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밈(meme, 영상이나 이미지 등으로 변주되며 번지는 문화적 코드)의 영향력이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대다. 한국에 김영철과 김응수가 있다면, 타이완에서는 코스튬플레이(코스프레)를 즐기는 27세 젊은 정치인 라이핀위(賴品妤, 사진 왼쪽)가 화제다. 라이핀위는 1월11일 타이완 신베이시 12지역구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최연소 입법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단순히 젊다는 것만으로는 라이 당선자의 화제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유세 현장에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캐릭터를 코스프레하고, 페이스북 프로필에는 남성 캐릭터로 분장한 사진이 걸려 있다. 당선을 자축하며 올린 게시물도 코스프레 사진이다. 전 세계 애니메이션 커뮤니티가 일제히 라이핀위의 당선 소식을 전하며 서브컬처의 새로운 확장에 환호했다.
화제성만 가지고 당선된 것은 아니다. 라이 당선자는 ‘해바라기 운동’으로 불리는 2014년 3월 타이완 입법원(국회) 점령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점령 사건 직후 경찰에 체포된 이력이 있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활동가의 길로 나선 라이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도 해바라기 운동 세대의 선거 연대인 ‘프런트라인(前線)’ 일원으로 나섰다.
20·30대 젊은 후보 다섯 명이 결성한 ‘프런트라인’의 선두에는 맏형 격인 프레디 림(44, 린창쭤·林昶佐, 사진 오른쪽)이 있다. 타이완 메탈 밴드 소닉(Chthonic)의 보컬리스트인 프레디 림은 2016년 타이페이 5지역구 입법의원 선거에서 신생 진보 정당이었던 ‘시대역량’ 소속으로 당선되어 화제가 된 인물이다. 밴드 활동을 할 때에도 타이완 독립과 같은 민감한 정치 이슈를 과감하게 언급했고, 의원이 된 후에도 급진적인 목소리를 아끼지 않아 주목받았다. 차이잉원 총통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지난해 ‘시대역량’을 탈당한 프레디 림은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타이완 진보 정치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라이핀위와 프레디 림의 당선은 타이완 정치 문화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급진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면서도 인터넷 문화에 친숙한 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문법이다. 자신들에 대한 ‘밈’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라이핀위는 지난해 한 공개연설 현장에서 마이크에 머리를 부딪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인터넷에서 이 코믹한 장면이 밈이 되어 다양하게 재생산되었는데, 라이핀위는 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온라인에서 호감도를 높였다. 라이핀위와 프레디 림이 각각 아스카(신세기 에반게리온)와 데드풀(마블코믹스)로 코스프레한 선거 홍보 포스터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브컬처와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새로운 유권자층의 등장, 그리고 그들로부터 지지를 얻은 새로운 정치인들은 타이완 주류 정치에 어떤 새바람을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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