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

“기자들에게 물으면 어때요?” 올해의 〈행복한 책꽂이〉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다 출판계 관계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많은 매체가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대체로 출판평론가와 서평가 혹은 분야별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도 좋지만 신간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기자들이 잘 알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시사IN〉 기자들은 매주 새로 나온 책을 접하고 신간을 소개한다. 책 담당 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리스트는 다소 편향적이다. 기준은 오로지 기자 개인.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했다. 

 

미국 노터데임 대학 정치학 교수인 패트릭 J. 드닌의 이 책은 매우 도발적이다. 글로벌 지배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를 가차 없이 ‘실패자’라고 우롱한다. 이 책의 저자는 ‘반동(反動)’적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에서 출간된 수많은 ‘자유주의 비판’ 서적 가운데 유독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것은 그의 ‘반동성’과 무관하지 않다. ‘반동이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자유주의를 ‘낯설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닌은 가톨릭 계열의 공동체주의자(communitarian)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집단(가족·마을·종교)과 문화, 규범, 관습 등 이른바 ‘공동체(community)’에 끈끈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존재다. 개인과 공동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자유를 누리려면, 즉 폭정의 출현을 막고 스스로 다스리려면(자치), 개인들은 욕구를 스스로 제한하는 덕목들(절제·지혜·중용)을 도야해야 한다. 그래야 집단 차원에서 ‘자치의 기술’을 고안해낼 수 있다. 고전적(고대 그리스와 로마) 자유 개념이다.

그러나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등을 선구자로 하는 자유주의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공동체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개인이다. 자유는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다. 다만 모든 개인이 이런 자유를 누리려면 무질서 상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국가와 법이 도입된다. 이 같은 자유주의의 틀은 단지 현실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다. 자유주의가 설정한 바람직한 상태로 인간과 세계를 개조해 나가자는(인간을 공동체로부터 떼어내어 ‘개인’으로 만들어가자는) 강력한 프로젝트이며 운동이다.

자유주의의 승리로 인간(개인)은 공동체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자연을 정복하며 욕구 충족이라는 자유의 영역을 넓혀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폐해다. 물질적 욕망의 추구 앞에서 ‘공동선’은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전락하고, 빈부격차 확대 및 환경 파괴가 초래되었다. 전통적 규범의 훼손으로 윤리적 아노미도 심화되었다. 드닌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성공할수록 실패한다”.

드닌이 제시하는 근본적 대안은 ‘공동체로의 복귀’다. 솔직히 이 지점에서 기겁했다. 이 사람은 현대성(modernity)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동’ 세력인가?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생산과 교환의 ‘범위’를 지역 단위로 좁히고, 기술발전을 억제하며, 성적 자율성을 심하게 규제하란 말인가. 더욱이 공동체는 어떤 경우에는 지배-피지배의 은밀하지만 잔인한 폭력이 자행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반(反)자유주의적 ‘반동’ 세력이 글로벌 지배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를 껍질째 홀랑 벗겨내서 장대 끝에 걸어놓은 것처럼 읽히는 이 책은, 그래서 오히려 숙독할 만하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