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화실 한쪽의 그림을 가리키며 선생님께 묻는다. “직접 그리셨어요?” “그래, 아주 오래전에.” “제목은요?” 파르르 눈꺼풀이 떨리며 거푸 말을 삼키다가 어렵게 꺼내놓는 대답.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치맛단에 불이 붙은 채로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 문제의 그림을 그린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까 그림을 가르치던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가 섬에 도착하고 있다.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를 만나기 위해서다. 엘로이즈는 정해진 결혼 상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먼저 보내는 관습과 싸우는 중이다. 원하지 않는 결혼이므로 초상화 역시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근사하고 강렬한 라스트 신

그래서 마리안느가 불려왔다. 딸에겐 산책 친구를 데려왔다고 해놓았으니 같이 산책하면서 잘 관찰했다가 몰래 초상화를 완성해달라고, 귀족 부인께서 특명을 내린다. 처음엔 그림 때문에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곧 그의 마음까지 관찰하고 싶어졌다. 더 이상 산책 친구로 위장할 필요도 없었다. 엘로이즈 역시 마리안느를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으니까.

화가와 모델로 마주 앉아 함께 보내는 날들. 마침내 뜨거운 사랑으로 아름답게 타오르는 두 여성. ‘치맛단에 불이 붙은 채로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은 자신의 뒷모습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 게 분명해 보이는데도 아주 오래전 일처럼 이야기하는 마리안느의 마음은 뭘까. 그리려고 만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은, 이제 어떤 포즈로 남은 생을 맞이하게 될까. 이 모든 질문에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모호하게 답하는 라스트 신. 근사하고 강렬하고 황홀하다.

이 영화로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는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뮤즈라는 말은 이전부터 존재해온 예술가의 협력자를 숨기기 위해 만든 단어일 뿐”이라며, 영감을 ‘주는’ 여성이 아니라 함께 영감을 ‘나누는’ 여성들의 “평등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나는 ‘평등한 사랑’이라는 말이 참 아름답게 들렸다. 그리고 그 추상의 언어를 이토록 생생한 구체로 표현해낸 각본과 배우와 촬영과 미술과 음악,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영화의 모든 것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나면 오르페우스 신화를 달리 보게 된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혹독한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내 안에는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뜨거운 여름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알베르 카뮈의 이 유명한 문장이 비로소 제 주인을 찾은 것만 같아서, 영화가 끝난 뒤 오랫동안 나는 무척 행복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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