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 관계’는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전통 가족 관계와는 구분된다. 2014년부터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인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이 국가에 등록하면, 이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 등 권리를 보장하고 둘 사이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고독과 외로움, 돌봄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정책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생활동반자법은 ‘고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돌봄’에 대한 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과 법률적 제언을 담은 책 〈외롭지 않을 권리〉(가제)가 오는 3월 출간될 예정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전 보좌관으로, ‘생활동반자법’ 명칭을 만들고 내용을 제안한 황두영씨가 이에 대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집에 혼자 앉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꼭 MBC 〈나 혼자 산다〉를 마주친다. 요 몇 년간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답다. 어떻게 혼자 재미있게 살 수 있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동경하는 모양이다. ‘나래 바’를 열 시간도, 한적하게 고독을 즐길 한강 뷰의 거실도 없는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로서는 뒷맛이 씁쓸하다.
1인 가구는 개인주의, 자유, 독립성 등의 키워드와 함께 논의된다. 다수의 1인 가구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다. 자기가 선택해서 혼자 산다고 할지라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이라면 자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보다 가능한 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좋다’는 질문에 1인 가구 중 66.2%가 ‘매우 동의’ 또는 ‘동의’라고 답했다(〈가족구조 변화와 정책적 함의:1인 가구 증가현상과 생활 실태를 중심으로〉, 2012).
1인 가구는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에 1인 가구는 222만 가구로 전체의 15.5%를 차지했는데, 2017년에는 562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28.6%가 되었다. 2015년 이후부터 1인 가구는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다. 인구 대비로는 국민의 11.6%가 혼자 산다. 2000년에 5.0%가 혼자 살았는데 17년 만에 232% 증가한 것이다.
1인 가구 하면 흔히 20, 30대를 떠올린다. 그러나 통념과 달리, 1인 가구가 가장 많이 늘어나는 세대는 45~65세 중년층이고, 75세 이상 노인층에서도 절대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다. 2019년에는 1인 가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25.1% (150만 가구)에 달했다. 1인 가구 넷 중 한 집이 중노년층에 속하는 셈이다. 그 수는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리라 전망된다. 20, 30대 1인 가구는 수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1인 가구 전체 중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특히 중노년층은 결혼 포기, 사별, 저소득으로 인한 이혼 등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이유로 1인 가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는 수 없이 혼자 살다 보니 박탈감과 정서적인 공허함을 더욱 크게 느낀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고독사는 중노년 1인 가구에서 주로 발생한다.
2018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민 주거 체험을 위해 서울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옆집에서 혼자 살던 41세 중년 남성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소방관이 문을 따고 들어간 집안에는 플라스틱 소주병 수십 개가 이불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그의 집 우편함에는 전기요금 미납으로 전기 사용이 제한된다는 고지서와 카드대금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 단절된 인간관계, 사회적 고립, 경제적 위기,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 알코올의존으로 이어지는 1인 가구 돌봄 공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정상 가족’ 제도는 이미 실패했다
어느 세대나 고유한 문제가 있고 같은 세대 내에서도 각자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나이 먹을수록 혼자 살기는 더 어렵다. 청년 세대 1인 가구도 지금 당장의 어려움보다 혼자 사는 상태로 중노년 1인 가구가 되는 게 더 큰 걱정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중노년의 돌봄공백과 외로움에 대체로 무관심하다. 노인 1인 가구에 대한 복지는 의식주 해결과 시간 때우기에 초점을 맞춘다. 늙어서 외로운 건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중년기는 노동이 가능한 연령이라는 이유로 정책적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지자체들은 임대주택 월세나 공과금 장기체납, 소음, 악취 등 반복적인 신고 접수로 위기 상황이 의심되면 그때서야 찾아가서 일시적인 도움을 준다. 행정기관에서 인지할 정도가 되면 이미 생활이 완전히 무너졌을 정도로 극단적인 상태이다.
정부는 늘어나고 있는 1인 가구의 돌봄 공백을 방치한다. 사고가 생기고 나면 애꿎은 공무원과 사회복지사에게만 책임을 떠넘긴다. 그들도 이미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일상적으로 서로를 돌보는 차원에서 돌봄 공백의 해소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점점 늘어가는 1인 가구, 특히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중노년 1인 가구의 돌봄 공백은 밑 빠진 독처럼 우리 사회의 복지 인력과 예산을 위협한다.
1인 가구는 위태로우니 무조건 가족과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가족이 안전망이 된다는 건 일반적인 규범일 뿐 모든 가족이 구성원에게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어떤 가족은 안전망이 아니라 폭탄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회경제적 변동에 따라 가족과 함께 살기가 부담스러워지면서 일어나는 가족 구조조정의 결과가 1인 가구의 폭증이고, 이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1인 가구가 된 사람들이 심각한 돌봄 공백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노년 1인 가구는 ‘정상 가족’ 중심의 정책적 한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혼, 경제적 빈곤 등으로 만들어진 중노년 1인 가구는 자녀 부양, 결혼 등 ‘정상 가족’ 제도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카드 뭉치에는 정상 가족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없다.
다시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가 보자. 최근 인기작들은 단순히 혼자 사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MBC 〈전지적 참견시점〉은 연예인과 매니저의 일상을 다룬다. 매니저라는 직업을 통해 ‘가족 아닌 누군가’가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돌봐주는 관계를 보여준다. KBS1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노년이 된 친구끼리 동거하면서 새로운 생활동반자 가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MBC 〈구해줘! 홈즈〉에 집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의뢰인의 면면도 흥미롭다. 이 중 상당수는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다. 정상 가족을 위해 지어진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는 이들에게 선택되지 못한다. 대중문화가 우리 사회 가족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속도에 비춰볼 때 법과 정책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외로움은 이미 끓어 넘치고 있다. 국민들이 외로워져야만 굴러가는 이 사회를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니 이를 해결할 창의적인 방안도 찾지 않는다. 혈연가족과 살거나 결혼하는 게 답이 아닌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게 최종적인 해결책일까? 우리는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만 찾을 수 있는 안전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불안과 외로움은 결혼을 포기하고, 부모와 살지 않은 죗값일까?
극심한 외로움을 수수방관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어쩌면 1인 가구를 벌주는 게 아닌가 싶다. 생활동반자법을 포함해 혈연·혼인 가족이 아니더라도 돌봄 공백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외롭지 않을 권리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시사IN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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