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내가 다닌 학과는 졸업을 하려면 논문 작성이 필수였다. 논문을 쓰기 위한 수업을 들어야 하고, 12월 학기말까지 논문 한 편을 제출한 뒤 학점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4학년 2학기 초에 지도교수와 한 번 면담하고는 학기 내내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기말 즈음 벼락치기로 써냈다. 당연히 논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잣대를 엄격히 적용했다면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F 학점 논문으로 평가받고 원하는 시기에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대학 4학년 시절이 떠오른 것은 지금 근무하는 대학에서 만난 한 교수의 푸념 때문이다. 자기 연구실의 대학원생 이야기인데, 학생의 석사학위 논문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학생)’와 ‘이걸로는 졸업 못 시킨다(교수)’의 대립이었다. 졸업은 안 시키고 제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교수의 이야기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논란이 되곤 하지만, 현실에는 가해자-피해자 구도의 단순하고 극단적인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조언해도 진지한 고민이나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논문 쓰고 대충 심사해주길 바라는 학생, “사정상 빨리 졸업을 해야 한다”며 갑자기 논문 계획서를 들고 찾아와 빚 독촉하듯 서두르는 학생을 마주할 때면 화가 나고 허탈하다는 게 교수들 이야기다. 취업이 안 되거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떠밀리듯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은 학위 과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몇몇 ‘직장인 대학원생’은 공부보다 학위에만 관심을 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학생들의 성향만 탓하기엔 대학과 교수들 스스로 논문 통과나 졸업 자격의 기준을 후퇴시켜온 측면도 크다. 어느 정도 타협하는 선에서 졸업시키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노력 없이 거머쥔 학위증서는 학생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괜한 뒷말이 돌거나 학교에 민원이라도 들어가면 시끄러워질까 봐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같은 학과 동료 교수의 지도학생 논문 심사를 맡았던 한 교수는 “논문 같지도 않은 논문”에 서명을 거부하다가 동료 교수의 설득 전화를 여러 차례 받은 끝에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는 씁쓸한 기억을 털어놓았다.

‘논문 같지 않은 논문’에 서명하는 교수의 비애

또 대학과 전공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많은 특수대학원에서는 논문을 작성하지 않고도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각종 최고위 과정은 학위 없는 ‘동문 양성소’가 된 지 오래다.

학사 과정의 졸업 요건은 어떨까. 요즘 많은 대학에서 졸업 전 외부 영어시험이나 한자시험 등의 성적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기본 소양을 갖춰 졸업시키려는 고육지책일 수 있지만, 대학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고려할 때 졸업 요건과 자격으로 강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학생들에게 ‘대학에서의 공부’에 대한 올바른 메시지를 주는 제도인지 의문이다.

물론 평생교육 시대에 대학이 문턱을 낮추고 어떤 목적에서든 배움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 열린 공간이 될 필요도 있다. 다만 제자 배출 실적을 점수화하는 평가 시스템, 학생 개인 사정과 젊은이들의 고달픈 현실, 열악한 재정 상황 등을 탓하며 교육·연구기관으로서 기본 원칙을 조금씩 허물어뜨린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학교는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긴 어렵습니다’라고 홍보하는 대학을 상상해본다. 당장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졸업시켜달라”는 학생들의 민원이 폭주할지 모른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때 당당하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대학을 보고 싶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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