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불안 사이를 달리는 새로운 노동
  • 김연희 기자
  • 호수 645
  • 승인 2020.02.0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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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은 본인 소유의 운송 수단을 이용해 원하는 시간에 배달을 하고 수수료를 받는 ‘배민 커넥트’ 서비스를 운영한다. 〈시사IN〉기자가 배민 커넥터로 일하며 이 일자리의 명암을 짚어보았다.
ⓒ시사IN 신선영1월8일부터 12일까지 배민 커넥트에 지원해 전기자전거로 배달을 한 김연희 기자.

지난해 하반기 유명 배달 앱 업체인 ‘배달의 민족’은 ‘배민 커넥트’ 서비스를 신설했다. ‘배달받던’ 고객들이 배민 커넥트에서는 ‘배달하고 수수료를 받는’ 노동자(커넥터)로 전환된다. 배민을 통해 주문받은 음식을 본인 소유의 이동수단(자전거·전동 킥보드·오토바이·승용차 등)으로 배달하는 새로운 일자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일할지도 본인이 결정한다. 1월8~12일 직접 배민 커넥터로 일하며, 새롭게 출현한 이 일자리의 명암을 짚어보았다.

출근은 간단하다. 스마트폰을 꺼낸다. ‘배민 라이더스’ 앱을 켠다. 끝. 1.9㎞ 떨어진 ‘○○곰탕’ 주문이 떴다. 멀다. 처음 시도하는 배달에서 곰탕은 난도가 너무 높아 보이기도 했다.

10분 정도 기다리다 과일주스 전문점 콜(주문)을 잡았다. 배달료는 기본 배달료 4000원에 할증료(프로모션) 1400원이 붙어서 5400원. ‘배차 요청’ 버튼을 눌렀다. 1㎞ 거리에 있는 과일주스 가게로 이동해 음료를 받은 뒤 그곳에서 1.5㎞ 떨어진 배달지까지 가는 데 36분이 주어졌다. 재빨리 전기자전거로 뛰어올랐다. 1월8일 오전 10시56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어느 골목길에서 첫 배달이 시작되었다.

배민 커넥터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했다. 첫 배달로부터 5일 전(1월3일), 온라인으로 배민 커넥트에 지원서를 냈다. 일할 지역과 교육 시간·장소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지역으로는 서울 마포구, 중구, 서대문구, 은평구, 용산구, 종로구를 아우르는 중부센터를 골랐다. 배민 커넥터로 일하기 위해서는 1시간가량 진행되는 사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서울에는 교육센터가 4곳 있다.

1월7일 오전 11시, 배민 커넥트 마포교육센터로 갔다. 11명의 다른 예비 커넥터들이 모여 있었다. 여성은 3명으로, 남성이 훨씬 많았다. 첫 번째 교육 내용은 ‘커넥터의 자세’였다. 강사는 ‘여러분이 고객이었을 때 받고 싶었던 서비스’를 떠올려보라고 주문했다. “연예인 봤어, 네 전 여친 봤어 등 고객에 대한 개인정보는 절대 이용하거나 퍼트리시면 안 돼요.” 성희롱 예방 교육도 있었다. “고객님 댁의 현관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속옷 입고 나오는 남성, 겉옷만 입고 나오는 여성 고객들이 불쾌감 느끼지 않게 시선을 처리하세요” 등 주의 사항을 전달받았다. 커넥터들은 많은 사람을 보고,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는 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라이더 앱(배민 라이더스 앱) 사용방법을 배운 뒤 마지막으로 안전운전 및 사고 처리에 대해 안내받았다. 배민 커넥터가 되면 자동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을 적용받는다. 법률적으로 커넥터의 신분은 개인사업자다. 배달의 민족 소속 노동자가 아니다. 그러나 특수고용자 신분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3500원 정도의 산재보험료를 매주 내야 한다. 1월8일부터는 배달 중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기물을 파손했을 때 보장받을 수 있는 대인·대물 보험도 시행된다고 했다.

급경사와 계단 탓에 ‘멘탈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 ‘몸이 아픈지’ ‘계속 배달할 수 있는지’ 등을 판단해서 메신저로 라이더 앱 고객센터에 접수시켜야 한다. ‘메신저로만 사고 접수를 받는다고?’ 다들 비슷한 의문을 느꼈는지, 한 교육생이 물었다. “사고로 휴대전화가 깨져서 연락하지 못하는 경우는 어떻게 하나요?” 말문이 막힌 듯 한동안 뜸을 들이던 강사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나라가 아직 살기 좋은 나라라서, 그런 일이 있으면 주변에서 다 연락해줘요.”

47분 동안 교육을 마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님은 이제 배민 커넥트입니다.’ ○○○ 칸에 이름을 적어 제출했다. 배달의 민족은 센터마다 하루 2~3회 커넥트 교육을 실시한다. 전국의 교육센터가 모두 13곳이니, 하루 평균 200명이 넘는 커넥터가 탄생하는 셈이다. 교육을 받으면 1만원을 지급받는데, 이후 일(배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들어오는 주문에 응하지 않으면 된다. 커넥터는 배민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다.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엔 보증금 3만원을 내고 헬멧, 배달용 가방, 우비, 배지 등을 받았다. 커넥터들은 의무적으로 이 장비들을 착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쪽 벽에 붙여진 민트색 배경 앞에 서서 한 명씩 사진을 찍는다. 가게에서 음식을 받은 순간부터, 고객은 커넥터의 얼굴과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촬영을 끝으로 나는 배민 커넥터 자격을 획득했다. 다음 날(1월8일), 첫 배달에 나서서 과일주스 전문점으로 음료를 받으러 갔다.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시사IN 신선영배달원들은 서로 마주쳐도 따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없다.

첫 배달을 위해 과일주스 전문점에 들어가, 배운 대로 “안녕하세요, 배달의 민족입니다”라고 인사했다. 가게 주인은 곧바로 포장된 비닐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배달 물품은 과일주스 1개, 과일컵 1개, 요거트 1개. 교육에서 가장 강조된 사항 중 하나는 ‘크로스 배달 실수’였다. 다른 배달원이 가져가야 할 물품을 잘못 픽업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라이더 앱에 뜬 주문번호와 가게 영수증에 적힌 주문번호가 일치하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나왔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배달지는 직선거리로 1.5㎞ 떨어진 아파트. 스마트폰 지도 앱의 ‘자전거 모드’로 길찾기 검색을 하니 2.8㎞ 경로(예상 시간 15분)가 출력되었다. 더욱이 이 경로에는 급경사가 많았다. 전기자전거의 파워를 최대로 올렸다. 그러나 해방촌의 악명 높은 언덕길을 오르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내려서 자전거를 끌었다. 오르막보다 더 고약한 건 내리막이었다. 아침까지 내린 비로 땅이 젖어 있었다. 기어가는 심정으로 발을 질질 끌며 1보에 10㎝씩 전진했다. 그 길 끝에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계단이었다. 적어도 100개 이상으로 보였다. 도대체 지도 앱은 왜 나에게 이 길을 안내한 걸까. ‘멘탈 붕괴’의 순간, 계단을 따라 비스듬하게 이동하는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라이더 앱을 열었다. 예정된 전달 시간까지 겨우 1분. ‘지연 요청 버튼을 눌러 배달 시간을 20분 연장했다. 20분은 라이더 앱 내에서 최대 연장 가능한 시간이다.

배달을 완료한 시각은 오전 11시53분. 주문 콜을 잡은 시점(오전 10시56분)부터 57분이 걸렸다. 가게까지 16분, 가게에서 배달지까지 41분이다. 다행히 고객은 별다른 불만 없이 물품을 수령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배민 커넥터로 일한 4일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한반도 지형의 70%가 산지라는 말을 서울 한복판에서 실감했다. 경로는 지도 앱에 나오지만,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 혹은 장애물이 있는지를 터득하는 건 앱이 대체하지 못한 숙련의 영역이었다.

배민 커넥트는 ‘미션(임무) 수행’을 목표로 하는 게임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배달 완료라는 최종 미션을 끝내기까지, 각종 퀘스트(게임을 마스터하려면 해결해야 하는 여러 단계의 요구들)를 수행해야 한다. 퀘스트를 끝낼 때마다 라이더 앱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배차 요청’을

ⓒ시사IN 신선영배달의 민족이 개발한 배달원 전용 앱 ‘배민 라이더스’를 통해 배달 콜을 잡는다.

눌러 콜을 받고, 가게 도착 시간을 가늠해 ‘조리 요청’을 찍는다. 가게에 도착하면 ‘가게 도착’, 음식을 받으면 ‘픽업 완료’, 고객에게 음식을 전달한 뒤엔 ‘배달 완료’ 버튼을 터치한다.

‘부상 투혼’ 발휘한 첫날 5만6100원 벌어

비교적 무난하게 두 번째와 세 번째 주문을 완료했다. 네 번째 주문의 가게는 당시 위치에서 600m 거리에 있는 마라탕 집. ‘꿀콜’이었다. 원칙적으로 콜은 특정 커넥터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배민 배달원의 스마트폰으로 들어간다. 그 콜을 가장 빨리 접수한 커넥터가 해당 주문을 처리한다. 다만 배달의 민족은 신입 커넥터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단독 추천’ 제도를 운영한다. 일명 꿀콜이라 불리는, 배달하기 쉬운 단거리 콜을 단 한 명의 신입 커넥터 스마트폰에만 15초 동안 띄우는 방식이다. 교육받은 날로부터 15일 동안 최대 60건까지 단독 추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용산구 숙명여대 근처에서 마라탕을 픽업해 마포구 염리동으로 넘어가는 임무였다.

‘운동도 되고, 배달 시뮬레이션 게임 같네.’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효창공원 옆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가던 도중 갓길에 주차된 차를 피해 인도로 올라가려 했다. 순간, 왼쪽으로 기운 자동차 때문에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길바닥에 왼쪽 무릎을 찍었다. 바지에 구멍이 나고 그 사이로 상처가 보였다. 곧바로 가방을 열어 마라탕 상태를 확인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비닐 포장된 마라탕은 다행히 새지 않고 멀쩡했다. 왼쪽 다리에 힘을 줄 때마다 무릎이 아팠다.

‘그대로 배달을 하면 되나? 이런 것도 사고에 포함되나?’ 교육받은 대로 일단 라이더 앱의 고객센터 메신저에 접속했다. 주소, 음식, 고객, 기타 등 10개 항목이 있었는데 ‘사고’는 없었다. ‘기타’ 버튼을 누르자 ‘배달 중 사고가 났어요’라는 항목이 나왔다. 사고 신고를 하고 4분이 지났는데 반응이 없다. 다시 한번 사고를 접수시키자 응답이 왔다.

고객센터:배송 어려우실까요? ㅠㅠ
고객센터:많이 다치시진 않으셨나요?
나:넘어지면서 무릎을 찍어 바지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납니다. 배송은 할 수 있어요. 음식물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고객센터:아 네네 ㅠㅠㅠ 아 라이더님 ㅠㅠㅠ
고객센터:조심히,,, 운행하세요 ㅠㅠㅠㅠㅠ
고객센터:제가 더 확인해드리거나 도움 드려야 될 부분은 없으실까요? ㅠㅠㅠㅠ

ⓒ시사IN 신선영가게에서 물품을 받을 때(위)는 다른 배달원이 가져가야 할 물품을 잘못 픽업하는 ‘크로스 배달 실수’를 조심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배달 음식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모습.

고객센터는 내가 당한 부상에 격하게 눈물을 흘렸지만 어떤 지침을 내려주진 않았다. 일단 임무는 수행해야 한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지도 앱을 켰다. 네 번째 주문은 64분 만에 마쳤다. 20분 지연 요청을 했지만, ‘전달까지 18분이 초과되었다’는 기록이 떴다.

무릎 통증에도 불구하고 배달을 완료하고 나니 다시 기운이 났다. 결국 저녁 8시까지 5건을 더 배달했다. 총배달료는 4만6100원. 마침 배민에서는 3건 이상 배달자에게 1만원을 더 주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이날의 최종 수익은 5만6100원이다.

밤 9시가 되자 라이더 앱에 다음 날(1월9일) ‘프로모션(할증) 요금’ 공지가 떴다. 배달의 민족 라이더와 커넥터가 받는 배달료는 ‘기본료+프로모션’ 구조로 되어 있다. 기본료는 건당 3000원을 기준으로 거리에 비례해 증액된다. 프로모션 요금은 다음 날의 예상 날씨와 주문량을 근거로 산정된다. 주문이 많은 궂은 날씨에는 높게, 화창하지만 주문이 적을 것으로 추정되는 날은 낮다. 보통 500원에서 2000원 사이다. 서울 중부센터의 1월9일 프로모션 요금은 1100원이었다. 나의 첫 배달 하루 전인 1월7일을 검색해봤더니 무려 3000원이었다. 온종일 비바람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은 이런 날을 ‘땅에서 돈 줍고 다닌다’고 부른다. 그러나 우천 배달은 매우 위험하다. (1월22일 배달의 민족은 1월까지만 일일 변동 프로모션 제도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배달 수수료는 기본 3000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둘째 날인 1월9일에는 오후 3시간 동안만 커넥터 일을 했다.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 이날 두 번째 콜을 잡은 마포 공덕동의 돈가스 집 앞에서 배민 배달원 두 명과 마주쳤다. 모두 배민을 통해 배달하는 사람이지만, 신분이 다르다. 그중 한 명은 배민 커넥터가 아니라 ‘라이더’였다.

라이더 역시 배민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는 아니다. 그러나 커넥터에 비해 라이더는 배민과 한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전속성이 강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예컨대 커넥터는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하면 된다. 그러나 라이더는 센터 매니저와 상의해 일주일 단위로 근무 스케줄을 짜고 수행해야 한다. 운송 수단에서도 그렇다. 라이더는 배민 소유의 오토바이를 사용한다. 커넥터는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승용차든 본인 소유의 운송 수단을 탄다.

라이더들이 커넥터 제도에 볼멘소리를 내기도 한다. 커넥터들이 단거리 콜을 쓸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명 ‘자토바이’에 대한 불만이 높다. ‘자전거 커넥터’로 등록한 뒤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커넥터로 등록하면 2㎞ 이내의 배달만 배정된다.

1월10일에는 퇴근한 뒤 저녁 8시 약속 이전까지 약 2시간 동안만 배달해보기로 했다. 오후 6시8분 회사 사무실에서 700m 떨어진 서울역 부근 토스트 전문점의 콜을 받았다. 지름길을 이용해 예상보다 빨리 가게에 도착했다. 배달지는 용산 후암동이었다. 토스트를 기다리는 사이 배달지가 후암동인 콜을 하나 더 접수했다. 배민은 2건까지 동시 배차를 허용한다. 앞선 이틀간의 경험을 반추해보면 한 번에 한 건 씩만 배달해서는 시간당 최저임금 이상을 벌기 어려웠다. 토스트를 받고, 동시 배차 콜을 잡은 수제버거 전문점으로 향했다. 버거 집은 후암동과 반대 방향이지만 서울역에서 멀지는 않다. 금세 다녀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버거 세트를 픽업해서 전기자전거에 올랐는데, 메시지가 와 있었다. “ㅜ.ㅜ 라이더님. 고객님 완전 뿔났어요.” 토스트를 주문한 후암동 고객이 배달의 민족 앱으로 배달원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 중인데, 커넥터가 다른 곳으로 간다는 불평이었다. 그때부터, ‘해가 진 이후엔 시속 20㎞ 이상으로 달리지 않겠다’는 원칙을 어기고 전기자전거 파워를 최대로 높였다. 새로운 메시지가 없는지 확인하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배달지인 단독주택 앞에 도착하자 벨을 누르기도 전에 고객이 나왔다. 이동경로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별다른 얘기 없이 물품을 받아주니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시사IN 신선영배민 커넥트는 보호와 무방비, 숙련과 비숙련 사이 어느 지점에 싹튼 새로운 일자리였다.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사용’하는 노동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버거 세트 배달 소요시간을 묻는 고객센터 메시지가 들어왔다. 고객에게 시간 양해를 구했으니 빠른 전달을 부탁한다는 내용.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길까지 헷갈렸다. 버거 세트 배달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30분. 콜을 받은 뒤 67분이나 지난 뒤였다. 1층에서 호출을 눌러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현관에 나와 있던 고객은 지금이 몇 시냐며 배달을 취소해달라고 했다. 고객센터를 통해 배달 취소 요청을 넣었다. 고객에게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배달 음식을 그대로 들고 1층으로 내려오는데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지연 사유를 묻고, 물품은 자체 폐기해달라고 했다. 중요한 얘기가 빠져 있었다. “음식 값은 제가 내는 건가요?” 조심스럽게 묻자 회사가 부담한다고 했다. 고객센터 직원은 이번에는 회사에서 내주지만 다음부터는 안 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라이더 앱에는 ‘고객 의사 변경’이 배달 취소 사유로 입력돼 있었다. 그 덕분인지 배달료는 그대로 지급됐다.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도 들었다.

1월12일은 일요일이었다. 집 근처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배달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라이더 앱 대기 화면에 뜬 주문이 18개까지 폭증했다. 빨간색으로 ‘2분 초과’, ‘4분 초과’라고 찍혀 있다. 배달원들이 해당 주문들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배달 거리가 멀거나 이동경로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나도 배달 4일째로 약간의 경력이 쌓인 덕인지 자연스럽게 단거리 콜만 가려 받았다. 모든 배달을 40분 이내에 완료할 수 있었다.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한 와플 집 배달 대기가 30분째 둥둥 떠다녔지만 아무도 콜을 잡지 않았다. 커넥터는 배민에 직접 고용된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배송을 강요받지 않는다.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노동의 탄생일까. 필요한 시간 동안만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노동’을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은 사실 자본의 오랜 꿈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첨단 기술을 통해 그 꿈은 한층 가까워졌다. 그 세상이 유토피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계약으로 강제받지만 안정적 생존을 보장받는 기존의 노동과 자유롭지만 불안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 숙련과 비숙련, 보호와 무방비,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싹트기 시작했다. 아무튼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이라는 배민 커넥트의 모토는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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