처럼 여긴다. 문제는 애초에 이 수치가 “추정치의 합성이며 잘 정리된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GDP 개념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이먼 쿠즈네츠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GDP와 경제성장 담론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내생적으로 어떤 한계가 있는지 설명한다. 2부는 시점을 옮겨 아프리카, 인도, 중국에서 GDP와 경제성장의 의미를 살펴본다. 3부는 GDP와 성장 담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대안적 시도를 보여준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저자의 폭넓은 취재가 담긴 2부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수준은 실제 경제 규모보다 더 작게 추출되는 경향이 강하다. 주류 경제학이 ‘지하경제’라고 외면한 영역, 통계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영역이 크기 때문이다. GDP가 당장 무용하다는 건 아니다. 성장이 불필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GDP와 경제성장이 절대적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수긍하게 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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