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폼페이오 국무장관(오른쪽)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부 내에서 가장 신임하는 인물로 꼽힌다.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단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캔자스주 하원의원이던 그를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4월에는 국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후 평양을 드나들며 왕복 외교를 벌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부 내에서 가장 신임하는 인물로 꼽힌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얻은 정치적 자산을 무기로 대권까지 넘보는 등 정치적 야망도 강하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국을 블랙홀에 빠트린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면서 그의 미래에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주당 대선 주자인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의 비위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압박했다는 내용이다(〈시사IN〉 제630호 ‘트럼프 탄핵? 그게 되겠어?’ 기사 참조).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 요청을 4억 달러 규모의 대(對)우크라이나 군사원조와 연계했다고 한다. 이 같은 통화 내용이, 당시 트럼프 대통령 옆에 있던 여러 관리로부터 외부에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지난 9월25일 의회에서 공개되어 워싱턴 정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경쟁자인 바이든 전 부통령을 침몰시킬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가성’ 통화를 한 것으로 규정짓고 탄핵 조사를 개시했다. 최근까지 국무부와 국가안보회의 등 고위 관리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및 공개 청문회를 잇달아 열었다. 이 조사를 주도해온 하원 정보위원회는 12월 초까지 탄핵 보고서를 법사위원회에 넘길 방침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12월 중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해 상원에 회부할 가능성이 크다.

탄핵 조사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할 당시 폼페이오 장관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를 시인했지만 자신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직접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다. 민주당이 국무부 고위급 관리들의 증언을 요청하자 “부적절하다”라며 협조하지 않았다. 관련 문건을 제출해달라는 의회의 요청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그런데 11월20일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나온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의 증언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관여가 드러나고 말았다. 선들랜드 대사는 폼페이오 장관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까지 거론하며 ‘폼페이오가 우크라이나 외압의 내막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당시 우리(폼페이오와 선들랜드)가 추구한 현안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모자 또는 조력자로 간주될 수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공화당 밭’ 캔자스주 상원의원 출마 가능성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마리 요바노비치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를 전격 경질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구설에 올랐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요바노비치 대사는 오바마 정부 때인 2016년 임명되었다. 그는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 조사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폼페이오 장관은 임기 만료 6개월을 앞둔 그를 워싱턴으로 소환한 뒤 전격 해임 의사를 전달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33년 외교관 경력의 요바노비치 대사를 보호하기는커녕 트럼프 대통령 뜻에 따라 몰아냈다’는 불만이 국무부 내에서도 팽배했다고 전해진다.

ⓒAP Photo폼페이오 장관은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맨 오른쪽) 경질에도 관여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처신을 놓고 정치적 욕망 때문에 대통령 눈치를 봐온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무부와 국가안보회의 간부를 두루 지낸 바 있는 앤드루 와이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부회장은 〈뉴욕 타임스〉에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외교 팀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으려면 트럼프보다 더 트럼프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과시해왔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폼페이오 장관이 일관되게 우선시한 일은 미국의 장기적인 국익이나 국무부의 제도적 건강성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야심인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올해 들어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염두에 둔 행보를 거듭했다.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국무장관으로 일정이 빡빡한 상황인데도 하원의원 시절 지역구인 캔자스주를 올해 최소 네 차례 방문했다. 지역 언론과도 수십 차례 인터뷰를 했다. 지난 10월25일 캔자스 방문 때는 트럼프 대통령 장녀인 이방카와 동행하기도 했다. 지역 언론 〈캔자스시티 스타〉는 ‘장관직을 그만두고 상원의원에 도전하든가 본업에 충실하라’는 사설로 그의 정치 행보를 꼬집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거취에 이처럼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의회 중간선거 때문이다. 캔자스주의 정치적 맹주이자 4선인 팻 로버츠 상원의원이 내년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을 출마시키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그는 아직 공개적으로 상원의원 출마를 밝힌 바 없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인들의 삶에 진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대권 도전도 고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대권으로 가겠다는 뜻을 넌지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성향 방송인 〈폭스 뉴스〉에 출연해 “캔자스주의 (공화당)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 폼페이오 장관이 출마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본다”라며 처음으로 폼페이오의 상원 출마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이 장관직을 사퇴하고 상원의원 선거에 나선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캔자스주는 2016년 대선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무려 20% 차이로 승리한 곳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지난 몇 달 동안 폼페이오 장관 사임설이 지속적으로 나돌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진행 중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온 뒤에야 거취를 정하리라 보인다. 캔자스주 상원의원 후보 등록 마감이 내년 6월임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쯤 퇴임할 가능성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과 가까운 한 전직 국무부 고위 관리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폼페이오는 탄핵 정국에서 국무장관직을 계속할지, 아니면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어떤 식으로 행정부를 빠져나올지 딜레마에 처했다”라고 전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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