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지난해 12월30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해고자 복직 사회적 합의 파기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4일, 이동진씨(가명·41)는 세 아이에게 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고르다 문자를 받았다. ‘복직이 무기한 연기된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쌍용자동차에서 2009년 해고되었다. 2019년 7월에 ‘형식적으로’ 쌍용자동차에 복직했지만 이후 무급휴직자 신분으로 버티고 있었다. 2020년 1월부터 쌍용차의 정식 직원으로 복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희망에 넘쳤다. 쌍용차에서 해고된 뒤 다니던 충남 당진의 전기업체에도 ‘2019년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한다’고 알려두었다. 쌍용차 공장 소재지인 경기 평택에 이사할 집도 구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삿짐을 직접 옮기던 중이기도 했다. 이씨는 “화재나 테러 같은 위급 상황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회사는 2009년 어버이날에 정리해고 신고서를 노동부에 냈었다. 회사로부터 두 번 해고당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복직을 기다리던 김상민씨(44)도 그날 같은 문자를 받았다. 7년간 화물차 기사로 일하다 차가 퍼져 그만두고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였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열한 살과 다섯 살인 두 딸에게 사주려던 장난감은 미뤄두었다. 대신 피자를 시켜주었다. 강릉으로 가려던 가족여행도 접었다. “화물차 기사 때도 일을 못 빼서 아이들과 약속을 깬 적이 있다. 얼마 전 ‘아빠 자동차 만드는 회사 들어간다’고 말했는데, 자꾸 약속을 안 지켜 ‘못 믿을 아빠’가 될까 봐 걱정이다. 이런 희망고문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치는지 회사가 아는지 모르겠다.” 김씨는 말했다.

2018년 9월, 쌍용차 사용자 측과 기업노조(쌍용차 현재 재직자들의 기업 내 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해고자와 복직된 전 해고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등 4자가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 당시 복직을 희망한 해고자 119명 중 60%(71명)를 2018년 말까지 채용하고, 나머지 40%는 2019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40%에 해당하는 46명은 2019년 7월1일부로 회사에 복귀하는 것으로 처리되었으나 정작 일감과 보수를 받지 못하는 무급휴직 상태로 머물렀다. 다만 이들에 대해서는 “2019년 말까지 부서 배치를 완료한다”라고 ‘사회적 합의’에 명시되었다.

바로 이 합의에 근거해 복직 대기자 46명은 2019년 연말이 다가오면서 당시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이사를 하며, 복직 축하 인사도 받고 있었다. 2019년 말까지 부서 배치가 완료되면, 2020년 새해부터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었다. 이들에 대해 돌연 ‘무기한 휴직 연장’이 합의되어버린 것이다.

임금 70% 받으니 다행이라지만···

이 합의의 주체는 쌍용차 사측과 기업노조였다. 2019년 12월24일 오전 ‘복직 대기자 관련 노사 협의’ 소문이 돌았다. 복직 대기자들이 소속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 회사에 들어가 사측과 기업노조에 항의했지만, 그들만의 합의가 진행되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그날 오후 5시께 기업노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부장님, 미안합니다. 합의했습니다.” 기업노조는 그날 오후 6시께 합의서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로 가져왔다. ‘무급휴직 중인 복직 대기자들의 휴직을 연장하되, 휴직 종료일은 라인 운영 상황에 따라 추후 노사 합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적 합의의 한 축인 경사노위의 문성현 위원장도 휴직 연장에 대해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2018년 9월 사회적 합의에는 “경사노위는 (중략) 관계 부처와 협의하여 해고자 복직으로 생기는 회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 방안과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라고 되어 있다. “쌍용자동차 노(기업노조)·노(금속노조 쌍용차지부)·사(쌍용차)가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의 사회적 갈등을 사회적 합의로 해결한 것에 존경을 표하며” 체결한 약속이었다. 사회적 합의 이후인 2019년 쌍용차는 산업은행으로부터 전기차 개발을 위해 1000억원을 대출받았다.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이번 휴직 연장은 쌍용차 사측과 기업노조라는 두 주체가 노·노·사·정 4자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2018년 합의는 경사노위 차원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합의다. 합의 파기라고 규정하고 싶진 않다. 확인해보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복직 대기자들의 휴직 연장을 기업노조가 합의할 수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쌍용차에 입사하면 기업노조에 자동 가입되는데, 복직 대기자들은 재입사는 했지만 기업노조 가입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설령 기업노조가 합의의 주체가 될 수 있더라도, 임금이나 복지 같은 처우를 넘어서 특정 당사자를 휴직시키거나 해고시키는 것은 노사 합의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판례가 있다. 휴직을 연장하려면 당사자 개개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사측과 기업노조는 경영상 어려움으로 인한 생산 물량 감소를 이유로 든다. 쌍용차는 2019년 3분기까지 1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9년 한 해(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1821억원에 달한다. 최근 쌍용차는 통상상여 200% 삭감, 인센티브 삭감, 연차수당 지급률 조정 등을 골자로 한 자구안을 마련해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받고 있다. 기업노조 정일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31일 이번 휴직 연장에 대해 “총고용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했다”라고 밝혔다. 당장은 내부 인원의 고용을 우선 지키려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2019년 한 해 복직 대기자 수보다 많은 50여 명이 정년퇴직한 점, 이번 복직 대기자들에 대해 2020년부터는 휴직 기간에도 임금의 70%는 지급(유급휴직)하기로 한 점을 고려하면, 경영상 어려움이 복직 대기자들에게 부서 배치를 못할 정도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 가능한 대안을 모두 시도해봤다고 하긴 어려워 보인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회사의 위기에는 공감하지만, 그렇더라도 똑같이 부서에 배치한 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지 전체가 함께 풀어갈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그래도 임금의 70%는 받으니 다행 아니냐’는 일부 반응에 대해 “기본급이 낮고 연장·특근수당 비중이 높은 제조업 특성도 있지만, 돈의 문제는 아니다. 10년 동안 해고자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왔다. 댓글을 보면 ‘거기 아니면 일 못하느냐’고 하는데, 다시 작업복 입고 일하는 모습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내 이야기가 옳았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말했다.

“매우 기쁘고 감회가 깊습니다. 유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동자들과 가족분들에게는 뜨거운 축하 인사를 보냅니다.” 2018년 9월15일, 해고자 복직 합의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해고자와 그 가족 30명이 목숨을 끊거나 질병 등으로 숨졌다. 30번째 죽음(2018년 6월27일) 직후 이뤄진 합의였다. 혹시나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 봐, 복직 대기자들은 이번 휴직 연장 직후 조를 짜서 서로 연락을 돌리고 있다. “어린애들 찰흙 놀이가 아니잖아요. 대통령 직속 기관(경사노위)이 같이 한 합의인데 뒤집어질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12월24일 오전까지만 해도 희망에 부풀어 있었어요. 추운 겨울에 벼락 맞은 기분이에요.” 최근까지 골프장 관리 일용직과 앰뷸런스 기사로 일하다 일거리가 끊긴 복직 대기자 조문경씨(56)가 말했다. 조씨와 동료들은 1월7일 회사에 예정대로 출근했다. 조씨는 그날 둘째 딸이 복직 기념으로 손수 떠준 목도리를 했다. 이들은 부서 배치를 받을 때까지 매일 출근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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