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지난 1월7일 솔레이마니의 고향 케르만에서 거행된 솔레이마니 장례식에 운집한 주민들.

새해 벽두부터 일촉즉발 전면전으로 치달을 뻔한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 움직임이 일단 멈춰 섰다. 1월3일, 미국은 이란의 2인자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산하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했다. 닷새 뒤인 1월8일, 이란은 이라크의 미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응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에서 “이란이 물러서는 것 같다”라면서 추가 군사응징을 자제했다. 미국인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를 언급하면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자와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라며 외교적 해결 방침도 천명했다.

일단 양국이 전면전 위기는 피한 셈이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암살 결정의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 이번 작전이 국익 차원에서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가 (미국과 세계에) 임박한 위협’이란 이유로 암살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 배경이 석연치 않은 데다 군사·외교적 후폭풍을 충분히 예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먼저 솔레이마니 암살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연방 상원의 탄핵 심판을 앞둔 시점에서 결행되었다는 측면에서 의혹이 일고 있다. 외교적 후폭풍으로는, 이란이 2015년 타결된 핵협정에서 탈퇴하며 핵 개발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가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이른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을 이란에 무리하게 적용해 역효과만 불렀다는 비난도 만만찮다.

솔레이마니 암살은 현명한 선택이었나

미국은 이란 쿠드스군이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 등 중동 전역의 친이란 무장 테러단체와 민병대에 각종 무기와 군사훈련, 자금을 제공했다고 봐왔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22년간 쿠드스군을 지휘해온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주목하게 되었을 터이다. 미국의 전임 행정부들도 솔레이마니에 대한 암살 등 다양한 군사적 옵션을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공화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를 살해할 경우 군사·외교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많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행동을 자제했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외교 후폭풍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암살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는 것이 지배적 시각이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솔레이마니 암살은 ‘정당했나’보다 ‘현명했나’가 더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사태를 불확실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란은 이번 사태 직후 미국의 행동을 ‘국가 테러’로 규정했다. 이번 암살 사건을 계기로 이란은 핵협정에서 공식 탈퇴한 데 이어 1월8일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와 에르빌 기지로 미사일 22발을 발사하며 보복 공격에 나섰다. 다만 이란은 이 공격을 미국의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한 ‘비례적 군사 대응’이라고 밝혀 전쟁 의사가 없다고 암시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도 불구하고 미군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확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단 양국의 전면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수그러든 상태다.

미국, 이란과 관련국들이 대규모 전면전에 휩쓸려 들어갈 뻔한 이번 사태는 어떻게 촉발된 것일까? 지난해 12월31일 이라크 내 친(親)이란 세력인 시아파 민병대와 그 지지자들이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급습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국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이란 정책에서 근본 원인을 찾는다.

2015년 7월, 이란은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 등 6개국(P5+1:유엔 상임이사국 5개국+독일)과 ‘이란 핵협정’을 체결했다. 수년에 걸친 지난한 협상의 과실이었다. 이 협정의 공식 명칭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다. 이 합의에 따라 이란은 핵무기 제조의 필수품인 원심분리기의 3분의 2, 농축우라늄의 97%, 매년 핵무기 1~2기 생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중수로를 포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 ‘이란을 믿을 수 없다’며 핵협정에서 전격 탈퇴하고 만다. 또한 전면적 경제·금융제재를 동원한 ‘최대의 압박’ 정책으로 이란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이란은 ‘최대의 저항’ 정책으로 응수하며 단계적인 핵 활동을 재개했다. 2019년 5월부터는 유조선, 미군 무인기,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이라크 키르쿠크 미군 주둔기지 등을 공격하는 등 이번 사태 직전까지 미국과 크고 작은 충돌을 계속해왔다.

이런 와중에도 이란은 핵협정에 잔류하며 대화의 여지를 남겨왔다. 미국 이외의 협정 체결국(독일·프랑스·영국·러시아·중국)들과 조건부 타협책을 모색해온 것이다. 하지만 솔레이마니 암살로 인해 이란 역시 협정에 잔류할 명분을 잃었다. 이란은 협정 파기와 함께 핵무기 생산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최대의 압박을 통해 이란의 핵 활동을 막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이란의 핵무장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솔레이마니를 긴급히 제거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가 최근 미국 표적들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라고 말했지만 ‘새로운 공격’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장도 솔레이마니의 과거 행적이나 ‘그는 아무튼 위험해’ 정도의 말만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사태 직후 의회에 보낸 기밀자료에도 최근 수개월 사이 이란의 공격 상황만 담겼을 뿐 솔레이마니의 ‘임박한 위협’은 설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이란 양측의 확전 자제로 전쟁 상황은 일단 피했지만 향후 상황을 낙관하기는 힘들다. 이란은 미국의 추가 제재로 지금보다 더한 곤경에 처할 경우 시리아·예멘·레바논 등지에서 활동 중인 친이란 무장 테러단체 등을 통해 언제든 반미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핵무장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면전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8일 회견에서 자신의 재임 기간에 “이란의 핵무장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한 군사적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즉각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에 나설 의지까지 밝혔다.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정책에 대해 CNN은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 정책과 경제제재로 이란을 다시 핵 협상으로 끌어내고 싶겠지만, 그 결과는 의도와 정반대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비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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