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위)은 “국가교육회의는 교육을 둘러싼 여러 관계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만드는 자리”라고 말했다.

국가교육회의는 뜨뜻미지근한 교육 기구다. 여론은 특목고·자사고가 폐지되네 마네 뉴스가 던져질 때마다 일희일비 들끓고 ‘수능이냐 학종이냐’ ‘학생부에 무엇이 기재 가능하고 불가능한가’ 유의 질문에 당장 답을 내놓기를 원하는데, 국가교육회의는 천천히 지역 순회 토론회를 열어 중장기 교육 비전을 의논하고 2030년을 대비한 미래교육 콘퍼런스를 연다.

국가교육회의가 절박하게 여기는 것은 이미 변한 사회에 변하지 않는 우리 교육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능력 말고 다른 것을 길러주지 못하는 기존 교육 체제의 관성과, 그 관성 안에서 점점 좁아지는 구시대적 기득권에 집착하는 학력 경쟁을 하루빨리 해소해나가야 할 진정한 교육 문제로 여긴다. 그래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꺼지는 교육 현안 앞에서 국가교육회의는 다소 뒷짐을 진다. 다만 5년 뒤, 10년 뒤 어느 날 우리 머리를 세게 칠 수도 있는 진짜 교육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뜨뜻미지근하게라도 꾸준히 군불을 때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여러 교육 현장에서 교육의 불을 지펴왔다. 1976년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고,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맡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고, 지난해 12월부터는 교육 혁신과 중장기 교육정책 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를 “교육을 둘러싼 여러 관계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만드는 자리”로 표현했다. 뜨뜻미지근함이면 몰라도, 이 치열하고 날선 우리 사회 교육정책을 다루는 현장에서 ‘따뜻함’이라니. 11월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김 의장을 만나 우리 교육에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이유를 물었다.

국가교육회의는 지난 10월23일부터 사흘간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를 열었다. 해외에서 온 교육 전문가들은 한국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나?

한국 교육을 성공 사례로 보지는 않는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이 기조연설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PISA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은 높지만 학습시간이 길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학습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한국 교육이 굉장한 역동성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기존 산업사회 체제에서 지능정보사회 체제의 교육으로 전환하는 사례를 한국이 잘 만든다면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콘퍼런스에서 지난 1년 동안 밑에서부터 토론하며 내용을 구성해온 ‘어린이·청소년 교육·문화 권리선언’과 미래교육 시민원탁토론회가 진행됐다. 그간 우리 교육정책이 서구 선진국 정책 모델을 적용해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하향식이었다면, 이제는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상향식 모델을 만들겠다는 작업이었다. 현장 속에서 의미 있는 실천이 미래지향적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OECD에서 온 교육 전문가들이 상당히 감명을 받았다.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교육의 ‘내적 공정성’을 강조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교육의 가치가 ‘공정’이다. 왜 그럴까?

국가교육회의에서 여러 지역을 돌며 토론회를 열었다. 그 가운데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이거다. 호남 지역에선가, 입시 문제에 관한 토론회였다. 버스 대절로 온 한 다른 지역 중산층 학부모가 특목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찌질이’ 비슷한 용어를 썼다. 그 자리에 있던 이른바 ‘찌질이’ 학부모들이 화낼 줄 알았다. 전혀 화를 안 내고 한 학부모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 학력 경쟁 시대는 이미 지났다. 변화는 이미 일어났는데, 사람마다 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애도하는 기간이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애도를 짧게 끝내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살아온 관성이 있기 때문에 애도의 기간이 무지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는데 저분은 애도 기간이 참 긴 분인 것 같다.”

말하자면 교육의 외적 공정성 논쟁이란 애도의 기간이 긴 사람들의 이해관계 다툼 같은 거다. 기존 산업사회 체제에서 일정한 기득권이 있는 사람들은 애도 기간이 길 수밖에 없다. 산업사회는 생산에서 인간의 노동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정적 일자리가 보장되고 교육은 이런 국민의 노동력을 키우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그 대전제가 다 깨졌다. 이미 중하층은 학교 교육과 직업 연관성이 거의 무너져 있다. 다만 안정적인 직업들이 산업사회 상위권에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점점 작아지는 이 부분을 가지고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상위 20% 안의 경쟁이고, 최상층과 중산층의 경쟁이다. 미래에 대비하기보다는 산업사회 관성 속에서 더 좁아지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어떻게 보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애도의 기간을 길게 가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사IN 윤무영10월23일 열린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에서 진행된 시민원탁 토론회.

학종이냐 수능이냐로 대변되는, 게임의 룰을 어느 쪽에 유리하게 만들 것이냐의 문제는 외적 공정성의 문제이고 이해관계 충돌이기 때문에 해결 방법이 없다. 중요한 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역량을 길러주고 그런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능정보사회에서는 기본 학습능력이 인권에 가까워진다. 그게 없으면 사회활동에서 퇴출되기 때문에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 이게 교육의 내적 공정성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불공정한 거다.

국가교육회의는 그간 여러 지역, 여러 층위의 사람들을 만나 교육에 대한 바람을 들어왔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의 교육에 관한 어떤 공통된 열망을 발견할 수 있었나?

중장기적으로 보느냐, 이해관계가 걸린 단기적 차원에서 문제를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랐다. 토론회를 다니면서 떠오른 말 중에 하나가 성경 구절 속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였다. 애도 기간의 길고 짧음과 같은 맥락이다. 중심부, 이른바 주류 사회에서는 아직 중장기를 얘기할 때하고 단기적으로 내 문제, 내 자식 문제를 얘기할 때가 따로따로다. 중심부에서 멀어질수록, 바깥으로 갈수록 “이제 진짜 미래사회를 향해서 교육이 큰 전환을 해야 한다”에 강한 합의가 있었다. 기존 산업사회 체제 아래의 교육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을교육공동체 운동 등 지역에서 생활을 풍부하게 하면서 살길을 찾는 노력을 벌써 하고 있었다.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는 거다. 산업사회 기반이 무너진 밑에서부터 그런 걸 넘어서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발언권이 큰 상층의 이해관계가 커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미 전환의 동력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교육 변화에 회의적인 이유가 ‘교육이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회의론을 어디서부터 풀어갈 수 있을까?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기구가 제안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치열한 이해관계 다툼이라 해도 중장기 로드맵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다. 중장기 로드맵 자체는 합의하기가 쉽다. 그 목표 지점을 설정한 상태에서 이해관계가 부딪치면 조정이 훨씬 쉽고 납득과 양보도 할 수 있다. 지향점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이해관계만 다투면 답이 없어져버린다. 지향점이 있고, 그곳을 향해 점차적으로 조정해나가자는 합의가 가능하려면 교육의 중장기적 정책을 합의하고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신뢰를 국민들이 가져야 한다. 그것 없이 교육 문제는 늘 다툼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교육정책이 선진국 추격형 모델을 넘어서는 문제와 직결된다. 교육정책이 쉽게 왔다 갔다 하는 이유도 무조건 서구 모델을 받아들여서다. 그간 상층부에서 서구 모델을 약간 가공해서 밑으로 떨어뜨리고 거기에 대한 피드백도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위에서 쉽게 바꿀 수도 있었다. 선진국 모델 따라가기를 넘어서려면 우리 교육정책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좋은 모델을 찾아서 평가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이렇게 교육정책이 아래부터 위까지 네트워킹되면서 합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면 누가 함부로 흔들 수 없다.

지난해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여러 말이 많았지만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과학적 통계 방법으로 연령·성·지역별 비례해서 500명 속에 ‘작은 대한민국’을 구성했다. 모든 정보를 제공받고 숙의한 국민이 정책을 선택하는 과정이 상당히 의미 있었다. 중장기 교육정책이 그런 방식으로 밑의 실천 모델까지 거쳐 합의해서 나온다면 그걸 함부로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법안이 여럿 발의되어 있는데 지금 워낙 정치가 전면적 대결 국면으로 가다 보니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어쨌든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에 대한 명분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으니 자유한국당에서도 법안을 냈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대통령 자문기구로 두는 안이다(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지난 3월 합의한 안은 국가교육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설치하는 안이다). 이를 포함한 설치 법안들이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로 넘어가 있다. 안건조정위원회에서 합의가 되면 90일 내에 처리해야 한다. 12월까지는 안건조정위에서 조정된 안으로 어쨌든 1차 결말은 볼 것 같다.

ⓒ시사IN 윤무영‘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에서 유은혜 교육부 장관,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과 학생 대표들이 ‘어린이·청소년 교육·문화 권리선언’을 하고 있다.

교실, 교원단체, 청와대 등 여러 현장에서 교육을 다뤘다. 지금 국가교육회의에서 경험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교실 현장에서 볼 때는 현실이나 미래를 아이들의 변화를 통해서 읽어냈다. 그런 게 제일 좋다. 교원단체에서 활동할 때는 군사정권 때여서 기본적인 것부터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주로 요구를 하지, 어떤 대안을 만들 책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할 때 가장 크게 느낀 건, 교육이 우리 사회 다른 부분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경제계가 교육에 막강했다. 교육을 산업화 시대의 산업구조에 맞는 인력공급 시스템으로 봤으니까 영향력이 컸다. 지금은 적어도 그런 영향력이 초·중등교육에서는 상당히 약화됐다. 당시 비서관 할 때는 교육부만 어떻게 하면 되나 하고 왔는데 웬걸 교육부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맨날 경제 관료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책이란 게 진짜 관계에 대한 사유구나, 힘의 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라는 걸 알고 시야가 넓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비서관은 그런 관계를 따뜻하게 보는 자리는 아니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좀 살벌한 자리다. 국가교육회의는 그야말로 관계에 대한 사유를 하는 자리고 그 관계를 따뜻하게 본다는 점이 다르다. 비교적 현안과 쟁점을 직접 다룰 필요는 없고 거리가 있기 때문에 현장부터 실제로 정책을 책임지는 단위까지 여유 있게 바라보면서 따뜻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자리다.

내년 국가교육회의 활동은 어디에 초점을 맞출 계획인가?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지향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내실 있게 가려면 우선은 현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실천들을 평가하고 발전시킬 방향을 확보해야 한다. 또 그걸 평가하기 위해 교육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전망 속에서 봐야 한다. 이게 결합되면서 정책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국가 교육이 산다. 이런 것 하나도 없이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든다면 자리 차지하기밖에 안 된다. 아직 명칭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내년에는 가령 ‘현장 교육모델 조사개발 분과’도 하나 두려고 한다. 한 송이 꽃 속에서 우주를 보는, 외국 모델 따라가기를 넘어서는, 작은 실천 속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런 부분을 궁리하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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