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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현장은 답이 없었다. 눈 돌릴 때마다 질문만 떠올랐다.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왜 듣는 사람 없는 곳에다 화를 내는가. 뭐 때문에 나왔을까. 어떻게 아무 의미 없는 말을 각자 30분간 단체로 반복하면서 동시에 눈물 흘릴 수 있는 걸까. 2019년 11월 청와대 사랑채 앞을 취재하면서 든 생각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농성을 하는 동안, 옆 대로를 점거한 개신교인들은 매일 집회를 열었다.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어야 하는데, 꽤 망설였다. 왜 망설이고 있는지 자문하자 ‘상대하기 싫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말이 안 통할 사람들이라고 여겨져 흥미를 잃었다. 그들은 눈이 풀려 있었고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좀 무섭기도 했다. 젊거나 기자 같은 사람에게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사실 ‘이교도’였고, (그들의 기준에서는 아마도) ‘좌파’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들과 말을 섞는 게 부끄럽다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용기를 발휘해 여러 루트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정권이 바뀌어서 나라가 망하고, 공수처가 생기면 나라가 망하고, 선거법이 바뀌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공산화’였다. 이 파국을 막기 위해 분연히 나선 사람들이 ‘애국 기독교인’들이고, 그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좀 싱거울 정도로 깔끔한 서사였다.

시민적 상식뿐만 아니라 ‘교리’의 범주로 봐도 아슬아슬한 발언이 현장에서 터져 나왔다. 반대파 정치인이 황 대표 단식 현장에 올 때마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청와대 앞 농성 중 연단에 선 한 목사는 “우리는 천국이 예정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애국자’라서일까, ‘기독교인’이라서일까? 신학자들이 기천 년 고민한 문제 앞에서 그는 별다른 근거를 대지 않았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이곳에서 한 설교는 힌트 삼을 만했다. “철학에 속지 말라. 논리적으로 맞는지, 이치에 맞는지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허무주의에 빠지고 헤밍웨이처럼 자살로 이어진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예비 천국 주민’들로 가득한 현장은, 기대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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