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종이를 보여주세요’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시사IN〉을 내밀 것이다. 얇고 가벼운 종이 위에 얹은 글자에는 내가 궁금한 세상이 거의 다 담겨 있다. 염색공예 작가 유노키 사미로 씨는 여행지에서 만난 냅킨이나 커피설탕 봉투 등을 포켓 파일에 한 장씩 넣어 보관한다. 유노키 씨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림은 죽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럼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건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종이의 신 이야기〉, 책읽는수요일, 2017)

신입 기자로 입사했던 2009년부터 지난 10년간 내가 가장 꾸준히 들어온 말은 ‘저널리즘의 위기’다.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라는 유노키 씨의 말에 밑줄을 그으며 내가 하는 일도 꼭 그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보고 싶다고, 끝이 있다면 내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시사IN〉 사회팀은 올해 세 차례 특별기획을 했다. 지난 1월에는 ‘대림동 한 달 살기, 우리가 몰랐던 세계’(제591호), 6월에는 ‘예멘 난민 1년 보고서’(제610호), 10월 말 ‘빈집의 경고’(제632호)를 내놓았다. 같은 내용의 기사지만 종이로, 웹으로, 영상으로 각각 만들었다. 현안이나 단독성 기사는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믿음으로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넉 달 가까이 공들여 취재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읽고 난 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붙잡아 세우는 글이다. 내 이야기를 꺼내 나누게 되면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도 넓어진다. 각자의 사정이 모여 결국 우리가 된다. 특별기획들이 그렇게 읽히길 바랐다.

빈집 기사를 읽은 한 독자가 빈집이 많은 곳에 사는 사람으로서 느낀 이야기를 SNS를 통해 전해줬을 때 그래서 기뻤다. 잘 보이지도, 쉽게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빈집 기사를 계기로 활발히 공유되는 일은 우리가 바라던 반응이었다. 기사가 가진 부족함은 읽어준 사람의 ‘자기 이야기’에서 다시 출발하고 또 채워진다. 더 단단하고 재밌어진다. 그런 자리를 만드는 글을 좀 더 실험해보고 싶다. 정기구독자는 우리의 실험을 가능케 하는 든든한 ‘뒷배’다. 늘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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