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큰일”에는 분개하지 못하면서 “작은 일”에는 법석을 떠는 소시민성에 대한 풍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시를 달리 해석하려 한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그럴 만하니까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일에서 “공정하지 못함” “합리적이지 못함” “인간답지 못함”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의 연쇄와 누적을 통해 자신이 이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함을 학습한다. 그 결과 작은 일에 대한 짜증은 “공분”이 된다.

영화 〈조커〉에서 가장 수긍이 간 대사는 “왜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무례한 겁니까?”였다. 모욕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조커는 인간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조커의 범죄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분개에는 동의한다. 나 또한 같은 질문을 던져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걸까?

무례함을 공격하는 무례함의 악순환

흥미로운 것은 내게 무례한 사람들 또한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내가 실수로 깜박이를 급하게 켜며 차선을 바꾸자 뒤차의 운전자가 다가와 창문을 내리고선 눈을 부릅뜨며 “운전 똑바로 해!”라고 소리친다. 나는 ‘좋게 말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왜 저렇게 무례한 걸까?’라며 분개한다. 하지만 나한테 소리를 지른 사람도 생각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배려심 없이 운전을 하는 걸까?’ 결국 모두들 작은 일에서 인간성 타락의 증거를 발견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짜증을 내지만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지!’ 작은 일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는, 짜증이 순식간에 공분으로 발전하는 이러한 사태 속에 무례함이 증폭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상대방은 인간성 타락의 증거이다. 과장하자면 그는 도덕적 범죄자이기에 존중받을 자격을 갖지 못한 자이다.

이렇듯 무례함의 증가는 공분의 증가와 비례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도덕적 엄격함과 도덕적 타락이 같은 동전의 다른 면이라니.

더구나 사람들은 이제 작은 일, 큰일 가리지 않고 모든 일에 분노한다. 최근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쟁에서 일부 논자들은 “도덕주의 정치”를 비판했다. 이때 도덕주의란 상대방을 악으로 몰아붙이기 위해 도덕에 집착하는 몰도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비판 자체가 “정신 좀 차려!” 식의 도덕적 훈계였다.

사실 모든 비판은 도덕적 비판이다. 비판 속에는 공정하지 못함, 합리적이지 못함, 인간답지 못함,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함에 대한 분노가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무례함을 공격하는 무례함, 도덕을 비판하는 도덕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나는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불신의 세계에서 그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최근 군자 한 명을 만났다.

공원에서 통기타 동호회 멤버로 보이는 중년 여성 세 명이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던 나는 자리를 잡았다. 준비 때문에 공연은 지체되었다. 내 곁에는 주최 측인 동호회 회원이 앉아 있었고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한담을 나누었다. 그때 일군의 중년 남성들이 사람들 다 들으라는 듯 “에이, 귀만 버렸네. 명 짧은 사람 기다리다 죽겠네”라고 투덜대며 자리를 떴다. 나는 그 소리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이 애써 준비한 자리에 저렇게 재를 뿌리다니! 그런데 내 곁에 있던 동호회 회원이 웃는 얼굴로 답했다. “저는 명은 짧아도 좋은 음악은 끝까지 듣겠습니다.”

나는 생각했다. 참으로 군자가 아닌가. 그분은 어찌 저리 온화할 수 있을까? 한 줌의 관객들과 책임감 때문에 화를 자제한 것인가? 나는 앞으로 분노하는 사람들보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에 주목해야겠다. 그들은 판을 깨는 사람이 아니라 판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나는 묻고 싶다. 그 작은 판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요?

기자명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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