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전두환 자택 앞에 선 서울 서대문구 구의원인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는 지하철역이 없다. 그 이유를 두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하나 돈다. ‘전두환씨가 지하철을 못 들어오게 했다. 학생들이 데모하러 올까 봐.’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은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을 관통하는 배경이었다. 주로 어두운 순간들이다. 육군 소장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모의했던 장소이며, 전 재산이 29만원이라 추징금을 내지 못한다는 전씨가 호화롭게 말년을 보내는 곳이다. 독재를 규탄하고 광주 학살의 책임을 묻는 시위대에게 연희동 자택은 종종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전두환씨를 추적하는 이들의 리스트에 최근 이질적인 존재가 추가되었다. 서울 서대문구 구의원 임한솔(39). 정의당 부대표이기도 하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처음 기초의원으로 당선됐다. “서대문구 주민 31만명을 잘 모시겠다”라고 당선 인사를 하다가 딱 한 명은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전두환씨를 쫓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7일 알츠하이머병을 앓는다는 전씨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포착하고, 12월12일에는 쿠데타 주역들과 강남의 고급 중식당에서 오찬을 즐기는 현장을 찾아갔다. 그가 찍은 영상 속 전씨는 병색도 반성의 기미도 엿보기 어려웠다. 지난 12월24일 서대문구의회에서 임한솔 부대표를 만났다. 서대문구의회는 연희동 전두환 자택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닿을 거리다.

강원도 홍천 골프장에 이어 12·12 당일 호화 오찬 자리까지 찾아냈다. 비법이 있나?

파악한 정보와 정황으로 12월12일에도 골프를 치러 갈 거라고 예상했다. 전두환씨와 부인 이순자씨 둘 다 골프광이다. 연희동 집 지하에 골프연습장까지 차려놓았다고 들었다. 보통 골프를 치러 가면 10시 전에는 나온다. 그날은 11시쯤에 나와서 ‘좀 늦네’ 했다. 골프장 가는 길로 가다가 갑자기 동부간선도로를 타더라. 처음에는 우리가 따라가는 걸 눈치 채서 되돌아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성수대교를 건너더라. ‘아 강남으로 밥 먹으러 가는구나’ 싶었다.

12·12 쿠데타의 주역들과 고급 중식당에서 1인당 20만원이 넘는 고급 코스 요리를 먹었다.

홀이 전혀 없는 100% 룸으로 된 식당이었다. 그런 탓에 대화 내용을 자세하게 듣지 못했지만 대화의 80%를 전두환씨가 주도했다.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이상해 보일 수 있어서 자리를 잡고 점심 식사를 했다. 가장 싼 메뉴가 8만원짜리 덮밥이었다. 처음에는 ‘0’ 하나를 잘못 본 줄 알았다.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식사를 하는데 1시30분쯤, 가장 경계가 흐트러져 있을 때 내 동행이 전두환씨 일행이 있는 룸에 들어갔다. 그러자 전씨가 포장 주문한 ‘불도장’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다. 동행한 분이 마침 중식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서 불도장이 진귀한 중국요리라는 걸 제대로 알아들었다. 나라면 불도장이 무슨 찍어주는 도장인 줄 알았을 거다(웃음). 테이크아웃한 불도장은 경호팀 경찰이 들고 갔다.

ⓒ임한솔 제공12·12 군사반란 40년째 되는 날, 전두환씨가 쿠데타 주역들과 고급 중식당에서 오찬을 즐기는 장면.

동행이라면 전두환 추적팀이 있는 건가?

그렇다. 누구인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

12월21일 임한솔 부대표는 선거법 통과를 촉구하는 정의당 국회 농성장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했다. 이 라이브에는 12·12 오찬을 추적했던 동행이 얼굴을 가리고 등장했다. 루돌프 가면을 쓴 동행은 당시 방 안 상황을 실감나게 전했다. “다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테이블에는 화이트와 레드, 두 종류 와인이 있었다. 화이트와인이 샴페인인지는 라벨이 반대로 돌려져 있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잔은 샴페인 잔이었다. 레드와인은 미국 나파밸리에서 생산되는 유명 와인이었다. 빈티지나 그레이드마다 다르지만 병당 70만~80만원 수준이다. 완벽하게 먹고, 웃고, 즐기고 떠드는 모습이었다. 들어가서 인사를 하니 전두환씨가 그러더라. ‘야 인마, 너 뭔데 와인이라도 한 병 가져와서 인사를 해야지. 빈손으로 와서 무슨 인사를 해. 당장 나가!’”

오찬에 참석한 최세창 전 3공수여단장과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전두환씨와 함께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40년 전 같은 날에도 전씨는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들은 약 5개월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다. 호화 오찬 영상이 공개된 후 전씨의 측근인 민정기 전 공보비서관은 보도자료를 배포해 “1979년 사태와 전혀 무관한 친목 모임이다. 12월12일은 우연히 정해진 것이다. 비용도 초청한 이들이 부담했다”라고 밝혔다.

2019년 전두환씨가 수년째 세금을 내지 않아 서대문구 지방세 1위 체납자라는 사실도 폭로했다.

서대문구 구의원이 되고 2019년 7월에 지방세 체납자 명단을 들여다봤다. 누구는 가택수색을 했고 누구는 안 했는데, 안 한 사람이 바로 전두환씨였다. 일반적으로 지방세 체납액이 1억원만 넘으면 바로 가택수색에 들어간다. 전두환씨는 체납액이 10억원(9억7000만원)에 달했다. 특혜인데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지역 정치인이 없었다. 연희동에서는 신년이 되면 동장이 전씨에게 인사를 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전씨가 이 동네에서 위세를 부리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 12월 서울시 세금징수과 기동팀이 전두환씨 집을 가택수색했다.

전두환씨가 고액 체납자라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공무원들은 뭘 하고 있는지 한 걸음 더 들어가 찾아봤다. 아무것도 안 했더라. 처음에는 서대문구 세금징수팀에 갔다. 체납액이 너무 많아지니까 서울시로 이관한 상태였다. 그래서 서울시에 물어봤는데 ‘은닉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알아야 가택수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앞뒤가 바뀐 소리였다. 즉시 가택수색을 시행하라고 공문을 보내고, 전화하고, 찾아가고 하면서 서울시를 압박했다. 결국 2019년 11월, 서울시 세금징수과에서 전두환씨 집을 찾아갔는데 전씨가 알츠하이머 환자라 가택수색이 곤란하다는 말을 듣고 그냥 되돌아왔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대중에게 알려 바로잡아야겠다 싶어 언론에 제보했다. 결국 보름 뒤 서울시 세금징수과에서 전두환씨 집을 수색했다.

ⓒ연합뉴스아래 사진은 1996년 12월16일 서울고법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피고인들의 모습.

그 일을 계기로 전두환씨에 대한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심지어 미국에서도 제보가 온다. 강원도 골프장도, ‘어제 9시 뉴스에서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세금 못 낸다고 나온 사람이 내 앞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면서 어떤 골퍼가 제보했다. 그때부터 골프장 가는 걸 잡기 위해 추적을 시작했다.

전두환씨가 연희동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파악이 되나?

연희동 전두환 맛집 지도도 그릴 수 있다. 자주 가는 한정식, 중식당, 칼국숫집 등등. 조용히 다닐 법도 한데 덩치 큰 세단에, 경호에, 전씨가 밖에 나오면 되게 눈에 띈다. ‘니들이 떠들어봤자 나는 내 갈 길 가겠다’ 이런 느낌이다. 보통 이순자씨와 다니고 일행이 있을 때도 있다.

실제로 만나본 전두환씨는 어떤가? 2~3분이 지나면 까먹을 정도로 알츠하이머병이 심하다며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데.

이 사람 아직 안 죽었구나, 여전히 또렷이 살아서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구나 싶었다. 골프장에서 내가 5·18 발포 명령에 대해 따져 물을 때, ‘뭐야? 귀찮아’ 하고 피해버릴 법도 한데 ‘내가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도 있지 않았다. 너 군대 갔다 왔냐’라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그러다가 세금 납부하라고 하니까 갑자기 대화 태도를 180° 바꾼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좀 내줘라.’ 그때 느꼈다. 이 사람 완전히 여우구나.

이순자씨한테는 욕을 많이 먹었다고 들었다.

돈에 민감한 것 같다. 골프장에서도 이용료 얘기를 꺼내니까 심하게 욕을 했다. 지난해 세금징수팀이 갔을 때도 전두환씨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안 나오는데 이순자씨가 ‘우리는 낼 돈이 없다’면서 펄펄 뛰었다고 한다. 이순자씨가 빨간 바지를 입고 강남 부동산을 보러 다녀서 별명이 ‘연희동 빨간 바지’였다는 걸 최근에 들었다. 재밌는 건 골프장에서도 빨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전두환씨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추징금 환수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아직 1030억원을 내지 않았는데 2020년이면 시효가 끝난다.

두 가지다. 5·18 발포 명령 최종 책임이 전두환씨에게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게 첫 번째로 중요하다. 모든 정황이 전씨를 지목하고 있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가 추징금과 세금. 지방세뿐만 아니라 국세도 31억원을 안 냈다. 순순히 낼 사람들이 아니니 강제 추징해야 한다. 전두환씨는 5·18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5·18은 끝나지 않은 과거인데 국민들이 어느 순간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과 두려움이 있다. 골프장과 12·12 오찬을 추적한 건 그 때문이다. 국민적 관심이 다시 높아졌으니 이를 동력으로 남은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차명 재산도 추적하고 있나?

보고 있는데, 아직 공개할 수는 없다.

전두환씨 측도 경계 태세를 강화하지 않을까?

주변 참모나 가신들이 말릴 법도 한데 전두환씨는 본인이 즐기고 싶은 것은 다 한다. 여전히 마이웨이 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전씨를 포착하는 데 어려움을 크게 겪을 것 같지는 않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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