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동아시아 펴냄

“많은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인간 사회도 대표적인 복잡계다.”

물리학은 우주부터 원자까지, 초거대 세계와 초미시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학문이다. 딱 하나, 사람 사는 세상만 빼고. 그건 물리학으로 답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보통 생각한다.
물리학자인 저자의 〈관계의 과학〉은 전작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더 심화시킨 신작이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촛불집회, 좋은 지도자의 조건, 친구 찾기의 규칙,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 유행 만들기 등이다. 사람이 관계 맺고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는 통계물리학을 무기로 색다르게 접근한다. 이것은 물리학이 인문사회학의 영역까지 넘보는 ‘물리학 제국주의’일까? 좀 다르다. 새로운 방법론은 새로운 통찰을 준다. 낯선 렌즈의 위력이다. 물리학이라는 낯선 렌즈 덕분에, 독자는 세상을 더 넓고 깊이 이해하게 된다.

 

 

 

 

 

 

 

 

 

여자는 울지 않는다
이보람·이연주·이오진·신효진 지음, 제철소 펴냄

“언젠가 당신을 만나 이 말을 하고 싶었으니까. 당신이 틀렸어.”

희곡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이지만 이제는 ‘기타 등등’에서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읽기가 아닌 보기의 영역이다. 당연하다. 희곡은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니까. 소규모 관객만을 동원한 채 막을 내린 공연은 좀체 돌아오지 않고, 대본집이나 OST 등 2차 저작권 시장은 작디작아서 작품을 두고두고 보고 싶은 관객은 쉽게 외면받는다. 특히나 동시대 희곡을 활자로 만나는 경험은 (그러니까 제철소처럼 극작가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가 아니라면) 매우 희귀하다. 아니, 여성이 주인공인 창작 희곡 네 편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하다. 필연적으로 사라지고 마는 무대 위의 순간을 상상하며 독자는 수진도 되고, 미영도 되고, 애순도 될 수 있다.

 

 

 

 

 

 

 

 

 

Do it! 첫 코딩
정동균 지음, 이지스퍼블리싱 펴냄

“컴퓨터의 언어? 사람의 언어랑 비슷해.”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고 모든 서민들이 빅데이터의 생산자가 되어버린 지금 세계에서, ‘코딩’은 이미 이과 생도에게 국한된 ‘특수 능력’이 아니다. 직접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가 없는 직업인들도 코딩의 기본 콘셉트를 알아야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계속 증가하는 중이다.
이 책은 코딩의 ‘문과식 입문서’를 지향한다. 수학이나 컴퓨터 관련 전문용어를 동원하지 않고 쉬운 비유와 그림으로 코딩을 청소년과 비전공자에게 이해시키겠다는 야망으로 기세등등하다. 코딩 입문을 위한 ‘8일 진도표’를 제시하고 있으니, 코딩의 기초 개념을 모르는 ‘문송’이라도 컴퓨터 앞에 바짝 붙어 도전 의지를 불태워볼 만하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김보영·박상준·심완선 지음, 돌베개 펴냄

“허구가 현실을 넘어서는 진실일 수도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먼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예측 중 58%가 현실화되었다고 밝혔다. 이미 40여 년 전인 1972년에 내놓은 견해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현실 세계에서 정부기관의 통제가 본격화할 때마다 소환된다. 그들이 상상한 미래는 이미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SF 소설은 이렇듯 수십 년이 지나도 스테디셀러로 각광받는다.
이 책은 SF 상상력의 원형이 된 거장과 걸작들을 소개한다. 최초의 SF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부터 〈컨택트〉의 테드 창까지 SF 소설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수십 년이 지난 SF 소설들이 현대사회에 환기하는 바는 무엇일까. 다른 시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모던 로맨스
아지즈 안사리·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펴냄

“몇 분이 흘렀고 메시지의 상태가 ‘읽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심장이 멈추는 느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몇 분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초조해하거나, 분노하는 일들 말이다. 특히 상대에게 호감이 있거나, ‘썸’을 타고 있을 땐 대화창 이면의 메시지를 잘 읽어내는 일이 성공적인 연애를 위해 필요한 ‘과제’가 되었다.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는 아지즈 안사리와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손을 잡고 이 현상을 파고들었다. 2013년부터 2년간 뉴욕, 도쿄, 파리 등 대도시를 배경으로 현대인들이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는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핵심은 틴더와 같은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였다. 수백명의 인터뷰이가 틴더 기록과 문자 메시지를 연구 자료로 흔쾌히 내어준 덕분에 오늘날 연애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어머니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죽음에 대항하는 것이라 했다.”

위 문장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는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에 그런 말을 했다. 당시 나는 베를린 브라운슈타인스트라세 10번가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음식 먹는 것을 ‘죽음에 대항하는 행위’로 믿으며 자란 소설 속 ‘로자’는 마고 뵐크라는 실존 인물이었다. 뵐크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그의 음식을 미리 맛봐야 하는 감식반이 됐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실험쥐와 같았다. 매 끼니 독살을 걱정했던 히틀러는 패색이 짙어지자 어처구니없게도 자살해버렸다. 뵐크와 함께 음식을 시식했던 여성들은 모두 처형당했다. 뵐크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았지만 소련군으로부터 2주 동안 성폭행을 당했고, 다시 살아남았다. 이 책은 그녀의 인터뷰를 토대로 쓴 소설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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